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같은 작품에 비하면 개성이 약해요
2007-07-18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글 : 김혜리

이동진_“에피소드들을 쌓아올려서 정점에서 터뜨려주는 느낌이 약하다고 할까요.” vs 김혜리_“<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해리와 친구들은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그려졌어요”

젠틀맨 채터 리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불사파 기자단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젠틀맨 채터 리님의 말(이하 채터 리): 오늘은 이야기할 영화가 딱 두편. 단출하네요.

불사파 기자단 님의 말(이하 불사파): 개봉 일정이 급작스레 조정되는 바람에 그만! -.- 독자들께 송구합니다. 차린 게 별로 없으니… 정 딴 집 가려면 가셔요. 흑흑. T-T

채터 리: 허허, 불사파 기자단이 아니라 막가파 기자단인 듯. 오늘 제 아이디는 수다 떠는 이씨, ‘chatter Lee’에서 온 겁니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하이틴 학원영화 같은 측면이 강하더라고요. 제가 이 시리즈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같은 작품에 비하면 개성이 약해 보였어요.

불사파: <해리 포터> 시리즈는 언제나 학원물의 색깔이 있었죠. ^^ 원작 소설이 4편에 비해 훨씬 호평 받은 점을 상기하면, 영화는 평작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권에서 고르지 못한 리듬으로 “작가도 질풍노도냐”라는 핀잔을 들었던 조앤. K. 롤링이 5권에서는 부쩍 발전했다는 칭찬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화의 평이함은, 연작 중 가장 긴 소설을 각색했다는 점에서 얼마쯤 예견된 것이기도 해요.

채터 리: 전 원작 소설 표지도 들춰본 적 없는 사람인데요. 그래서인지 이 시리즈의 내용은 익숙해질 만하면 또 한두해가 지나서, 다시 처음부터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

불사파: 사실 제가 생각하는 해리 포터 우주의 매력은 패턴화된 스토리가 아니라, 마법사 세계의 일상이에요. 예컨대 냄비 폭발, 지팡이 역발사를 다루는 마법사 병원의 진료과목이나 마법사 주부의 살림 이모저모 같은 대목이 재미있거든요. ^^ 그런데 5편처럼 원작이 무지막지하게 길면 아무리 각색에 개성을 불어넣으려고 해도 불가피하게 기승전결과 관련된 부분이 주로 살아남게 되거든요. 5편은 그런 문제가 드러난 예 같아요.

채터 리: 그래서인지 영화의 리듬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세부적으로는 아기자기한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에피소드들을 쌓아올려서 오락영화로서 정점에서 터뜨려주는 느낌이 약하다고 할까요. 그래도 감독이 1, 2편을 제외하면 매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편차가 적은 건 아마도 원작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겠죠. 조앤 K. 롤링이 워낙 까탈스럽기도 하고요.

불사파: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매편 반복되는 구조잖아요. 개학 무렵 시작해서 학기 중에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지다가 해리와 볼드모트가 마침내 대결하고, 교장선생님이 사태를 해설하는 식이죠. 특히 볼드모트는 1편부터 계속 돌아오는데, 그러다가 다음 편이 시작할 때는 또 잠수를 타요. -.- 그러다보니 “볼드모트, 전번에 돌아온 거 아니었어? 언제까지만 돌아오기만 하는 거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_-#

채터 리: 하하. 이건 뭐,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하스탈라 비스타 냠냠.

불사파: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볼드모트는 사실 일종의 맥거핀 비슷해지고 소악당이 따로 나오죠. 이번 영화에서 그 인물은 마법부에서 호그와트로 파견된 장학사 돌로레스 엄브릿지(이멜다 스턴톤)입니다.

채터 리: 상당한 비중이던데요? 저는 처음에는 캐스팅 면면만 보고 헬레나 본햄 카터가 인상적으로 등장하나 했더니만 거의 카메오 수준이더군요.

불사파: 저 역시 그녀가 엄브릿지 역인 줄 알았어요. 엄브릿지가 학생들이 현실에 관심을 끊도록 강요하는 정치 세력을 대표하면서, 해리와 친구들은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덤블도어의 군대’를 조직하는데, 이 대목에 감독은 가장 힘을 줬어요. 무슨 젊은 혁명가들 그리는 것처럼.

채터 리: 그 부분이 엄격한 제도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패컬티>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영화에선 에일리언들이 교사들의 탈을 쓴 거지만 그건 장르적 설정일 뿐이고 사실은 교사에게 폭력으로 대항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준 거죠. ^^ 이 영화에도 그런 느낌이 짙어요.

불사파: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는 학원자주화 운동에 가깝지만, 관객이 느끼는 쾌감은 비슷한 거죠.

