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영화를 대표하는 ‘3인의 거장’ 영화제가 필름포럼에서 개최된다. 본 영화제에선 포르투갈의 창조적 장수 감독 마뇰 드 올리베이라(1908~)와 프랑스의 영화 신성 아르노 데스플레생(1960~), 오스트리아의 논쟁적 시네아스트 미카엘 하네케(1942~)의 총 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냉소와 자조, 비판과 관대, 뜨뜻미지근한 온정과 냉혹한 해부, 그리고 지루함과 길고 긴 러닝타임,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던 유럽영화의 ‘그것’ 아니었던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포물의 독주와 현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습에서 비껴나 이 여름 전형적인 유럽 영화적 감수성에 딱 맞아떨어지는 거장들의 영화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올드 유럽의 긴 호흡 속에 빠져들면 개도 혀를 차는 삼복더위에서 문득 서늘한 매혹의 심연에 빠졌다 나온 것과도 같을 것이다. 함께 보러온 친구가 타인이 된 듯 낯설어질 것이다. 복잡한 거리를 오래도록 혼자 걸으며 웅얼거리게 될 것이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 Manoel de Oliveira
<편지>
무성영화 시절 <파티마 밀라그로사>(1928)의 단역배우로 영화 인생을 시작해 <아니키 보보>(1942)로 첫 연출을 한 뒤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살아 있는 영화의 역사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내년에 100살이 된다. 압도적인 필모그래피를 지닌 이 창조적 노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매년 한두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생산력의 소유자다. 부조리극, 멜로드라마, 판타지 형식의 세 이야기를 매끄럽게 묶은 <불안>(1998)은 실존적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라파예트 부인의 17세기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을 현대로 옮긴 <편지>(1999)는 감정적 갈등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육체와 정신의 대립문제, 파멸을 불러들이는 선의와 정직함의 문제를 파고든다. <나는 집으로 간다>(2001)는 노년 배우를 통해 늙어감의 의미를 보여주는 한편, 영화감독을 통해 영화연출의 심리를 보여주는 노감독의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카트린 드뇌브, 존 말코비치 등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아르노 데스플레생 Arnaud Desplechin
<킹스 앤 퀸>
프랑스의 지적인 영화 신성 아르노 데스플레생은 친구이자 동료인 에릭 로샹의 카메라맨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누벨이마주 세대 이후 등장한 에콜 드 페미스 출신 감독 중 하나인 데스플레생은 현재의 프랑스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 복잡하게 얽힌 개인들의 관계 속에 미스터리, 부조리극, 비극, 희극을 뒤섞는 그의 영화를 따라가려면 이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시선이 만드는 긴장과 탄력의 리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질적 첩보물인 <파수꾼>(1992)은 의대에 다니기 위해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온 마티아스의 여행 가방에서 미라가 된 한 남자의 머리가 나오며 전개된다. 미라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과 마티아스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서로 뒤섞이나, 이 첩보물엔 잘빠진 검정 슈트의 스파이는 없다.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1996)는 철학 강사 폴이 그의 친구들, 여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감정적이고도 실존적인 각성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얼마 전 개봉했던 <킹스 앤 퀸>(2004) 역시 관계에 주목하는 영화로 스타일과 서사를 뒤섞는 데스플레생의 완숙한 연출을 볼 수 있는 작품.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베니의 비디오>
쾌락으로서의 폭력이 아니라 고통으로서의 폭력을 다루는 논쟁적 시네아스트 미카엘 하네케 영화는 응고된 현대인들의 감정과 일상을 다룬다. 냉혹함의 온도로서는 최저점에 있는 그의 영화 중 ‘빙결 3부작’으로 알려진 <일곱 번째 대륙>, <베니의 비디오>(1992),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1994) 중 두편이 이번 영화제에 소개된다. 미디어의 잔인한 공평무사함이나 우발적인 폭력에 지속적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하네케는 관객이 그저 중립적 관조자에 머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 폭력에 대한 연대책임자가 된다는 것이다. <베니의 비디오>는 늘 비디오 촬영에 빠져 있는 14살 소년 베니의 일상과 우발적 살인을 다룬다. 화면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탄하고 우리는 그 무심함에 경악하게 된다.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 역시 미디어와 응고된 감정의 문제를 관련없어 보이는 71개의 신들로 엮어냈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은 결말에 등장하는 우발적인 폭력장면에서 만난다. 냉혹한 하네케의 영화에선 누구도 차가운 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폭력과 파탄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