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_ “일상적인 작은 행동도 긴장이 감돌게 연출했어요” vs 이동진_ “영화의 테크닉으로 웃음을 선사한다는게 놀랍죠”
좀비 콤비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뜨악한 녀석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뜨악한 녀석님의 말(이하 녀석) : <뜨거운 녀석들>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만들었던 팀의 새 영화입니다. 과도하게 유능한 런던 경찰관이 미운털이 박혀 하품나는 시골로 발령받는데 그곳에서 예상 못한 사태를 맞아 대활약하는 이야기죠. 가만 보아하니, 에드거 라이트 감독 일당은 확실히 장르를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0^ 이런 생각도 했어요. 영국은 ‘미지근한 녀석들’의 나라라고 자타가 공인하잖아요? ^^; 그런 배경에서 제리 브룩하이머식 장르영화를 하자면, 궁색하지만 이 길밖에 맞는 길이 없었겠다 싶더라고요.
좀비콤비님의 말(이하 좀비) : 에드거 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장르를 마음껏 뒤틀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감독인 것 같긴 해요. 그래도 <뜨거운 녀석들>은 조지 로메로의 <새벽의 저주>를 통째로 패러디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는 좀 달라서, 패러디영화로만 범주화하긴 어렵죠. 패러디를 동력으로 삼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녀석 : 예. 보는 동안 <못 말리는 람보>나 <무서운 영화>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어요. 이런저런 인용과 농담을 한 바구니에 담은 영화가 아니라, 독자적인 사건과 캐릭터가 일관성을 갖고 발전하니까요.
좀비 : 그 두 시리즈처럼 특정 장면에서 특정 영화를 떠올리는 식의 재미만 기대하면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놓치고 마는 거죠. 저는 <뜨거운 녀석들>에서 에드거 라이트가 이전보다도 진일보했다고 봐요. 이제 슬슬 마무리하는구나 싶을 때 전혀 의외의 이야기와 주제로 넘어가며 관객의 정신을 번쩍 나게 만들잖아요. 저는 이 영화가 가진 일종의 정치영화적 성격이 전작과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녀석 : 이족(異族)에 대한 공포와 ‘더 큰 정의’로 합리화된 집단폭력을 소재로 다룬 점에서는 <어둠의 표적>이나 <안개마을>을 연상시키는 데도 있죠. 야밤에 열리는 마을 자치회의 집회는 좀비 무리처럼 으스스했고요.
좀비 : 이 영화는 영국사회의 보수화에 넌더리가 난 사람이 만든 영화라고 봅니다. 공익을 내세우면서 공익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배제하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폭력적으로 내면화한 질서로 이끌어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봐요. 사실 공동체를 향한 이상이 인류의 역사에서 거대한 비극을 낳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헉, 좀 무거워지는듯…. -_-#
녀석 : 한편 마을 원로들은 법이 상징하는 중앙권력에 대립하는 지역 토착권력이기도 하죠.
좀비 : 외부와 내부, 구세대와 신세대, 토착민과 이방인의 대결구도로 영화가 짜여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도 잠깐 떠올랐어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면, 선생님이 점수를 발표한 다음에 성적이 많이 나쁜 아이들을 골라서 “평균점수 깎아 먹는 놈”이라고 하면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때리는 벌을 주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전 그 ‘평균점수 깎아 먹는 놈’이란 말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사회적 린치의 현장을 이 영화 속 지역자치회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거죠.
녀석 : 영화 속 논리대로면 다른 학교로 전학가려는 우등생도 린치를 가해야죠? --;
좀비 : 그 예가 꽃집 아주머니잖아요? 이사가서 훌륭한 원예 실력으로 다른 마을을 빛내고 이 마을의 위상을 떨어뜨릴까봐 또 린치를 가하니까요.
녀석 : 그런데 부동산 열풍을 열쇠로 사건의 인과관계가 그럴듯하게 꿰어지는가 싶더니 정작 밝혀진 살인 동기들은 단순하기 짝이 없죠. 연기가 꼴불견이라 참아줄 수 없었다는 둥. ^0^ 특히 지역저널 편집자를 두고 “그놈이 에디터된 뒤 잡지가 질 떨어졌어! 오자도 너무 많이 나고!” 할 때는 동업자로서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우디 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가 생각나는 대목이었고요.
