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심슨, 제시카 알바 등 요즘 수려한 몸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할리우드의 ‘제시카’들 중에서도 그녀는 단연 ‘핫’한 아이콘이다. 2002년 <VH1> <스터프> 등에서 섹시 스타 순위 100위 언저리를 맴돌던 제시카 비엘은 터프한 전투기 조종사로 출연한 <스텔스>를 기점으로 <맥심>의 HOT 100 리스트 18위, <에스콰이어>의 ‘살아 있는 섹시 미녀’ 1위에 올랐고 <스터프>의 2006년 차트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171cm의 키에 축구와 육상, 발레와 요가로 다져진 탄탄하고 유연한 근육, 독일, 프랑스, 영국인에 미국 원주민까지 다채로운 혈통이 얽힌 외모가 특징적이다. 82년생인 제시카 비엘은 14살 때부터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인기 드라마 <일곱번째 천국>에 출연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친근한 소녀로 각인됐지만 본인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어서 영화로 왔다. 몇 시즌 동안 매주 TV에 얼굴을 내미는 건 행운이었지만, 사람들이 날 한 가지 캐릭터로만 기억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였는지, 17살에 <기어>에서 상반신 누드를 찍어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1997년 피터 폰다 주연의 <율리스 골드>에서 폰다의 딸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녀는 2003년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리메이크작으로 인지도를 얻었다. 영화 자체는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비엘은 이후 호러영화 시나리오가 쇄도하는 청춘 스타가 됐다.
무엇보다 비엘의 선굵은 이목구비와 탄탄한 몸매는 최첨단 전투기 파일럿이나 흡혈귀 사냥꾼 역에 딱 맞춤한 질료였다. “사람들을 팔꿈치로 찍고 주먹을 날리는 게 재미있다.” <블레이드3> <스텔스>에서 날카로운 집중력과 절도를 갖춘 여자 무장으로서 거친 액션을 훌륭히 소화했던 그녀가 <블레이드3>의 활을 쏘는 장면에서 실제로 카메라를 박살낸 일화도 유명하다. 보호 유리로 커버되지 않은 렌즈 부분을 정확히 맞힌 솜씨에 스스로도 감탄했다는 후문. 풍만함과 잘 다듬어진 골격이 어우러진 특유의 당당한 품새는 액션영화의 여전사들에게 흔히 덧씌워지는 관음적 시선을 물리친다. 제시카 비엘은 연기 욕심이 상당한 배우이기도 하다. 2006년 출연작인 <홈 오브 더 브레이브>에서는 이라크에서 한쪽 손을 잃고 귀국한 병사 역을 맡아 전후 무너져내린 상이군인의 내면을 연기했다. 19세기 비엔나 귀족으로 출연해 에드워드 노튼과 호흡을 맞춘 <일루셔니스트>는 오디션부터 ‘작정하고’ 덤벼든 영화. “이 역을 꼭 잡고 말 테야. 난 잃을 게 없어”라고 되뇌인 그녀는 무작정 신용카드를 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엔나 공작의 딸 분위기로 옷을 맞췄다.
오디션장으로 가는 길엔 행인들의 시선을 헤치며 ‘비웃음을 사든지, 선택을 받든지 어차피 둘 중 하나니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필사적으로 이 역에 매달렸던 건 “자유롭게 웃고 떠들 수도 없는 19세기 귀족 여자의 부글부글 끓는 이면을 연기하고 싶어”서였다.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열정과 지성으로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여자를 창조하고 싶었다.” 그동안의 역할에 비해 최근 개봉한 <넥스트>의 그녀는 평면적인 액션영화의 여주인공형에 좀더 가깝다. 앞으로 2분 동안 자신에게 벌어질 사건을 미리 볼 수 있는 크리스(니콜라스 케이지)와 사랑에 빠지는 리즈 역은, 비엘에 따르면 “정상적이고, 귀엽고, 얌전하면서 강인하고, 좀 새침하기도 한 여자”다. 그동안 안 해봤던 평범한 여자주인공 역할에 끌려 선택한 작품이지만, 막상 때리고 싸우는 장면이 없자 몸이 근질거렸던 비엘은 결국 타마호리 감독에게 “나도 액션 좀 줘요”라고 조를 수밖에 없었다고. 그녀가 달리는 차에서 튕겨나오는 장면이 그렇게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녀의 육체에 재현된 화려한 여전사 액션을 기대한 팬들이라면 아쉬움도 남겠지만, 자연스런 일상복 위로 넘치는 비엘의 건강미는 주어진 역할 이상의 존재감을 충분히 발산한다.
영화에선 카리스마적 전사와 섹시 아이콘을 오가지만 실제의 그녀는 편안한 이웃집 소녀에 가깝다. 레스토랑에서 벌레가 들어간 음식을 받아도 “난 만날 음식에 머리카락 빠뜨리는데요, 뭘” 하며 웃어넘기는 성격은 ‘여배우’란 존재에 긴장한 상대방을 금세 무장해제시킨다. 패션 브랜드에 둔감하고 편한 옷과 운동화를 좋아해 스타일리스트를 당혹하게 하기도 한다. 털털한 성격이라 할리우드의 유흥보다 동네 바에서 친구들과 타코를 먹는 쪽을 더 즐기기 때문에, 타블로이드의 카메라에 잡힐 일도 별로 없다. 다양한 연기에 목마른 그녀는 장르영화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스칼렛 요한슨 등의 자의식 강한 배우들이 “난 로맨틱코미디나 10대 슬래셔무비는 취미없다”고 선언하는 반면 제시카 비엘은 액션과 호러, 가벼운 코미디에 거부감이 없다. “사람들은 호러영화를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감정이 오르내리는 호러 연기도 재미있다. 액션영화도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다.” 언젠가 ‘여자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하고 싶다는 그녀는 현재 애덤 샌들러 주연의 <척 앤드 래리> 촬영을 마치고 곧 오스카 와일드 원작의 로맨틱코미디 <우먼 오브 노 임포턴스>에 합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