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7일 오후 2시, 파주 아트서비스에 마련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세트는 다른 현장에 비해 유독 선명한 때깔을 자랑했다. 극중 돈 잘 버는 엄마 영미(이미숙)의 집인 만큼 거실로 들어서는 입구는 명품 구두로 가득 차 있고, 제작사 직원들마저 ‘여성들의 로망’이라고 소개한 아일랜드식 주방과 와인셀러 그리고 명품 옷과 가방으로 둘러싸인 옷방이 있다. 세련된 언니들이 자족하며 사는 금남지구로 보이지만, 러닝머신에 걸린 속옷들은 이들에게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서글픈 사연이 있음을 알려준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10대, 20대, 40대 여성들이 사랑과 일, 행복에 대해 난장 수다를 펼치듯 각각의 삶을 쉼없이 살아가는 영화. 이미 <싱글즈>로 20대 후반 여성들의 족적을 뒤쫓았던 권칠인 감독은 “일종의 기획영화이지만, 전형성에서 벗어나려 많은 노력을 했다”며 “<뜨거운 것이 좋아>는 <싱글즈>의 핵심정리이자 종합선물세트”라고 밝혔다.
이날 제작진은 극중 아미(김민희)의 생일잔치를 촬영했다. 물로 채운 소주병, 포도주로 만든 와인이 가득 찬 이 자리는 엄연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지만, 오가는 대화는 장례식날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죽은 이의 뒷담화를 나누는 것마냥 가열차다. “입봉하면 집을 떠나겠다”는 동생의 말에 언니는 “일에 미치고 싶어도 네가 그런 능력이 있냐”고 다그치고 한술 더 떠 조카인 강애(안소희)는 “이모는 내 인생의 숙제”라며 화를 돋운다. 참다 못한 아미가 발을 구르고 나동그라지면서 마무리되는 이 신의 리허설에서 김민희는 간혹 NG를 내기도 했다. 끊긴 타이밍을 잇는 건 KBS <연예가중계>의 김태진 리포터. “짜잔, 제가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아니, 생일 축하하는 자리인데 샴페인이라도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애양은 엄마랑 이모는 가만히 있는 데 왜 혼자 요리를 해요?” 극중 영미의 딸이자 아미의 조카인 강애 역을 맡은 댄스그룹 원더걸스의 안소희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큼 연기도 재밌다. 다른 멤버들도 연기를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묻는 경우도 많고, 학교 친구들도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7월 중 모든 촬영을 마무리할 <뜨거운 것이 좋아>는 올 가을 이 세 여인의 속사정을 공개할 예정이다.
“적당히 예쁘게, 보다는 캐릭터 해석과 고민이 중요”
함현주 의상팀장
함현주 의상팀장에게 <뜨거운 것이 좋아>는 로맨틱코미디란 장르의 재미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로맨틱코미디는 적당히 예쁘게 입히면 그만일 것 같아 멀리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로 로맨틱코미디 역시 캐릭터 해석과 고민이 더 커야 할 장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뜨거운 것이 좋아>는 세 여자의 개성이 매우 강한 터라 의상 설정에서도 고민을 많이 한 작품. 극중 고등학생인 강애에게는 기존의 교복에서 벗어나 영국 사립학교 분위기의 원피스 교복을 입혔고, 아미에게는 헐렁한 스타일의 옷들을 입혀 자연스러운 매력을 강조했다. 또한 <뜨거운 것이 좋아>에는 입는 의상뿐만 아니라 “놓이는 의상”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이들의 집이 남성이 없는 공간이란 특징을 드러내려 했다. 그래서 여성의 특권인 하이힐을 배치했고, 옷방에도 명품 옷과 핸드백들을 협찬받아 채워넣었다.” 대학 시절 학교에 강사로 온 정구호 디자이너와의 인연으로 참여한 <텔미썸딩>이 그녀에겐 첫 영화.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보는 게 재밌어서 했지만 하다보니 20대 전부를 영화판에서 보냈다. 요즘은 최근 끝낸 <마이 파더>와 <뜨거운 것이 좋아>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것 같아 어느 영화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