좀비 : 저는 린제이 앤더슨의 <만약에…>를 가장 강렬하게 떠올렸어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신-구세대가 총격전을 벌이는 도중 신부가 나와서 종교적 권위로 제지하려고 하는데, 결국 먼저 공격하려 했던 신부에게 서슴없이 총을 쏘잖아요? 에드거 라이트도 그 장면을 찍을 때 <만약에…>의 충격적인 라스트신을 염두에 뒀을 거라고 봅니다.
녀석 : 영화의 톤으로 보자면 알렉 기네스가 출연한 오리지널 <레이디킬러>랑 닮았죠. 몇년 전 톰 행크스 주연의 리메이크작이 국내 개봉했던. 어색한 불안과 공포가 “홍차 한잔 하실라우?”식의 순박한 분위기와 떨떠름하게 공존하는 품이 닮았어요.^^
좀비 : 그 원작을 보셨군요. 전 못 봤어요.
녀석 : 주드 로가 최근 주연한 <알피>(국내 개봉명은 <나를 책임져, 알피>???)도 마이클 케인의 동명 출연작이 훨씬 흥미롭죠.
좀비 : 역시 뭐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인 거야. 오늘 이상하게 다섯자 한자성어를 계속 쓰는군요. -_-#
녀석 : 아니 성균관에라도 다녀오신 겝니까? --; 그런데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뜨거운 녀석>이 얼마나 웃기는 영화인지 전달이 안 될 것 같아 살짝 걱정되는데요?
좀비 : 이렇게 영화에 폭 빠져 웃어본 것이 오래간만입니다. 에드거 라이트의 유머 감각은 정말 탁월해요. 그런데 그 유머가 놀라운 게 단순히 개그가 아니라 편집이나 촬영 같은 영화의 기본적인 테크닉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볼펜을 꺼내드는 장면이나 나무의자를 당겨 앉는 장면까지도 참 창의적이고 웃기잖아요.
녀석 : 편집이 상당히 빨라요. 일상적인 작은 행동도 긴장이 감돌게 연출했어요. 저는 하필 그날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를 보고 연달아 <뜨거운 녀석들>을 보아서 시신경이 완전히 늘어나버렸습니다. -.- 심지어 <나쁜 녀석들2>의 대화신 카메라 360도 돌리기 신공의 패러디까지 나왔잖아요.
좀비 : 허허, 박하사탕과 콜라를 입에 한꺼번에 털어넣은 셈이네. 근데, 말장난 개그도 재밌더군요. “농담 아니지?”(You’re not pulling my leg)라는 대사 직후에 이어붙이는 장면이 시체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잖아요?
녀석 : 인용도 잔뜩 있죠. <차이나타운> 대사를 따와서 “잊어버려. 여긴 샌포드잖아” 하는 말도 있었고 동네 술집의 취한 10대들을 <스타워즈> 제다이 생도처럼 ‘영링’(youngling)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또 동네 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하필 바즈 루어만 영화판을 공연하더군요.
좀비 : 급기야 카디건스의 <러브 풀>을 합창하잖아요. ^^: 사투리 강한 노인의 웅얼거리는 말을 두번 통역을 거쳐 알아듣는 장면도 압권이었어요.
녀석 : 심지어 러닝타임도 웃겨요. 2시간1분. -_-#
좀비 : 하하. 쇼트 수도 세어봐야 하지 않을까. ^^ 혹시 2001개 아냐?
녀석 : 참 공교롭게 오늘 이야기할 영화들은 모두 하나씩 경고드릴 사항이 있어요. <뜨거운 녀석들>의 안전 관람을 위한 경고! “목들이 굴러다닙니다. 발밑 조심.”
좀비 : 가장 끔찍한 순간은 성당 지붕에서 뭔가 떨어질 때죠. 그땐 3초간 눈을 감으시길.
녀석 : 역시! 선배도 거기군요. ^^ 확실히 기준 이상 잔혹해요. 왜 그랬을까요?
좀비 :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아예 좀비들이 산 사람 내장을 뜯어 먹는 장면까지 있잖아요? 거야 뭐, 취향이라는 말로밖엔 설명이 안 되는데, 영화가 워낙 재미있으니 감수하고 봐야죠.
녀석 : 참, 접수계의 경찰은 계속 이안 뱅크스의 책을 읽고 있더군요. 꽤 살벌한 책을 쓰는 작가인데.
좀비 : 에드거 라이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요. 전작에서도, LP판으로 좀비들을 공격할 때 프린스의 <퍼플레인>은 아까워서 못 던지고 다이어 스트레이츠 판은 미련없이 던지잖아요? ^^
녀석 : 그럴 때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전집 같은 게 있으면 좋았으련만. 헉, 훌리오 팬들께 죄송.
