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 -배우 강리나
2007-08-24
앵글에 몸을 맞추라굽쇼

요즘 뉴스에서 가장 엽기적이고 쇼킹한 사건은 무장세력 탈레반의 인질납치 사태다. 미디어로 접하는 사건이라 사실 같지가 않다. 살인이라는 단어도 간혹 나온다. 전쟁이든 살인이든 공포에 관한 모든 충격적인 요소들은 영화나 TV드라마, 뉴스, 다큐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것이 전부다. 생명을 다루는 일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힘없는 나라의 생명은 더이상 희생되어선 안된다. 도움 하나 되는 것 없는 지금의 나 자신이 답답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개봉 당시 큐브릭 감독에게 ‘영화를 개봉하면 가족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있었을 만큼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을 담은 영화다. 그 협박이 미치광이 무장세력의 협박과 같았다면 심한 과장일까. 과장일지라도 탈레반의 무자비한 만행만큼이나 관객을, 우리를, 분노케 만든 문제의 영화다. 사이코적인 방종이 압도하여 관대한 이성으로도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 만약 당신이 팝콘을 먹으면서 이 영화를 보려 한다면 소화불량을 경고하고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심한 소화불량을 겪을지라도 관객의 시선을 빨아당기는 묘한 영화다. 장면마다 놓칠 수 없는 정교함을 보고 있노라면 감독이 군림하는 영상의 파라다이스로 빠져드는 듯했다. 엽기적이고 위험한 감정의 요동과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압축의 형식미가 더해져 늘어짐없이 긴장감을 맛볼 수 있는 쇼킹, 버라이어티한 비주얼적인 구성. 하지만 자칫 보고나면 트라우마 증세(생명을 위협하는 정신적 상처, 우울 증세)를 겪을 수도 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국 문학의 거장 앤서니 버젯의 원작(1962년 발표)이 바탕이다. 현대인의 폭력성을 다룬 큐브릭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강한 폭력 묘사와 약물복용, 강간장면 등을 이유로 영국에서는 수십년간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X등급을 받았지만 뛰어난 작품성으로 1971년 뉴욕 비평가협회에서 주는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목인 ‘시계태엽 오렌지’는 ‘시계태엽’과 자연과실 ‘오렌지’를 합친 말로, ‘조직화된 사회에서 마치 기계의 일부분처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나타나는 폭력과 그것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국가의 인권침해, 인간의 본성마저도 바꾸려는 현대의학의 오만함과 정치행정의 부도덕함, 그것을 놓칠세라 이용하는 현대 언론의 선정주의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무대 배경으로 Home이라는 현대식 구조의 건물과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는 인테리어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집 앞에 설정한 중세기 때의 스케치그림 같은 커다란 황토색 벽화도 볼 만했고 고양이를 기르는 상류층 독신녀가 살고 있는 집은 극도로 야한 그림과 조각품들로 채워져 있는 데, 이것들 모두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감독이 보여주고픈 사물들이 신마다 제각기 제 몫을 충실히 다 하고 있다면 설명이 될까.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품들에 대한 선택마저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은 역시 장면마다 먼지 한톨이라도 책임을 지는 미다스의 완벽주의적 감독임을 이 영화를 통해 더욱 실감했다. 비록 옛날 영화지만 지금 보아도 비주얼이나 내용 면에서 너무나 쇼킹하고 스타일리시한 <시계태엽 오렌지>는 광기와 절제의 절묘한 화합이 특별한 매력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올릴 때면, 내가 출연했던 <서울무지개>가 떠오른다. 김호선 감독의 문제작 중 하나인 <서울무지개> 역시 사회 권력에 인간의 존엄성이 파멸되는 주인공의 화려함과 광기, 죽음을 그리고 있다. 당시에는 검열 때문에 많은 진통을 겪었지만 대종상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았다. 김호선 감독님 특유의 디오니소스적 미적 취향과 에로티시즘(사랑, 생명)과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을 표현하는 정신적 광기의 섬세한 연출력에 대해 우리나라에선 유일무일한 천재감독이라 생각한다. 나는 미쳐버린 권력의 희생양이 된 여주인공 역을 열심히 연기했지만, 감독님의 완벽주의로 인해 어떤 장면은 20번씩이나 되풀이해서 찍은 적도 있다. 그 당시에 김 감독님은 평소 스케치를 좋아하는 나에게 영화미술을 상의해왔고 결국 감독님의 특명으로 나는 <서울무지개>의 미술까지 돕게 되어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광기어린 여자의 역할에 미쳐 연기를 연습하기 이전에 김주승씨가 연기한 사진작가의 스튜디오 인테리어를 도맡아 배경에 쓸 소품들을 꼼꼼히 설치하느라 무대미술쪽에 미쳐 있었다. 무대디자인, 즉석스케치, 배우들의 패션스타일들을 배경과 함께 꼼꼼히 기록 정리하며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일하던 중 서정민 촬영감독님의 꾸중이 아직도 귓가에서 생생하다. “강리나, 네가 미술감독이야? 연기자야? 앵글에 너 발목이나 맞춰 빨랑!”

강리나/ 미술가·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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