채터 리: 다들 엄숙하게 시험을 보는데, 론의 쌍둥이 형 조지와 프레드가 빗자루를 타고 폭죽을 쏘아 올리면서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잖아요? 그 장면이 주는 어떤 원초적인 쾌감이 제게 남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인상이었어요.

불사파: 엄브릿지의 모델은 마거릿 대처와 프레디 크루거의 합성이라는데요? ^^ 처음 연설하는데 그녀의 말들이 유창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텅 비어 있는 정치인 스타일의 언어들이잖아요. <해리 포터> 영화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성인 캐릭터들이 좋은 편인가 나쁜 편인가만 구분되고 각 인물의 개성적 행태와 유머가 충분히 각인되지 않는 점이에요. 그나마 제일 성공적인 건 알란 릭맨이 연기하는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와 알버스 덤블도어 교장 정도죠.

채터 리: 글과 영상의 차이라기보다는 양의 문제일 거라는 추측이 드네요. 알란 릭맨, 멋지죠? 영화 속 릭맨의 젊은 시절 배우가 어찌나 릭맨을 닮았던지!

불사파: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저는 스네이프가 제일 흥미로운 캐릭터예요. 해리와 비위가 안 맞는 인물이고 스네이프가 포터 부자를 증오하는 것도 사실인데 그러면서도 결국 (아직까지는) ‘아군’이거든요. 말하자면 큰 문제에서는 뜻을 같이해도 성정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을 잘 표현하기도 하고, 속 모를 인물이라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제일 관심이 가요.

채터 리: 맞아요. 해리 포터를 제외하면 확실히 제일 흥미로운 듯. 그런데 이 시리즈를 보는 사람들의 절반이 아마도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쑥쑥 자라는 것을 걱정 섞인 눈빛으로 바라볼 텐데 이번에는 정말 그렇더군요. 무엇보다 그네에 앉아 있는 해리의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목이 너무 굵어서 정말 허걱했어요. 영화 보면서 목이 굵은 배우보고 놀란 것은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 이후 처음인 듯.

불사파: 하하. 너무하세요.

채터 리: 오늘 막가파인데요 뭘. ^^ 그 영화에서 데미 무어 너무 예뻤는데 슬프게 우는 목이 굵어서 감정이입이 안 됐다는. 모가지가 굵어서 슬픈 짐승이여…. -.-

불사파: 하지만 저는 어린 배우들의 성장세에 대한 걱정은 잘못된 염려라고 생각해요. 물론 프로덕션 속도 때문에 원작과 나이 차이가 2년 정도 나게 됐지만 그런 ‘실망’은 책을 보며 머릿속에 홀마크 카드 스타일의 사랑스런 어린이처럼 소년 마법사의 모습을 입력해놓았기 때문이거든요. 해리와 친구들이 7년간 성장하면서 사춘기 특유의 어색한 외모를 갖게 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배우가 자기 나이와 차이 나는 역을 하는 것이 예외적인 일도 아니고요.

채터 리: 왜, 10대 소년들에게서는 기묘한 신체적 불균형이 보이잖아요? 흡사 다큐멘터리 <후프 드림스>에서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은 느낌이 이 시리즈를 보면서도 생겨요. 먼 친척인 소년이 가끔씩 만나볼 때마다 쑥쑥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불사파: 전 관객의 환상에 맞추느라 배우를 바꾸었다면 크게 실망했을 거예요. 그들의 성장을 일관되게 지켜보는 점이 이 시리즈 특유의 힘 중 하나라고 봐요.

채터 리: 어쨌든, 마지막 편이 나오는 2010년에는 래드클리프가 스물한살이 되더군요. -.- 그런데 5편에 와서 다른 영화의 인용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묘해지긴 하더라고요. <킹콩>에서 그대로 모티브를 따온 장면이 있잖아요? <미션 임파서블>과 비슷한 장면도 있었고요.

불사파: 거인 그롭이 헤르미온느에게 양순하게 구는 장면이 있었죠? 확실히 그 묘사는 원작에 없어요.

채터 리: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하는 크리처도 그렇고요.

불사파: 크리처는 집요정인데요. 2편의 도비 기억하세요? 그 친구랑 같은 종족이에요. 도비가 골룸과 같은 해에 나왔다가 디지털 배우 경쟁에서 완전히 KO패 당하고 찌그러졌죠. -_-#

채터 리: 그런데 골룸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유사한 캐릭터가 나오면 무조건 아류로 욕먹을 확률이 꽤 있을 거 같아요.