좀비 : ‘한국인의 팝송 1000곡’ 같은 게 질과 양에서 딱!이죠. ^^ 전 배우 중에서 티모시 달튼이 인상적이었어요. 티모시 달튼하면 다들 007부터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달튼은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도 가장 과묵하고 침울한 스타일의 본드였죠. 그런데 이 영화에선 정말이지, 어쩜 저렇게 망가지나 싶더라구요.
녀석 : 그런데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사실 이런 유의 재기를 보여준 감독들이 소식이 끊어지는 일이 많잖아요? <웰컴 투 콜린우드>의 루소 형제를 비롯해서.
좀비 : 전작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 성큼 한 걸음 나아간 걸 보면 기대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같은 배우와 작업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다른 배우들과도 해보면 좋겠어요. 다음 영화가 관건일 듯하지만 실망을 줄 것 같진 않습니다.
녀석 : 우린 만날 다음 영화가 관건이라고 하지 않아요? 어째 좀 찔려요. -_-#
좀비 : 그럼 다음 영화까진 보장하는데, 그 다음이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바꿀까요? ^.~
김혜리_“<두번째 사랑>은 가는 길이 뻔한 이야기라 감정의 궤적을 설득하는 기술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 배우의 표현력이 관건인 셈이죠.”
이동진_“기묘한 건, 이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이 영화에서 한국계가 아닌 딱 한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는 거죠.”
녀석 : <두번째 사랑>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불임 부부가 있는데 남편을 사랑하는 여인이 살아갈 의욕을 잃은 남편을 위해 남편과 같은 한국계 남성과 임신을 시도했다가 사랑으로 발전한다…. 일단 참 고전적이고 고풍스러운 이야기죠?
좀비 : 스토리로는 신파에 가깝죠. 결국은 핵심이 심리묘사에 있는 영화죠.
녀석 : 가는 길이 뻔한 이야기라 더욱 감정의 궤적을 설득하는 기술이 중요했던 영화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소피(베라 파미가)와 지하(하정우)는 이 관계에 대해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죠. 그렇다고 둘이 서로 감정을 털어놓는 건 너무 설명적이니, 애초 배우의 표현력이 관건인 영화였습니다.
좀비 : 이 영화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인물들 사연을 거의 설명하지 않잖아요.
녀석 : 특히 지하쪽은 암시가 거의 없죠.
좀비 : 지하의 한국 생활(이렇게 쓰고보니 어디서 퀴퀴한 냄새가 풍겨오는 듯 -.-)이나 한국에 두고 온 애인과의 관계는 어떤 상황인지가 그저 딱 한번 짧은 전화통화로만 묘사될 정도니까요. 여자도 주변 이야기가 상당히 거세되어 있죠. 그저 시댁 식구와의 불편한 자리 정도가 계속 묘사될 뿐.
녀석 : 다만 계급적으로 소피보다 남편쪽이 우월했을 거라는 정도를 “난 못 배워서”라는 대사에서 짐작하는 정도죠.
좀비 : 이 영화는 사실 계급, 인종, 종교 문제 등이 다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이 깊이 탐구되지는 않은 인상이에요. 대신, 무엇보다 소피라는 인물의 심리묘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죠.
녀석 : 그래요. 감독은 소피의 내면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매만지고 또 매만진 거 같아요.
좀비 : 배우에 대한 애착도 있었던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는 사실 동양영화에서 주연을 맡을 법한 외모죠. 힐러리 스왱크처럼 <가라데 키드> 같은 영화에 나와도 의외로 어울릴지도 몰라요. ^^
녀석 : 연기도 대단히 훌륭했지만 그녀가 풍기는 정서가 동양적이었어요. 스크린에서 단숨에 친밀감을 자아내는 비범한 얼굴이에요.
좀비 : 뜨개질하는 모습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백인 여배우도 드물 거예요.
녀석 : 내내 저는 케이트 블란쳇을 좀더 가녀리게 빚어놓은 버전을 연상했어요. 묘하죠. 보통 외국인 배우의 연기는 대개 하나의 필터를 거쳐서 감상하게 되는데 베라 파미가의 연기는 직접적으로 와 닿더군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좀비 : 기묘한 건, 이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이 영화에서 한국계가 아닌 딱 한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는 거죠.
