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영화 <대부>에 출연했던 소피아 코폴라는 <대부3>에서 콜레오네가의 마지막 아이로 다시 등장했다. 한동안 나는 코폴라의 표정 연기를 멍청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때는 몰랐다. 코폴라는 총에 맞아 죽는 소녀를 연기하면서 ‘나는 열아홉에서 멈출 거야. 나는 결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녀는 십대 소녀의 영역을 울타리 삼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바깥세상을 경계하는 감독으로 자랐다. <처녀 자살 소동>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인공은 각각 10대, 20대, 30대 여성이지만, 세 영화는 모두 성숙하기를 거부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미국 중서부의 한적한 마을이 되었건, 21세기 일본 도쿄의 북적대는 도심이 되었건,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의 호화찬란한 궁정이 되었건, 코폴라의 영화를 지배하는 건 소녀의 아우라이며, 감상주의의 진한 분홍빛과 쿠키의 달콤한 향은 가실 줄 모른다. 소녀의 눈과 패션과 일렉트로닉 음악은 소피아 코폴라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 감성과 분위기에 같이 취하지 못하겠다면 정치와 문화와 역사가 탈색된 그곳을 떠나야 한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맹을 위해 14살의 나이에 프랑스 황태자와 정략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를 해석하는 데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대신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활에 집착한다. 보석과 구두와 옷이 그녀의 몸을 덮고, 케이크와 샴페인이 그녀의 목으로 넘어가고, 가장무도회와 도박이 그녀의 시간을 메우고, 왕의 아이에 대한 소망이 그녀의 머리를 채운다. 평생 몇권의 소설책 외엔 책을 읽지 않았다는 철부지 여자가 사치와 소비와 향락의 극점인 18세기 말 프랑스 궁정에서 배운 것은 무절제함과 무책임이었다. 18세기 말 베르사유 생활 연구보고서 혹은 왕실풍속도로도 기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설명하기 위해 화려함과 권태로 가득 찬 삶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화다. 시각적 성찬이 공허함에 머물지 않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기 운명을 자각하고 처음으로 자기 삶에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할 즈음 영화는 끝나버린다. 시대가 달랐다면 평범한 왕비에 머물렀을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건 가혹하고 준엄한 역사였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가 개입되는 지점을 절대 넘어서지 않는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 혁명파가 그녀에게 가한 흑색선전도, 왕정복고 이후 죽은 왕비에게 부여된 성녀의 찬양도 여기엔 없다. 소피아 코폴라는 소녀들의 리그에 큰언니 한명을 초대했을 따름이다.
영화의 외양이 두드러진 편이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DVD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사람이 많았을 게다. 결과를 알려드리자면 만족스럽다. 영화를 채색한 파스텔 컬러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쿨한 음악들이 충실히 재현돼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메이킹 필름은 고작 26분 안에 알찬 내용을 잘도 담아놓았다. 감독은 물론 주연배우, 스탭부터 영화의 바탕이 된 책 <마리 앙투아네트>의 저자 안토니아 프레이저까지 참여해 영화의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인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프레이저는 영화가 자신의 글이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훨씬 강렬하게 보여줬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제 딸의 후견인 역할에 더 만족하는 듯하다.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는 “난 새로운 낭만을 불어넣고 싶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퇴폐적인 시대의 십대들 이야기다. 모든 색상과 음악이 그것을 반영하길 원했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점에서 더 감상적으로 이야기를 전하기를 의도했다”라고 말한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그외 부록으로 두개의 삭제장면(4분)과 루이 16세 역을 맡은 제이슨 슈월츠먼의 궁정 내부 안내(4분), 여러 개의 예고편 등이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