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두번째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밀양>의 전도연, 송강호, 이창동 감독이 30일 오후 귀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도연을 비롯한 세 주인공의 표정이 그 어느때보다 밝았는데, 지상파 뉴스 기자들까지 대거 따라붙는 언론의 취재 경쟁이 ‘살벌’했던 건 한국영화에서 오랜만의 풍경이었다.
전도연│ 소감은요…, 글쎄,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말로 다 표현될까? 그보다 더 큰 표현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 말로도 다 표현이 안 될 만큼 기쁘고 영광스러워요. (웃음) 세계영화제에 처음 왔는데 상까지 받으니 그분들도 놀라시더라고요. 기적 같은 일이죠. 이름을 호명받았을 때부터 그날 내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어요. 머릿속이 하얘져서. 누가 생각나고 그런 것 없이 멍했다고 할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이청준의 소설을 읽고 5월 광주가 즉각 떠올랐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그 얘기를 전혀 하지 않은 까닭은? 혹시 차기작에 대한 구상이 있는지.
이창동│ 소설에도 광주 이야기는 없거든요. 그때 상황에서 소설이 던지는 메타포였다고 느꼈던 것이죠. 용서와 화해를 말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원용하자면 그런 것이었다는 것이죠. 정치·사회적 맥락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건 어떤 감독님이 농담처럼 하신 말씀인데요. 만약 <밀양>이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를 따라잡으면 국제적 사건이 될 테니까 그때 할리우드로 진출해 <캐리비안의 해적4>를 찍으라고, 하하. 송강호씨도 벙어리 해적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농담이지만 한국영화의 현재를 반영하는 뼈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해요. 차기작과 관련해서는 머릿속에 몇 가지가 굴러다니는데 제가 워낙 게을러서 그냥 머릿속에서 자라도록 놔두려고요. 자라서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
전도연씨는 한류 스타를 뛰어넘어 바로 월드 스타가 됐는데, 칸으로 떠나기 전에 시나리오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제 해외합작 작품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전도연│ 월드 스타요? 글쎄. 공항 들어서면서 처음 들은 말이 ‘월드 스타 전도연’인데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칸에서 받은 상으로 월드 스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고 앞으로 월드 스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요. (웃음) 합작영화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언어적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고요. 제의가 온다면 시나리오 보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송강호씨는 자신이 연기한 경상도 사내의 사투리 정서를 해외 영화인들이 이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요.
송강호│ 상은 전도연씨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밀양>의 영광이고, 나아가 한국영화 자체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을 때든 아니든 한국영화를 좋아해준 팬들에게 선물이 될 듯도 싶고요. 언어적 묘미랄까, 밀양 사람이 주는 존재감이 아무래도 한국에서와 차이가 있겠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싶었습니다. 충분히 작품에 녹아들어가 있어서 한국에서와 마찬가지의 감동과 공감을 거기서 목격했습니다.
홍콩 방송국 기자입니다. 칸 가기 전에 심사위원인 장만옥이랑 특징이 비슷해 주연상을 받을지 모른다고 한국 언론이 많이 얘기했는데 어땠는지. 그리고 홍콩이나 중국에서 합작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전도연│ 심사위원 중에 장만옥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원래 워낙 좋아했거든요. 칸에 가기 전에 감독님과 얘기한 게 부담을 지우고 충분히 영화제를 즐기자고 해서 맘을 비우고 갔어요. 해외에서 출연 제의가 온다면 시나리오부터 꼼꼼히 보고, 좋은 기회라면 할 수도 있겠죠.
어제 귀국 뒤 어떤 일정을 보냈나요.
전도연│ 어제 도착했을 때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시고 인터뷰 요청도 많았지만 남편과 둘이서만 조용히 보냈어요.
감독님은 <밀양>의 관객 수를 얼마나 기대했나요.
이창동│ 관객 수를 예상하며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일정한 액수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투자하신 분들에게 부담주기 싫었기 때문에 적자를 면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숫자가 본질적으로 문제는 아니겠으나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폭이 넓고 깊었으면 하죠.
현재 위기라고 하는 한국영화의 상황을 송강호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송강호│ 감독님과 질문이 바뀐 듯하군요. (웃음) 칸에서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우리 영화계의 과도기적 상황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더군요. 개인적 소견으로 보면, 산업적으로 위축되고 염려되는 면이 부상하고 있지만 꼭 거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거품이 있었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되고 내실있고 건강한 산업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과도기라기보다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비관적이라기보다 희망적으로 봅니다.
전도연씨는 여행 계획은 있는지, 남편은 뭐라고 축하해주던가요.