녀석 : 하정우의 연기도 자연스럽고 좋았어요. 영어도 인물에 딱 적당할 만큼 잘했고요. 신인이라고 하지만 늘 10년쯤 된 배우처럼 연기하는 배우죠. 그런데 영어 콤플렉스가 우리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라 그런지, 지하가 영어 대사를 할 때 진지한 장면임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이 많더군요. “컨글레츄레이션” 이라든가….
좀비 : 하하. 그런 영어 문장들이 있죠. 이를테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한국 배우가 “하우 아 유”, 하면 꼭 그 다음 대사가 “파인 생크스, 앤드 유?” 해야 할 것 같아서 웃기잖아요. 이런 게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 듯.
녀석 : 김진아 감독이 더글러스 서크 영화를 인터뷰에서 언급했었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소피는 어딘가 동시대 미국 여성 같지 않은 구석이 있어요. 물론 남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는 성격이라는 설정이지만, 혼전 낙태를 혼자 힘으로 감당한다거나 종교도 남편 집을 따라 말도 못 알아듣는 한인교회에 나간다거나.
좀비 : 영화의 진행이나 스타일 자체도 고전적이죠.
녀석 : 의상도 1980년대 다이애너 비가 즐겨 입던 풍의 구식 우아한 옷을 주로 골랐어요.
좀비 : 한국 감독이 보고 싶어하는 미국 여성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요.
녀석 : 고전적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영화의 전개에 군더더기가 없었어요. 세부 묘사나 대사도 적절했고요. 이 영화의 고민은 그보다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에 있는 것 같아요.
좀비 : 전 베드신이 흥미로웠어요. 둘의 처음 네번 섹스신 묘사를 비교하면 특히 그랬는데, 섹스신 자체보다 그 직후에 붙인 장면들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봤어요. 첫 섹스신 직후에는 여자가 불결해진 자신의 몸을 닦아내려는 듯 샤워를 하고, 두 번째 섹스신 직후에는 남자가 욕실에서 샤워하는 척 앉아서 여자가 가기를 기다리죠. 세 번째는 섹스신 뒤에 잠든 여자한테 남자가 이불을 덮어주고, 네 번째에는 처음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교감을 가진 뒤에 그런 감정에 놀란 여자가 서둘러 지하의 집을 나서는 게 이어지는 장면이잖아요. 그런 묘사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녀석 : 단조로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단조로운 행위를 갖고 어떻게 관계의 진화를 묘사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요?
좀비 : 재미있었던 것은 체위에 대한 묘사였어요. 이 영화에서 임신하기 위한, 감정을 배제한 섹스들은 모조리 다 남성상위로 묘사되어 있죠.
녀석 : 그쪽이 임신 확률이 높은 건가요?
좀비 : 헉! -.- 반면에 정서적인 교감이 있고 사랑이 개입되는 섹스는 입위나 좌위로 표현되어 있어요. 남성상위를 가장 인간다운 체위라고 힘주어 강조한 <불을 찾아서>의 장 자크 아노 같은 감독이 이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랄 듯. ^^
녀석 : 둘이 연인이 된 뒤 소피가 꽃을 사들고 주인 없는 지하의 방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죠. 그녀는 지하가 새로 사놓은 이불을 보고 멈칫하는데요. 그런 뒤 남자를 기다리며 흔들리는 커튼을 바라보는 시점숏의 감성이 좋았어요. 선물도 좋지만, 여자들은 지나가며 한 말을 잊지 않고 남자가 사다놓은 사소한 물건에 굉장히 행복해지거든요. 예컨대 “저 그릇 예쁘다” 무심코 말했는데 얼마 뒤 그 사람 찬장에서 그 그릇을 발견한다든지.
좀비 : 그럼 “저 집 예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경우엔 어떡하죠? +_+
녀석 : 뭐, “저 섬 예쁘지 않아?”보다는 낫잖아요. --;
좀비 : “저 여자 예쁘지 않아?”의 경우는? 그럼 그 여자를 찬장에 넣어두고…. 헉, 내가 뭔 이야기를….
녀석 : 아! 그때는 절대로 간격을 두지 말고 반사신경을 활용해 “아니!”라고 딱 잘라 대답하셔야 합니다. 2초 이상 늦어지면 끝장이죠. “응”보다, 한참 망설이다 “아니”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나빠요.
좀비 : 아, 글쿤요. 난 안돼….
녀석 : <두번째 사랑>이 간결하게 진행되고 인물의 과거사를 굳이 설명 안 하는 것엔 동의해요. 하지만 소피가 임신을 위해 극단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남편의 침체, 즉 그가 살기 싫어하는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알고 싶더군요. 이야기의 첫 고리일 수도 있는데 그 고뇌가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든요.
