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17세 해리, 고뇌에 빠지다
2007-07-10
글 : 강병진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도쿄 시사기

“이건 애들이 할 키스가 아니다.” 지난 6월29일, 도쿄 롯폰기 힐스 그랜드 하얏트 호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하 <불사조 기사단>)의 정킷을 취재 온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극중 해리와 초 챙의 능숙한 키스는 단연 화제였다. 제작자인 데이비드 헤이만의 말로는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성장을 지켜본 스탭 중 한 사람은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지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성장을 지켜본 기자들 역시 어느새 커버린 해리의 모습에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언제까지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해리로 남아 있어주기를 바라는 덧없는 바람 때문이거나. 2007년 대한민국에 사는 성인들에게 <불사조 기사단>이 던져준 화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덤블도어 교장과 마법부 퍼지 장관의 기싸움은 정치판을 쏙 빼닮았고, 호그와트를 온갖 규칙들로 장악하려는 돌로레스 엄브릿지의 음모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학법 투쟁을 연상케 했다. 심지어 예언자 일보의 조작기사에 상처받는 덤블도어의 모습에서 기자실 폐지 논란을 떠올렸다면 억지일까. 만약 <불사조 기사단>이 한국영화였다면 더 많은 억측들이 속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온갖 사회적 이슈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불사조 기사단>의 호그와트는 더이상 아이들을 위한 꿈과 판타지의 공간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조짐은 3편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이 죄수>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불사조 기사단>은 고뇌에 빠진 해리의 히스테리가 폭발하는 지점이자, 그에게 좀더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번 시리즈 역시 개학을 기다리는 해리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전편에서 케드릭의 죽음을 목도한 해리는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고 사촌형제인 더들리는 더욱 못된 아이가 되어 해리를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 날, 머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디멘터들이 나타나 해리와 두들리의 죽음을 먹으려 한다. 호그와트 외에는 마법을 쓸 수 없는 미성년마법사 해리는 어쩔 수 없이 “엑스페토 페트로놈”을 외치고 그 탓에 호그와트의 부엉이로부터 퇴학명령서를 받는다. 고민에 빠진 해리 앞에 나타난 마법사 오러들은 그를 비밀장소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해리는 볼드모트에 대항하기 위한 불사조 기사단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덤블도어의 도움으로 퇴학을 면한 해리는 다시 호그와트에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어둠의 마법방어술 교수로 새로 부임한 돌로레스 엄브릿지가 걸림돌을 놓는다. 실전보다는 이론에 충실한 그녀의 수업은 볼드모트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것. 결국 해리는 친구들을 모아 덤블도어의 군대를 조직하고 어둠의 마법방어술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예이츠는 <해리 포터> 시리즈 중 가장 방대한 5권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들을 쳐내고 해리의 심리와 그의 사회적 관계에 주목했다. 초 챙과의 키스는 오붓한 장면으로 막을 내린 뒤 이렇다 할 후일담이 없다. 이성에 눈뜨는 것보다 17살인 해리에게 더욱 중요한 질문은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다. 어린 나이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었고, 볼드모트와의 싸움에서 주역으로 나서야만 하는 해리는 이제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 선생에게 반항도 한다. ‘닥쳐!’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사춘기 소년의 이유있는 반항이 영화의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그런 해리의 친사회적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이다. 론과 헤르미온느의 도움으로 덤블도어의 군대를 조직하고, 스스로 어둠의 세력과 맞서면서 친구들과의 우정을 더욱 탄탄히 쌓는다. 덕분에 활자가 전해준 마법의 흥분은 잦아들었지만 분노 게이지는 더욱 거세졌고, 이야기는 빈약해졌지만 해리의 내면세계는 두터워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매력은 캐릭터와 함께 아역배우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호그와트를 총총거리며 돌아다니던 꼬마들은 이제 빗자루를 타고 템스강변을 누비고 스스로 조직을 꾸리고 사랑을 한다. 말하자면 관객에게 <해리 포터>는 일종의 리얼리티 쇼와도 같은 것이다. 제작자인 데이비드 헤이만은 데이비드 예이츠가 연이어 연출을 맡기로 한 6편에서 “론과 헤르미온느의 키스신이 나올 것이고, 해리와 론의 동생인 지니의 러브스토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원작자인 조앤 K.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7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에서 2명의 중요한 인물이 죽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춘기의 사랑, 뜻하지 않은 죽음 등 호그와트는 점점 마법을 모르는 머글의 세계와 닮아가고 있다. <불사조 기사단>은 미국,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의 개봉보다 이틀 앞선 11일 한국에서 먼저 개봉될 예정이다.

