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서지혜] 꽃보다 근성
2007-09-20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두사부일체3:상사부일체>의 서지혜

서지혜는 예쁨보다 젊음이 먼저 보이는 배우다. 또래의 배우들이 CF에서 진한 쌍꺼풀을 깜박이며 앙증맞게 웃거나,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이국의 해변을 자전거로 내달릴 때도 그녀는 달동네 할머니의 빨래를 밟으며 춤을 추었다. 서지혜를 만났던 지난 9월4일은, 마침 그녀가 출연한 2부작 드라마 <향단전>이 방영한 직후였다. 여기서도 그녀는 새침한 춘향이 아닌 수더분한 향단을 연기한다. 눈이 먼 아버지를 봉양하며 춘향의 몸종으로서 맡은 임무에 충실한 향단에게서도 꾸밈없는 젊음이 먼저 보였다. 누구나 그녀를 연예인치고는 평범한 외모라고 평가하지만, 대신 그녀는 털털함과 억척스러움을 자신의 매력으로 가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20대 초반의 여배우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물어봤다. 예쁜 척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하는 건지. “당연히 예뻐 보이고 싶죠. 그런데 그런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다른 화보나 CF에서 보여줄 수 있잖아요. 연기하면서 예쁜 척하고 싶지는 않아요. 연기를 잘해서 예뻐 보인다면야 바랄 게 없겠지만…. (웃음)”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두사부일체3: 상사부일체>가 서지혜를 계두식의 연인으로 붙여놓은 데에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연기한 수정은 현실의 억울함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면서도 남자들의 보호를 거부한 채 정의를 품고 불의에 뛰어든다. 바보온달 계두식에게 필요한 평강공주는 그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진실한 마음으로 꾸짖을 수 있는 여자이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 촬영장에서도 그녀는 30, 40대의 남자선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았다. 자신을 영화의 꽃으로 대하기보다는 “툭툭 건드리며 장난칠 수 있는 막내”로 대해준 게 오히려 더 큰 애정처럼 느껴졌단다. <상사부일체>뿐만 아니라 드라마 <신돈>의 정보석, 그리고 이제 곧 촬영에 들어갈 드라마 <사랑해>의 상대역 안재욱까지 10년 이상의 나이차를 무색하게 만드는 강단과 털털함은 또래 배우에 비해 그녀에게 더욱 많은 강점일 것이다.

물론 서지혜 역시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눈에 뜨인 소녀”였다. 동대문 쇼핑몰에서 친구들과 함께 “저 옷이 좋아? 이 옷이 예뻐?” 하며 까르르 웃던 그녀를 지금의 매니저가 한눈에 알아봤단다. 건물 상가를 오르내리며 두 사람의 추격전 아닌 추격전이 벌어졌고, 결국 명함을 주며 다가온 매니저를 서지혜는 “길을 물어보려는 언니”로 파악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죠. 워낙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겁도 났고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도 호기심이 많으셨는지, 한번 해보고 아니면 관두라는 식으로 가보자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낯선 무인도 생활이 시작된 거죠. (웃음)” 연예계는 언제나 저 먼 곳의 세계인 줄 알았지만, 막상 발을 딛고 보니 의욕이 넘쳐났다. 혹시 선천적인 근성은 아니었을까. 이후 그녀가 만난 대부분의 캐릭터는 풋풋한 젊음 외에도 질긴 근성으로 다져진 인물들이었다. 영화 데뷔작인 <여고괴담4: 목소리>에서 그녀가 연기한 선민은 분위기로 압도하는 공포영화의 히로인이 아니라 공포의 근원을 찾아 달음박질치는 여고생이었고, <신돈>의 노국공주는 비록 아이를 낳다가 죽었지만 모국을 배신하기까지 한 끝에 남편인 공민왕을 왕좌에 올려놓은 여자였다.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의 마상미는 아예 그녀의 억척스러움을 전면에 드러낸 캐릭터다. “내 손톱이 까맣다고 뭐라 그러지마. 하루 종일 우엉을 까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 반찬가게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지만 그녀의 꾸밈없는 모습은 톱스타인 렉스(환희)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댄스가수 혁주(지현우)도 흔들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신돈>은 지금도 모든 장면이 다 기억날 정도로 험난한 모험이었어요. 뭐 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었죠. 하지만 마상미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100% 서지혜라고 했던 캐릭터였어요. 저 자신도 이렇게 쾌활한 여자가 나한테 맞나 싶었죠.” 다음 작품인 <사랑해>에서도 서지혜는 결혼이 가진 낭만이 아닌 현실과 일상을 묘사하는 생활형 연기를 보여줄 참이다. 그 흔한 사랑 이야기들 가운데 골라도 “가족간의 사랑과 책임감에 관한 이야기”인 걸 보면 그녀 자신도 춘향이보다는 향단이로서의 삶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솔직히 저도 팜므파탈 같은 여성을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언젠가는 저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때가 올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팜므파탈은 안 어울릴 것 같죠? (웃음)”

스타일리스트 남주희, 최진아·의상협찬 질스튜어트, 지고트, 더블유닷, 아가타, 세라, 더슈, 모니카엠·헤어 송화(에비뉴준오)·메이크업 은희(에비뉴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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