좀비 : 저도 그 점이 많이 걸려요. 아이가 없는 남자가 다 자살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절망을 설명하는 건 다른 전사(前史)들과 달리 이 영화에 꼭 필요하죠. 왜냐하면 인물의 고통과 선택에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니까요.
녀석 : 임신은 실상 이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추측해요. 아이의 결핍은 다른 결핍을 외면하게 해주는 알리바이 아니었을까요. 흔들리는 사랑과 행복을 아이로 못질하려고 서두른 게 아닐까. 아이가 없어도 아내가 정말 그에게 소중한 존재라면 남편이 그렇게 아무런 고통의 토로나 상의 없이 바로 자살을 기도할 수 있을까요?
좀비 : 자살하려는 사람이 아내와 상의하겠수? ^^ 이 영화와는 별도로 가족이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녀도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봐요.
녀석 : 그런데 그런 경우 자살의 이유가 아이가 없어서라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좀비 : 그래서 설명이 필요한 거죠. 저는 이 영화에서 소피가 지하에게 사랑을 느껴가는 부분부터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어요. 심리의 진행이 이 소재에서 미리 나 있는 길로만 가는 것 같은 거죠. 그래서인지 정작 그런 길에서 벗어난 듯한 종반부의 “이 아이는 내 아기예요”라는 페미니즘적 발언과 행동이 흥미로우면서도 울림이 그리 강렬하진 않더라고요.
녀석 : 페미니즘적이랄 것도 없이 당연한 발언 아닌가요. 여기서 <두번째 사랑>의 안전 관람을 위한 경고! “임산부를 폭행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성 관객은 임신 경험이 있건 없건 그런 장면에서는 통증을 교감하는 듯해요. 그 대목에서 객석이 일제히 작은 비명을 질렀거든요. 결국 남편 캐릭터가 버림받아 마땅한 악당처럼 되어버린 점이 유감이에요. “한번 더 기회를 주겠어. 아이를 지우고 날 사랑한다고 해”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라지 않았다는 남자가 극히 혈연주의적인, 구식 대사를 하는 점도요.
좀비 : 그런데 난폭한 행동을 하기 전까지 남편의 언행은 충분히 말이 되지 않나요?
녀석 : 그는 결혼 전에도 낙태라는 힘든 경험을 여자 혼자 겪게 내버려뒀죠.
좀비 : 그 낙태는 남자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죠.
녀석 : 그러나 여자가 그 일을 고백했을 때 남자에겐 사과나 위로의 빛은 없었고 “네가 내 자식을 몰래 죽였어?” 하는 투였어요. 또, 당시 소피가 남자에게 알리지 않은 건 그의 서포트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밖에 상상할 수 없거든요. 아니, 제가 흥분을….
좀비 : 단순히 혈연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 뒤 다른 남자와 사랑해서 아내가 가진 아이를 결혼의 틀을 유지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게까지 쿨한 남자는 거의 없답니다. ^^ 대리부를 이용한 아내를 받아들일 수 있더라도, 대리부를 너무나 사랑하게 된 아내의 아이를 키우며 좋은 부부로 사는 건 정말 어렵죠.
녀석 :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두번째 사랑>에서 인종 차이는 표면적으로 전혀 갈등에 포함되지 않아요. 아주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그 점은 이번 주 개봉하는 레즈비언 로맨스 <스파이더 릴리>와도 통한답니다. 그 영화에서도 섹슈얼리티 자체는 화제로 오르지 않거든요. 마지막으로 롤랑 조페 감독의 <4.4.4.>(Captivity)를 이야기해볼까요?
이동진_“<4.4.4.>는 영화가 두편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초반에는 어떻게 하면 관객을 괴롭게 할까 궁리하다가 후반으로 가면 전혀 다른 스릴러 같잖아요.”
김혜리_“범인에게 저항하는 포로들이 감금자에게 훈련받듯 독해지는 재미가 있어야 할 텐데 아니죠. 오리무중이다보니 절정부의 해방감도 미약해졌어요.”
좀비 : <4.4.4.> 한글 제목 참 이상하지 않아요? 무슨 유제품 이름 같아요. ^^
녀석 : 하하. 보도자료를 읽기 전에는 제목이 왜 4.4.4.인지 맞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네개의 사물함 네개의 열쇠 4일간의 납치를 뜻합니다.
