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가족영화다. 전체 관람가 영화라는 뜻만은 아니다. 자, 크레딧을 한번 찬찬히 보자. 아버지 하명중은 감독, 어머니 박경애는 제작, 장남 하상원은 연기, 차남 하준원은 프로듀서. 그러니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가족’영화다. 가족관객 대상의 영화이자 가족이 모여 만든 영화다. 처음부터 아들들은 두팔 걷고 아버지의 재기를 도왔을까. 하준원은 “처음에는 그냥 멀리서 센터링만 해드리려고 했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가 <괴물> 촬영이 끝나자마자 본인의 감독 데뷔 시나리오를 매만지는 대신 부리나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로 배를 옮겨 탄 이유는 뭘까. “그냥 아버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아무 말 않고 오디션장에 나타났고, 1등을 먹었지만 “아버지가 제 아들 출연시켰다고 세상 사람들이 흉볼지 모른다”는 어머니의 만류에 순순히 뒷걸음질쳤던 하상원은 어떻게 젊은 시절 최호 역을 다시 거머쥐게 됐을까.
하명중 감독의 말처럼 “캐릭터도 영화도 모두 제 운명, 제 주인이 있나보다”. 대신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가 촬영을 앞두고 펑크를 내는 바람에 하상원은 아버지 하명중의 급작스런 부름을 받았다. “회사에 당장 휴직계 내라고 하시더라. 배우가 없다면서. 본인도 제작비가 없어 직접 출연하기로 했다고 하시면서.” 하준원 또한 마찬가지다. “요즘 35mm 단편도 1만, 2만자 쓰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장편영화 만들면서 필름 5만자 썼다고 좌절하시는 분이다. 그러니 젊은 스탭들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촬영 초기 스탭들이 자주 그만두고 나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하준원 또한 한가로이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돌쩌귀 역할을 자임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간 게 지난해 말이다. 충무로 전체가 거의 올스톱 분위기였던 터라 실력 좋은 스탭들을 구하기가 쉬웠다. 이걸 운이라고 해야 하나.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하준원) 따지고 보면, 1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아버지만큼이나 두 아들 또한 몸이 달았던 것이다.
삼부자가 뭉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현장은 좀 남달랐다. “아버지는 촬영장에서 원 테이크가 전부다. 미리 결정 못하고 현장에서 감독들이 고민하고 있는 거 이해 못한다. 대신 리허설은 엄청나다. 촬영 들어가서는 NG 한번 내면 죄인 분위기다. 한컷 끝나면 배우부터 막내까지 모니터로 모두들 달려든다. 자신이 혹시 실수한 것 아닌가 싶어서.” 필름이 생명이라고 여기는 감독 덕분에 편하게 프로듀서 생활을 했다는 하준원은 “이처럼 집중력 높은 현장은 처음 봤다”고 전한다. 하상원도 “대개 후반작업 할 때 감독 옆에 연출부, 제작부가 우르르 있는데 우리 경우는 감독이 아들 둘만 데리고 편집하고 믹싱하니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엊그제 지방에서 군부대 시사회를 했는데 상영관의 사운드 시스템이 고장나서 애를 먹었다. 상영 내내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돌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거다. 나야 그러냐고 물러서는데 아버지가 직접 하겠다고 하시더라. 결국 크레딧 오를 때까지 누르고 계셨다”고 덧붙인다.
두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하명중 감독은 “영화에 미친 남자”다. 집에서도 영화 이야기만 한다. TV는 뉴스와 영화만 본다. 어머니와 두 아들이 연애 이야기로 화제를 바꿀라치면 몇 차례 영화 이야기로 말꼬리를 되돌리려고 애를 쓰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DVD를 본다. 아버지는 동행 중에 “이게 진짜 앵글이야”라며 딴 길로 새는 일도 잦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 탓일까, 아버지의 습성에 전염된 것일까. 하상원이 USC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하준원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뒤 두 사람 모두 감독을 꿈꾸게 된 건 그들 말대로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영향” 덕이다. 1970, 80년대 대표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했던 아버지 때문에 하상원은 “대학 가서야 다른 친구들 집에 영사기가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하준원 또한 “원래 법학처럼 고리타분한 걸 전공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영화에 끌리더라”라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말이지. 이처럼 아버지와 돈독한 관계를 맺는 아들들을 본 적이 있나. 하씨 집안 부자유친은 유별나고 특별하다. “어린 시절 반항한 적도 있고, 피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항상 영화만 보고 달리시니까 어느 순간 제 풀에 꺾이더라.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졸업영화제 오셔서도 영화만 보고 휙 가셨다. (웃음) 항상 그 자리에 계시니 자식들이 나중에 다가가기 쉬운 측면이 있다.”(하준원) IHQ 영화사업본부 기획팀장으로 일하면서 <어금니를 꽉 물어>(가제)를 준비 중인 하상원, <광염소나타>(가제)라는 시나리오를 고쳐 쓰고 있는 하준원, 두 사람 모두 데뷔에 앞서 아버지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아버지는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극장을 운영하시며 온갖 트렌드를 섭렵하고 계신 어머니는 영화란 모름지기 관객을 먼저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하상원) 부모의 엄격한 모니터를 통과한 두 아들의 영화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