[인터뷰]
훌륭한 소년은 그렇고 훌륭한 중년이 돼야지 이젠
2007-05-1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노동석 감독

언제 한번 야구장이나 같이 가자며 벼르던 차에 인터뷰가 잡혔으니 끝나는 대로 가자고 서로 약속했다. 지금 그는 필시 제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딱딱한 일 얘기는 이쯤 하자고 은근히 재촉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그럴 만도 하다. 그는 때때로 일만큼이나 일하다가 만나 알게 된 사람과의 정을 믿는다. 그때 즐거워한다. “청춘이라는 말이 일단 아주 좋고요, 주말마다 모여 찍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싹터 즐겁고요”라고 <마이 제너레이션> 직후 그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하겠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그리움이나 청춘이라는 몹시 애틋해 쓰기 두려운 이런 말을 사용하나,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노동석은 남들이 감당하기 힘들어 잘 쓰지 않는 이 낱말의 생기와 결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그런 다음 거기서 영화를 시작한다. 그가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선보였다. 그리움, 청춘, 대개의 애틋함과 꿋꿋함, 그런 것들이 좀더 양식적 영역 너머로 들어와 있는 영화다. 노동석을 만났고, 그날 두산이 삼성을 3 대 1로 이겼다.

-원래 제목은 <미래소년>이었잖아요. 그게 더 적절한 제목 같은데.
=원래 시나리오는 <펑쿠이에서 온 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허우샤오시엔의 초기 성장영화와 좀 비슷했다. 지금과 이야기 구조는 비슷했어도 드라마에 굴곡을 주지는 않았다. ‘마이 제너레이션2’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 구조였달까. 그런데 상업적인 고려를 하면서 각색 작업을 했고, 제목도 그러는 과정에서 바꿨다. 지금도 스탭들은 ‘미래소년’이라는 제목이 더 잘 맞는 것 아니냐고 한다. 나는 제목부터 떠올리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하간 처음 구상할 때 미래라는 말과 소년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중요했던 게 사실이다.

-스스로 아쉬워하는 점이 좀 있다는 느낌이다.
=스스로는 과도기적인 영화라는 생각을 한다. 단순·과격·무식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영화의 틀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개인적인 논리가 컸던 것 같다. 물론 동시대 상업영화와 똑같이 만들 필요는 없지만 거기에 익숙한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 영화의 모든 영화 언어의 형식을 맞춰나간 것 같다. 그런데 완벽하게 맞추기에는 좀… 예를 들면, 찍다보니 컷이 좀 부족하더라. 그러니까 콘티뉴이티상 약간 어정쩡한 느낌이 벌어졌고, 그래서 초반과 후반이 좀 다르다. 예를 들면 영화의 클로즈업은 주로 후반에 들어 있다. 초반에 워낙 안마시술소 등 여러 신을 몰아 찍다보니 숏을 굉장히 롱테이크로 찍게 되더라. 그러다보니 또 걱정이 되었다. 관객이 너무 멀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배려 때문에 후반 들어 클로즈업을 많이 찍었다. 골고루 배치하기는 했는데 아쉬움이 좀 있다. 확실히 상업적인 고려가 일차적으로 있었다.

-상업적인 고려가 본인의 영화 만들기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보나, 아니면 자기 검열처럼 느껴지나. 본인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향방을 점쳐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훈 소설을 좋아한다. 김훈 소설은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잖나. 그런 인물들을 나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나한테 그 길을 나름의 방식으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것도 같다. 몇편의 영화를 더 하면서 상황의 변화나 생각의 변화가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상업적인 고려를 감안해야 한다고 이번 영화를 하면서 더 느끼게 됐다.