불사파: 매번 그렇듯 5편에도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있는데요. 호그와트 교무실과 학부모회는 영국배우 인명사전이래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캐스팅이 잘되는 이유가 뭘까, 몇년 전 취재한 루시우스 말포이 역의 제이슨 아이작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요. 첫째, 영국의 집을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둘째, 자녀와 조카에게 주가가 급상승한다. 셋째, 성인배우는 2∼3주면 촬영이 끝내는데, 노동량에 비해 용돈벌이가 짭짤하다. ^_^

채터 리: 허허, 2번이 핵심인 듯. 영국 배우들 특유의 기품이 확실히 이 시리즈에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해리 포터> 시리즈, 우아하고 기품있잖아요. 대단한 자극은 없어도요. 정말 영국적인 블록버스터인 듯.

불사파: 기본적으로 영국 퍼블릭스쿨에 대한 환상과 앵글로필리아라 불리는 영국문화 애호 취향이 이 영화의 수요에 일조할 거예요. 아마 이 시리즈가 일본에서 거두는 큰 성공의 원인 중 하나겠죠. 일본인들의 영국문화 애호는 각별하니까요. 그나저나 마지막 소설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이 7월21일 발간 예정인데요. 할리우드에서는 책의 완간이 영화의 향후 흥행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주목하더군요.

채터 리: 어떤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불사파: 혹자는 책이 일으킬 대단한 붐이 5편 영화를 말아먹을 거라고 하고 혹자는 시너지를 예상하고 있어요. 더 길게 보면 완간 뒤 호기심 약화로 6, 7편의 영화가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입장과 상관없다는 입장이 대립하고요. 음, 저는 5편 영화의 영미권 흥행은 책의 붐을 타고 덕을 볼 것 같고, 이후 작품은 소설 7권이 너무 충격적으로 어린 독자들을 상처주지만 않는다면 “6, 7편도 마저 보자”는 심리로 꾸준할 것 같아요.

채터 리: 그 말이 정답일 거 같다는. 5편까지 봤는데 어떻게 6, 7편을 안 보겠어요.

불사파: 저야 뭐, “모든 것은 외로운 구박덩이 소년이 꾼 백일몽이었다”는 허무 폭탄만 아니면 뭐든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요.

채터 리: 잠깐 1분만. 마실 것 좀 가져올게요.

불사파: …심심해라. ^^ 아씨오 채터 리! 빨리 안 오면 크루씨오!

채터 리: 엥? 외국말로 욕하는 것 같아요.

불사파: 아씨오는 “이리 오너라” 주문이고 크루씨오는 고문 주문입니다. ^^

이동진_“이런 스토리의 베드신이면 남자가 격렬히 몸을 움직이는 걸 보여주게 마련인데 <레이디 채털리>에는 그게 없어요. 오히려 섹스장면의 앞과 뒤를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죠. 남성감독은 절대 찍을 수 없는 방식이었어요.”
김혜리_“베드신이 치밀히 연출됐기 때문에 만약 이 영화의 성기노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한다면 치명적인 흉터가 될 것 같아요.”

채터 리: -.- 너무하씨오! 토크 계소카씨오! T-T그런데,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가장 중요한 대사가 같은 날 개봉하는 <레이디 채털리>의 클라이맥스에도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우연의 일치지만 흥미로웠어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냐이다”라는 덤블도어의 말이 있죠. <레이디 채털리>에서는 자기 안의 여성적인 성격을 이야기하는 파킨에게 코니 채털리(마리나 핸즈)가 같은 말을 했죠. 또,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감정을 영원히 알 수 없는 당신이야말로 나약하다”는 해리의 말도 거의 같은 맥락으로 코니와 파킨의 대화에서 등장하잖아요.

불사파: 영화 초반에 코니의 남편 클리포드와 친구들이 전쟁에서 죽은 병사 이야기를 해요. 두 발목은 날아갔지만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생명력이 소진되어 죽은 이야기죠. 코니가 연인인 사냥터지기 파킨에게 “생명력도 재능이에요”라는 말도 하고요. 요컨대 자연과 생명력 vs 자연을 통제하려는 이성과 의지의 대결구도가 보여요.

채터 리: 이 영화를 보면서 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딱(!)인 영화란 생각을 했어요. 철두철미하게 여성적인 시선으로 만들었잖아요. 여성의 욕망, 시선, 삶이 선명하게 드러나죠.

불사파: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누구나 떠올릴 거예요. 얼마 전 개봉한 <두번째 사랑>과 이야기 틀은 비슷한 셈이더군요.

채터 리: 이 영화의 베드신 연출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이런 스토리의 베드신이면 남자가 격렬히 몸을 움직이는 걸 보여주게 마련인데 이 영화에는 그게 없어요. 대부분의 섹스신에서 둘은 옷을 입고 있고요. 오히려 섹스 전과 후에는 옷을 벗고 있는 모습을 오래 보여주잖아요? 또 섹스장면은 길이가 짧은데 앞과 뒤는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죠. 남성감독은 절대 찍을 수 없는 방식이었어요.

