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봉준호의 <괴물>이 그러했듯이, 올해 칸영화제의 주요 화제작들은 지루하고 안이한 프로그래밍의 산실인 경쟁부문 보다는 ‘감독주간(Quinzaine Des Realisateurs)’에서 더욱 풍요롭게 발견되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에도 열렬한 팬층을 지니고 있는 일본 코미디언 마츠모토 히토시의 감독 데뷔작 <대일본인>은 지금 현재 칸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 중 하나다. 모두 두번에 걸쳐 진행된 시사는 몰려든 일본 기자들과 서구 관객들로 완벽하게 메워졌고, 시사가 끝나자 일본 기자들마저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대일본인>은 기타노 다케시의 <모두 하고 있습니까?>이후 가장 막나가는 일본 영화계의 선물이다. 아니, 다케시의 영화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행성으로 유영을 거듭하는 보기드문 괴작중의 괴작이다.
다이사토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극적인 중년의 일본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비밀이 한가지 있으니, 다이사토는 전기 충전을 받으면 거대한 몸집으로 팽창해서 괴수들과 싸우는 히어로 ‘대일본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일본인들은 그가 도로를 부수고 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는 골치아픈 존재라며 무시하고 경멸할 뿐이다. 영화는 다이사토의 일상을 따라가는 TV 매체의 인터뷰처럼 시작하지만 괴수가 등장하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는 특수효과를 곁들인 SF 특촬물로 변신한다. 게다가 영화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타고 흐르면서 점점 관객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유머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는데 이른다.
이 남자의 상상력. 참으로 흉폭하다. 대체 어떤 두뇌피질을 가진 인간이길래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일본 기자들에 따르면) 무뚝뚝하고 민감한 성격인데다 칸에서의 프리미어를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마츠모토의 뒤를 두번에 걸쳐 밟았다. 한번은 일본 언론만을 위한 깜짝 인터뷰 자리였고, 또 한번은 ‘감독주간’에서 주최한 조촐한 공식 회견이었다.
-대체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린 것인가
=내 아이디어? 지금까지 영화들이 했던 것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었다. 재미있고 엔터테이닝한 영화,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영화. 그게 목표였다.
-정치적인 의중이 좀 엿보이던데.
=글쎄. 나에게 이 영화는 그다지 씨리어스한 건 아니었다. 뭐 나중에 보면 문제시될 수 있는 정치적 의중이 보일 수도 있겠지.
-마지막에 미국식 울트라맨들이 나오는 장면은 서구 문화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보여주는 것 같던데.
=일본인에게 서구 문화, 특히 미국 문화는 언제나 존경하고 우러러보면서 꼭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걸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웃으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나도 멜랑콜리하다.
=TV 쇼를 할 때는 그저 일반적인 모습만 보여준 것이지만 나는 원래 슬프고 멜랑콜리한 사람이다. 게다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 아닌가. 이 캐릭터는 내 삶에서 가면을 벗겨낸 것이다.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방식에 매우 놀랐다. 영화속의 보통 일본인들은 모든 것에 매우 지루해보이고 대단히 소극적이다. 다이나믹한 면이 하나도 없다.
=그게 바로 일본 사회다. 그놈의 소사이어티가 원래 그 모양이다. 영화속에서 주인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를 경영하는 마담 밖에 없지 않나. 그게 일본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바꾸려들지 않는다.
-일본의 어떤 감독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나.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는 뭔가.
=에? 글쎄. 나는 일본영화에서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좋아하는 영화가 몇개 있긴한데...감독은 없다.
-첫 시사때 긴장한 모습이 너무나도 역력하더라.
=아주 긴장하고 있었다. 첫 프리미어니까 아무래도.....내가 자신감에 문제가 좀 있다.
-일본 기자들과 이야기를 좀 해봤더니 당신에게서 ‘제2의 기타노 다케시’를 기대하는 마음들이 역력했다. 마음이 무겁지 않나.
=물론이다. 그런 기대를 전혀 염두에 둔 적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나는 다케시를 존경한다. 하지만 내가 이기기를 원한다.
-이기고 싶다고?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꼭 대답해야 하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크라이테리온(기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다.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이 가진 첫영화의 기억이 <철도원>이라고 했다. 당신의 기억은 무엇인가.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페이퍼 문>.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는 잘 모르겠다.
-칸영화제에 처음으로 왔는데 기분이 어떤가.
=이왕 여기에 왔으니 지금보다 조금 더 야망을 크게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캐릭터는 특별한 재능이 있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당신 자신을 투영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게 나다. 피곤하다.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