전도연│ 공항에 도착해서 두 가지 때문에 놀랐어요. 어머니가 공항에 나오시는 분이 아닌데 계셔서 놀랐고, 많은 기자들을 보고 또 놀랐고. 출가외인이라 다른 집으로 가야 하니까 빨리 보고 싶어서 나오셨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시던데 반갑고 놀랐어요. 맘 같아서는 조용한 데 가서 쉬다 오고 싶지만 아직 스케줄이 많이 있어서요. 남편은 기특하고 장하다고, 앞으로 잘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했어요. (웃음)
감독님은 문소리에 이어 전도연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기를 이끌어냈습니다. 여자배우에게서 연기를 이끌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지요? 전도연씨가 촬영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다고 할 정도였다는데.
이창동│ 남녀 배우를 특별히 구분하지는 않는데요. (웃음)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그걸 배우들이 힘들어해요. 원래 갖고 있는 내면의 감정이 인물의 에너지로, 바깥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정도, 그걸 기다리는 정도죠. 너무 기다려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전도연│ 처음에는 사실 자신없어 거절했는데 감독님이 여러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속에서 신애의 감정이나 겪는 상황이 담겨 있었어요. 시나리오만으로는 그게 다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감독님 말씀을 듣고 다시 읽으니 신애의 마음이나 상황이 이해됐어요. 그리고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고통의 끝이 어디인지. 칸에서 관객이 제 연기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고 신애의 감정을 같이 느꼈다고 생각했어요. 반신반의했는데 고스란히 느껴주더라고요. 그런 게 더 감동스러웠어요.
전도연씨가 어떤 배우인지 감독님과 송강호씨가 말씀해주시길.
이창동│ 여러분이 너무 잘 아는 배우라 따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같이 작업했던 사람으로서 보면, 어떤 배우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해진 그릇에 담기 어려운 배우예요. 그 점 때문에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고. 흔히 배우를 보고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말하곤 하는데 전 그거 믿지 않아요. 자기 얼굴 하나를 갖고 있는 것뿐이죠. 그런데 전도연씨는 진폭이 큰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때문에 뭐라 규정하기 어려워요. 제가 도연씨를 괴롭혔다면, 관객도 예상하지 못한, 나도 예상하지 못한, 나아가 도연씨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요구한 거죠. 그게 순간순간 화면에 담겨 있어요. 그래서 예상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배우입니다.
송강호│ 감독님 말씀에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도연씨는 오래도록 알고 지내왔지만 함께 연기해보기는 처음인데, 지금까지 보여준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으나 그 고정관념의 에너지를 훨씬 뛰어넘는 무서운 에너지를 갖고 있더라고요. 너무 강해서 겁이 날 정도로. (웃음) 촬영장에서 항상 코너에 몰렸어요.
감독님은 특별히 문화관광부 장관 일을 하셨는데 그 시절 이후 지금의 한국영화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창동│ 지금 위기에 대한 진단 문제는 많은 분들이 하고 있고, 산업적 제도적 환경적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있어 특별히 할 말이 별로 없는데, 하나 첨가한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좀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이고 실험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규모 배급구조 방식에서 그런 영화로 관객과 만나기는 더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관객의 사랑을 받아낼 것이고 주류 상업영화에도 에너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젊은 영화인들이 더 분발해야 하고, 관객은 그 도전의식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송강호씨는 감독님의 연기 연출 스타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송강호│ 10년 전 <초록물고기>를 하고 이번에 또 함께했는데 감독님을 처음 접해보는 배우라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이유가 연기를 세밀하게 규정하고 그 틀 속에서 방향을 이끄는 스타일이 아니고, 인물과 상황을 배우 스스로 느끼고 연기하도록 하기 때문이죠. 규정짓는 순간 전형성을, 전형적인 연기를 탈피하지 못한다고 하시거든요. 포괄적이고 원론적 말씀을 하기 때문에 힘든 면이 있지만 저는 더 자유롭게 느낍니다. 내가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하면 되니까. 그러다가 작품과 맞지 않으면 걸러주니까. 열려 있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전도연씨는 영화제를 즐기고 싶다고 했는데 어땠는지. 알랭 들롱이 시상했는데 특별한 말은 없었나요.
전도연│ 알랭 들롱이 은밀한 얘기를 했더라도 못 알아들었을 거예요. (웃음) 칸 관례가 상받으면 심사위원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다고 해서 그러던 차에 장만옥과 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간접적으로 팬이라고 전했고 서울 오면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했는데 무척 반가워하더라고요. 그렇게 가까이 만나고 얘기했는데 원래 좋아했던 배우라 설렘으로 좋았어요. 영화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제는 즐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인터뷰 스케줄도 빡빡했고, 수상 때문에 더 맘이 부담됐고.
이창동│ <밀양>이 소통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관객과 더 만나고 싶습니다. 칸에서 상 받은 건 전도연씨 개인이 받은 것이지만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황금종려가 아니라면 여우주연상을 받기 원했고, 그런 보답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계기로 <밀양>이 좀더 격려받는 분위기가 되어 아주 고맙습니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할리우드영화들에 대항해 다시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