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감독은 여성의 욕망에 천착한다. <김진아의 비디오 다이어리>와 <그 집 앞>에서 그녀의 화두는 침묵하는 여성의 욕망을 수면 위로 떠올려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두번째 사랑> 역시 그런 맥락에 있지만, 자기고백 색채가 짙었던 전작들에 비해, 정통멜로의 관습을 비교적 충실히 따라가며 차분히 극적 긴장을 쌓아올리는 작품이다.
가정이 불안정한 백인 중산층 유부녀(베라 파미가)와 생존이 불안정한 동양인 하층민 남자(하정우)의 사랑은 말하자면, 애초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들로 촘촘히 둘러싸인, 이미 비극적 결말을 내재한 것이다. 계급과 인종은 이 비극적 멜로의 씨앗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의 힘으로 거둬낼 수 없는 그 장벽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지는 않는다.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한 사랑에 빠져드는 두 남녀의 심리적 변화와 겉잡을 수 없는 욕망 그 자체다. 그러나 영화는 인물들의 내면에 함께 동요하지 않고 시종일관 고요한 시선을 유지한다. 인물의 감정이 과잉된 숏에서조차 영화는 냉정하게 커트하고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생략과 절제를 택한다. 홀로 남겨진 인물을 담아낼 때도 카메라는 창(문)밖에서 안을, 안에서 밖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냉정한 현실적 조건들이 충돌하는 질퍽하고 고통스러운 로맨스지만, 영화는 여자의 능동적인 욕망에 무게를 두며 너저분한 현실의 곁가지들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는 길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 마치 저 멀리 ‘영원’을 보듯,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세하게 미소 짓는 여자의 얼굴은 격정적 욕망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새겨진 여인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