좀비 : <300>이나 <넘버 23>처럼 요즘 숫자를 내세운 영화가 많더니. 뭔가 게임스럽고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녀석 : 슈퍼모델 제니퍼(엘리샤 쿠스버트)를 정체모를 인물이 납치해 가두고 악랄하게 괴롭히고 농락하는 이야기입니다. 무섭다기보다 불쾌한 면도 있죠.
좀비 : 거의 영화가 두편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초반 50분까지는 초지일관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을 괴롭힘으로써 관객을 괴롭게 만들까 궁리하는 상황극 같죠. 그러다가 후반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스릴러 같잖아요.
녀석 : 초반은 목줄을 잠깐 늦췄다 조이기를 반복하는 동물실험의 느낌이죠.
좀비 : 게임스러운 것까지는 좋은데, 초반 50분이 정말 괴롭더라구요. 특히 신체 장기와 기타 육체 부속을 믹서기에 가는 장면에선 정말 다 눈 감고 있었을 거예요. ^^
녀석 : 여기서 <4.4.4.>의 안전 관람을 위한 경고. “동물을 학대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좀비 : 애완견을 놓고 제니퍼가 당하는 일은 거의 ‘소피의 선택’이죠.
녀석 :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감금된 장소는 실내에 전기세, 수도세, 군만둣값 정도면 유지될 법한 여인숙급 시설이었던 반면 <4.4.4.>의 감옥은 어두워서 그렇지 최첨단이더군요.
좀비 : 이 영화에 나오는 집은 지하실과 위층이 아주 다르죠? 그나저나 기자시사에서는 미국판을 상영했고 국내 일반상영 때는 감독판을 상영한다지만, 그래도 기자들이 본 영화도 완결된 미국판일 텐데 미완성의 느낌이 많이 나요. 처음에 저는 제니퍼 린치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같은 이야긴 줄 알았어요. 광기어린 사랑 이야기. 그런데 이도저도 아니더군요.
녀석 : 그렇죠. ^^ 처음부터 ‘도마’에 사람을 올려놓고 시작하다시피 하니까. 호러인 듯하지만 중반 이후 긴장이 깨지고 스릴러라고 보기엔 퍼즐이 쉽죠.
좀비 : <미저리>처럼 가둔 자와 갇힌 자의 심리게임이 리얼한 것도 아니고, 범죄의 단계도 뻔해요.
녀석 : <4.4.4.>를 보니 요즘은 연쇄살인범도 그림 콘티를 그리더군요. +_+ 이 영화는 초반부 탈출을 시도하면 얼마나 가나 잠시 두고 보다 기절시키기를 반복하며 암전으로 장면을 전환하죠. 그런데 그것의 방향성이 없어요. 범인에게 저항하고 도전하는 포로들이 감금자에게 훈련받듯 약아지고 독해지는 재미가 있어야 할 텐데 아니죠. 이처럼 오리무중이다보니 막상 절정부의 해방감도 미약해졌어요.
좀비 : 시퀀스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죠. 이 영화에서 납치한 자가 납치된 자를 계속 심리적 육체적으로 린치할 때 이전에 똑같이 당했던 피해자의 녹화장면을 주인공에게 보여주잖아요? 그걸 미리 보며 자신에게 다가올 순간을 상상하는 심리적 공포 정도는 흥미로웠어요.
녀석 : 그 대목까지 저는 <4.4.4.>가 스너프 필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제니퍼를 조사한 자료와 콘티북까지 있어서 스타의 언행 하나하나를 비꼬는 줄거리와 이미지로 스너프 필름을 찍는 이야기일까 싶었지만…. 살인마는 따로 있는데 여차저차해서 여러 사람 마지막 숨통을 끊는 장본인은 엉뚱한 사람이란 점도 재미있었어요.
좀비 : 끝까지 다 보고 나면,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결국은 “넌 너무 예뻐. 그래서 내가 미치겠어”인 셈입니다. -.-
녀석 : 시사회에서 보지 못한 2차 반전은 개봉 이후에 확인할 수 있겠군요. 여러 상상은 머릿속에만 담아두죠. 끝인가요? 아함, 지금 나오는 노래 좋군요. 저도 CD를 굽는 법을 알면 좋겠어요.
좀비 : 별로 안 어려워요. 가르쳐드릴 테니, 대신 대화명 바꾸는 법 좀 알려주구랴. --;
녀석 : 맙소사, 이건 마치 구구단 3단을 가르쳐줄 테니 시계 보는 법 가르쳐달라는 형국이에요. T-T
좀비 : 우리는 정보화사회의 평균점수를 깎아 먹는 놈들이야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