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엑소시스트> -안병기 감독
2007-09-14
악령의 꽃이 피어날 때

<엑소시스트>(1973)는 상영 당시 미국사회의 붕괴된 가족의 단면을 보여줬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높아지면서 아버지의 역할이 줄어들어 이혼율이 급증하고 가족사회의 기본적 구조는 붕괴되어갔다. 윌리엄 프리드킨은 가족이 해체되면서 아버지의 부재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정신적 상처를 공포영화로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 모녀만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대체하는 남자로 신부가 등장하고, 신부 또한 연륜이 있는 신부가 희생되고 젊은 신부가 살아남는다. 이건 필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영화를 볼 때에는 여러 가지 후문을 알고 있어서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봤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 외 스탭이 의문의 사고로 (영화 내의 죽음과 비슷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도 했다. 또 영화를 보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느꼈다던 구토 증세에 대한 이야기. 스파이더 워킹으로 잘 알려진 장면은 원래 예정에 없던 것으로,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이 꾸었던 이상한 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됐다는 것이 나에겐 더 큰 충격이었다.

우울한 음악과 함께 뜬금없는 발굴 현장에서부터 시작해 레건 테레사 맥닐이 악마에 씌어 날뛰기 전까지 지루하리만큼 영화는 느리게 진행된다. 극히 한정적인 단서와 이미지들을 던져놓으며 <엑소시스트>는 느긋하게 영화의 후반부를 향해 걸어간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구성은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끌어올리는 그런 공포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악마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맞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고 불완전하며 떳떳하지 못하다. 등장인물 중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악령의 존재는 내게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신보다도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또한 수준이 높다. <엑소시스트>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몫을 훌륭하게 해낸다. 특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악마 들린 연기를 보여준 레건 테레사 맥닐 역의 린다 블레어는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레건이 소리치는 장면을 생각하면 섬뜩한 목소리와 광기어린 얼굴이 생생하다. <폰>의 영주 역(은서우)을 만드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점이 있다. 마지막에 카라스 신부는 자신의 몸으로 악령을 불러넣은 채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데, 그걸로 악령을 물리친 거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영화는 끝났지만 카라스 신부의 피묻은 손이 꿈틀거리는 장면은 궁금증을 더 불러일으켰다. 신비한 존재를 설명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그 신비한 존재를 없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무조건적으로 과학적인 방식으로만 생각해버린다는 건 억지가 아닐까??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이었기에 할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엑소시스트>를 접한 뒤, 할아버지의 죽음은 새로운 생각의 전화점으로 찾아왔다. 그전까지 나에게 죽음은 끝,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는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죽음 뒤의 새로운 것. ‘사후세계’라는 의미가 점점 다가왔다. 또 영혼에게 있어 육신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시절 생겨난 그런 의문들과 상상이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첫 스타트가 아닌가 싶다.

다시 <엑소시스트> 보고 난 뒤 또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과연 사후의 세계는 존재할까? 악령이란 존재 또한 궁금하다. 지금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 어딘가에도 악령이 있지는 아니한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상이 세계의 기본이고 사후세계의 영혼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혹시 사후세계가 원래부터 진실된 세계이고 그 삶의 죽음이나 원죄를 속죄하기 위해 지금의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안병기/ <가위> <폰> <아파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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