대니얼 래드클리프 인터뷰

“나는 해리에게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해리 포터와 함께 성장해왔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나쁜 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단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더라도 내일 촬영이 있으면 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좋은 점은 지금처럼 세계 많은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좋은 사람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상팀 중 매우 친한 친구를 만들기도 했고, 게리 올드먼과 각별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은 해리 포터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연극 <에쿠우스>에서 알런 역할을 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나는 해리 포터와 절대 멀어지고 싶지 않다. 나는 해리에게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에쿠우스>의 알런은 아주 어려운 역할이었다. 더군다나 연출자가 요구하는 기준이 매우 높아서 요구하는 것도 많아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기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매우 놀랍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후에는 흥미롭거나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배역을 맡고 싶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면연기를 선보였다. 참조한 다른 작품이 있는가.
=스네이프 교수에게 볼드모트가 나의 내면에 침투해 올 때 방어하는 오클러먼시 마법을 배우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내 책상 위의 천사>(An Angel At My Table)라는 영화에서 전기의자에서 충격을 받는 장면과 매우 유사해 참조했다. 볼드모트가 내면으로 침투하는 부분은 감독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감독님과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그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많이 논의했고 잘해낼 수 있었다.

-초 챙과의 첫 키스신은 어땠는가. 좋았는지, 혹은 긴장했는지.
=감독님이 (첫 키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능수능란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혀를 아래로 납작하게 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셨지만, 혀는 사용하지 않았다. (웃음)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연기와 별다를 게 없었다. 여러분들은 특별한 답을 기대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다른 연기와 마찬가지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만 인터뷰

“교장선생님처럼 아역 배우들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1편부터 배우들의 성장을 지켜봐왔다. 아역배우와 함께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가장 힘든 점은 시간관리다. 영국 노동법상에 16살 이하의 연기자는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있을 수 없다. 또한 매 시간 단위로 15분의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건강을 생각해 사탕이나 콜라, 초콜릿 등의 음식을 못 먹도록 감시도 해야 한다. (웃음)

-제작자로서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책임감도 클 텐데.
=실제로 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선생도 고용하고 보통 학생들의 교육수준에 맞춰 커리큘럼 역시 고려해야 한다. 말하자면 교장 선생님인 셈이다. (웃음) 자칫 아이들이 나쁜 길로 접어들어 삐뚤어질까 싶어 모든 스탭들이 신경을 쓴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건방져질까봐 항상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기도 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왕재수(asshole)가 되지 않았다. (웃음)

-이번 시리즈의 감독인 데이비드 예이츠는 이번이 첫 장편영화라고 하는 데 이전 시리즈의 감독들과 비교하여 장단점이 있다면.
=우선 장점을 들자면 배우의 능력을 최대한 잘 뽑아낸다는 점이다. 이번 시리즈는 마법세계의 정치적인 면이 많이 보이는데 그 역시 현실성있게 잘 표현했다. 단점이라면 시각효과적인 면에서 좀더 노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처음이라는 것이 오히려 많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있는 그대로 상투적인 면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새로운 면을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5편은 이전 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다. 그런 것이 흥행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그렇지 않길 바랄 뿐이다. (웃음) 사실 어둡다는 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잘 표현한 것이다. 동화를 포함한 서양 문학은 그림 형제의 이야기처럼 어두운 분위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포커스 그룹을 통해 열다섯명 정도 시사를 했을 때도 어른들은 영화의 어두운 면을 탓했지만, 아이들은 멋지다고 말했다. 어둡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개개인의 판단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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