불사파: 어떻게 두 연인의 몸을 보여줄지 블로킹부터 정사의 횟수가 거듭되며 보태지는 작은 새로움까지 면밀히 연출했어요. 첫 정사장면에선 카메라가 파킨의 오두막 실내에 처음 들어가고, 세 번째 정사에서 두 사람이 처음 함께 절정을 느끼고 네 번째 섹스에서는 여자가 처음 남자의 몸을 먼저 만지고 다섯 번째는 처음 침대를 사용하며 서로의 나신을 최초로 제대로 바라보죠. ^^

채터 리: 특히 카메라에 누드가 담길 때 남자의 몸은 관찰자 시각으로 유심히 살펴지죠. 그런데 여자의 경우는 그냥 자연스럽게 슬쩍 끼어들잖아요. 마치 남자감독 영화의 베드신에서 남자의 벗은 몸이 그렇게 나오듯.

불사파: 그만큼 치밀히 연출됐기 때문에 만약 이 영화의 성기 노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한다면 치명적인 흉터가 될 것 같아요. 장대비 속을 벌거벗은 남녀가 뛰어다니는 신과 벗은 몸의 주름과 틈새에 들꽃을 꽂아주는 인상적인 장면도 훼손되겠죠.

채터 리: 여성의 시선 자체를 삭제하는 셈이 되겠죠.

불사파: 코니는 실리적 결혼을 택했지만 구김살없는 생기에 찬 여자로 묘사됐어요. 그녀가 의자를 원하는 자리에 갖다놓고 앉는 장면이 몇번 있는데, 어디든지 자기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갖고 있는 여자로 보였어요. 사냥터지기와의 사랑을 남편이 알까 주눅드는 기색이 없고 그렇다고 연인에게 아부를 하지도 않죠. 어떤 질문에 직면해도 시간 들여 생각한 다음 진실을 말하면 된다고 믿는 여자예요. 그런 자신감은 그녀가 남편 것이 아닌 자기 재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을 거예요. 이거야말로 진정 부르주아적인 로맨스구나 싶었죠. ^^

채터 리: 사실 남편은 질투하는 동시에 방조하고 있죠. 부르주아적 로맨스 맞아요, 애인에게 농장을 선뜻 사줄 수 있는 부르주아적 로맨스.

불사파: 참! 전 이 영화의 의상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디자이너로 치면 로라 애쉴리, 랄프 로렌풍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정갈하게 재단한 의상이 끝없이 나오는데, 몰입을 방해할 정도였어요. 패션에 관심있는 관객이라면 눈만 갖고 가셔도 행복할 겁니다. ^^ 그런데,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괴이한 점은 프랑스 배우들이 프랑스어로 영국인 척, 영국인인 척 연기한다는 사실이에요.

채터 리: 마리나 핸즈는 아버지가 영국인이기도 해요.

불사파: 영미권과 프랑스 관객은 이 영화를 어떻게 느낄까요? *.* 기본적으로 프랑스어로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찍음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동일한 문화도 바다를 건너면 의미가 변하듯. 예컨대 계급문제나 성해방의 주제가 프랑스 배우들의 입을 통해 나오니 상대적으로 덜 긴급하게 느껴졌고요. 단순한 대사도 사색적 뉘앙스를 띠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레이디 채털리>를 보면서 “지금 보고 있지만 마치 기억 속의 영화를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채터 리: 감독이 들으면 좋아하시겠네요. ^^ 이 영화를 저는 집이라는 모티브로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의 거처로서의 집이면서, 새로운 삶의 그릇이 집인 셈인데, 흥미로운 것은 여자들은 사랑을 하면 정주하고 싶어한다는 거죠, 거처를 마련해서. 그래서 복부인이라는 말도 있나…. -.-

불사파: 그러고보니 “당신이 나의 집이고 다른 집은 의미가 없다”고 파킨이 코니에게 말했죠. 그럼 남자는 이동식 주택을 선호한다는 건가요? ^^

채터 리: 한 가지 흥미로웠던 우연의 일치는 주연배우 이름이 마리나 핸즈였다는 거예요. 마리나는 산책로라는 뜻이고 핸즈는 손을 뜻하니 둘 다 이 영화의 핵심과 관련이 있잖아요. 산책로로 상징되는 자연과 손으로 상징되는 육체(의 감각)라는 점에서요. 그 둘이 영화에서 의미가 중첩되면서 서로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니까요.

불사파: 어머, 오늘 너무 많이 발견하시는 것 아니에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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