-주인공 기수(김병석)는 드러머잖아요. 본인은 악기 연주할 줄 아는 게 있나.
=영화 시작하면서 나도 좀 배워봤다. 모르고는 안 되겠구나 싶어서. (웃음) 기수 직업은 시나리오 고치면서 나온 설정인데, “쟨 도대체 꿈이 뭐야? 꿈도 없는 애야?” 뭐 이런 얘기들이 나오니까, 그럼 꿈을 하나 주자, 그런데 동적이면 좋겠다, 하면서 예전에 드럼 치던 친구가 떠올라서 들어가게 된 거다. 병석씨는 열심히 배웠고 고생 좀 했다. 종대(유아인) 친구로 나오는 배우가 인디 음악하는 몽구스 밴드 드러머여서 개인 레슨을 좀 받았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조연으로 지인들 끌어모으기 전략을 보여줬는데, 연기들이 나름 훌륭하다.
=<마이 제너레이션>하고는 또 다른 고려였던 것 같다. 개런티 문제도 있었지만, 전문 연기자 중에서 쓸 수 있을 만한 캐릭터 층이 별로 없었다. 스탭들은 지인들 데려오는 걸 굉장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분홍신>의 김용균 감독님도 굉장히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 노래방 주인. 너무 잘하셨는데.

-그런데 영화 보면서 느낀 건 지인들을 어떤 배역으로 밀어넣는다는 게 일종의 영화적 방법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그 방법을 믿고 여태까지 온 거긴 한데, 누군가는 모니터할 때 이런 얘기를 하더라. 배우들이 다 낯서니까 한국영화 같지 않다고. 예를 들어서 자주 나오는 조연배우들이 있잖나. 관객은 그런 데 친숙해져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은 이런 인물이야 하고 딱 규정해주는 것. 그런데 우리 영화는 캐릭터가 비관습적인데다 배우가 주는 이미지 자체도 낯서니까 한국영화 같지 않다는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런 느낌을 받을 때 굉장히 즐겁던데.
=그건 반은 영화인이니까 그런 거고. (웃음)

-기수 역을 맡은 김병석은 연기를 더 안 할 생각인가. 김병석은 <마이 제너레이션>에서 약간 생짜였던 것 같았다면 이번에는 양식적인 연기도 잘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촬영 끝나고 나서는 이쪽 일을 계속할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여기가 쉬운 세계가 아니잖나. 병석씨가 그렇다고 막 적극적인 타입도 아니고. 그래서 나도 선뜻 못 권하겠고. 본인으로서는 당장이 급하니까. 그런데 연기 변화는 확실이 있는 것 같다. 상대역으로 (유)아인이가 있으니까 나름대로 자극받은 게 있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도 이건 내가 표현해내야 한다, 하는 자의식 같은 게 생긴 거다.

-컬러 첫 데뷔작이다. 색감문제에 대해 촬영감독과 주로 어떤 얘기를 했나.
=밤장면이 많다. 그런데 한국영화에는 잘 안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인물 위주로 환하게 찍는 거다. 그렇게 가지는 말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쓴 게 파나소닉에서 나온 카메라인데 기본적으로 색감이 소니 카메라하고는 좀 달랐다. 어떻게 보면 일본영화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담백하고, 필름하고 비교하면 후지하고 좀 비슷한 느낌, 그런 건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자고 했다. HD라도 필름에 가깝게 색감을 적극적으로 쓰자. 색을 쓰는 데 두려움을 갖지 말자는 뜻에서, 그리고 영화가 어두워질까봐도 원색을 많이 썼다. 종대의 의상도 주로 원색이고. 또 공간들이 워낙 무채색이라 원색으로 대조를 좀 주려고도 했다.

-한국영화에서 총이 등장하는 건 대체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다. 그럴 경우는 낯설 일이 없다. 장르적 포용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영화에서 총이 등장하면 낯설어지거나 본의 아니게 우스워질 여지가 있다. 처음 이 영화가 총이라는 일종의 기호를 욕망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걱정이 좀 됐는데.
=종대라는 인물을 구성할 때 실제 모델이 있었다. 또 드라마의 굴곡을 위해서 들어간 거기도 하고. 영화적으로 좀 다르게 갈 수도 있었을 것도 같은데, <마이 제너레이션>의 카드나 카메라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총이라는 게 남근의 기호잖나. 그런데 종대는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그런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는 확실히 어떤 남근의 상실자다. 그런 종대가 총을 갖고 싶어한다. 오래전에 읽은 건데 <보니 앤 클라이드>(한국 개봉 제목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클라이드를 성불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종대가 닮고 싶어하는 김 사장(최재성)도 남근 상실의 이미지가 있고. 실패한 어른 남근의 허상을 어리고 상처가 있는 남근이 욕망하는 이야기가 되는 건데, 이게 총이라는 기호를 둘러싸고 생긴다는 거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총은 종대의 도피처이기도 하고.
=완성된 형태로 보면 그런 구조도가 그려지긴 하는데 내 생각이 진행된 과정을 보면 그게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서 한마디로 말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런 질문이 많이 나오겠구나, 정도는 생각했다. 종대는 뭔가 자기 방어기제로서 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실제 모델이 된 친구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종대가 총을 필요로 하는 건 공격성이 아니라 자기방어 때문이다. 초반부는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라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굉장히 위축되어 있다. 기수를 만나서 말할 때 무섭다고 말하는 것처럼. 도시를 두려워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같다. 우연히 영화 개봉 때쯤 버지니아 총격사건이 일어났는데, 물론 종대가 거기까지는 안 갔지만, 비슷한 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종대 안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대한테는 기수라는 인물이 있어서 다행인 거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기수가 종대에게 잘못했기 때문에 무조건 저렇게 잘해주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았다. 기수도 역시 종대를 필요로 하는 사이라고 관객이 생각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나의 논리였다. 엔딩에서 종대가 요한이(이동호)를 데리고 요한이 엄마를 찾아가잖나.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도시에서 사라진 어떤 모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런 이야기가 미래소년이라는 말의 느낌과 한 덩어리가 돼서 움직이는 거라고 봤다.

-단편부터 어쩐지 어머니의 등장을 꺼려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막상 등장한 종대 엄마(박명신)는 노동석 영화답지 않게 양식적으로 굉장히 왜곡되어 있는 인물이다.
=기수와 종대의 퀴어적인 느낌도 기수가 갖고 있는 어떤 여성성 때문일 거다. 요한이를 키우고 종대를 돌보고 하는 것들, 전통적으로 어머니가 하는 역할들을 기수가 하고 있잖나. 물리적인 남자이긴 하지만 중성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고 또 여성적인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고. 그에 비해서 종대 어머니는 물리적으로는 여성이긴 하지만 약간 왜곡된 인물로 그려지고. 사실은 그것도 역시 모델이 됐던 친구 어머니가 있었다. 그 친구가 느끼던 어떤 결핍 같은 걸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모성 말고도 영화를 통해 이것만은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나.
=캐릭터, 플롯, 드라마 같은 게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느낌 같은 것으로만 영화가 다 채워지면 좋겠다 하는 거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은 기수가 연습실에서 사부가 들어오기 전에 기타 칠 때 발 클로즈업한 거다. 원래는 길게 잡다가 틸업하려 했는데 너무 긴 것 같아서 잘랐다. 이런 건 굉장히 주관적인 건데 그 순간에 기수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업적 외피를 가졌으나 <마이 제너레이션>과 겹치는 데자뷰 같은 게 있다. 누군가의 세계관이 비록 상업적 외피를 입어도(웃음) 변하기 쉽지 않구나 하는 느낌. 영화가 좀더 장르적으로 보이길 바랐나.
=동시대 한국영화들이 영화적 요소라고 규정된 것들을 마치 융단폭격하듯이 쓰잖나. 그리고 관객은 그게 영화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나는 사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걸 펼치기 힘들다는 현실도 또한 인정하니까, 거기서 온 어중간함이 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는 것 같다. 대개 <마이 제너레이션>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이 제너레이션>의 어떤 장면 같은 건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해라라는 말을 나한테 해줄 때가 있는데, 지금은 그런 걸 찾아가는 걸 수도 있고 더 큰 미로에 빠진 걸 수도 있고. 하여튼 찾아는 가야겠지. <천년학> 봤나? 정말 흥미롭게 본 영화인데 그런 좋은 영화들에 대한 관객의 저조한 반응을 보면 감독으로서 참 힘들다.

-다음 작품은 뭔가. 일본 소설이 원작이잖나.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한 여자의 죽음을 추적해가는 얘기다. 시나리오는 막바지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영화 대사 따라서 이렇게 끝내보자. 감독님은 훌륭한 소년이 될 건가. (웃음)
=훌륭한 소년은 좀 그렇고, 훌륭한 중년이 돼야지. 자, 그럼, 우리 이제 야구나 보러 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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