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노래를 부르든 친구를 만나든 기본적으로 즐거움이 화제가 되는 쪽으로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고, 생각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나보다. 작가도 재미있는 작가가 좋고, 영화도 재미있어서 보는 동안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영화가 좋고, 친구도 즐거운 기운을 북돋는 명랑한 사람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한면을 즐겁게 만들어준 <인생은 아름다워>는 내 인생의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만든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은 몸속에 코미디언의 기질이 120% 흐르는 사람인가보다. 그토록 처절하게 슬픈 순간을 이토록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슬픔 속에 녹아나는 아픈 웃음을 웃었다.
살다보니 정말 비극적인 순간에 희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많이 겪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했는데, 급하게 소식을 듣고 찾아왔는지 차림도 그렇지만 절하는 모양새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문상 왔을 때 절하는 방법을 몰라 새색시처럼 두손을 얌전히 모으고 양반다리로 큰절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도널드덕 캐릭터가 앞뒤로 살아 움직이는, 부리와 꼬리가 도드라져 튀어나온 신생아가 신을 법한 귀여운 양말을 신고 나타나 진중한 자세로 절을 했다. 슬픈 가운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이 됐지만, 돌아가신 영정사진 속 아버지도 이 광경에 즐거워하시겠지 싶어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 광화문 앞에서 스크린쿼터에 반대하는 행사 중 하나로 영화감독님 두분이 삭발하던 날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방송사, 신문사 할 것 없이 기자들이 몰려왔고,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 둘러섰다. 카메라가 쉴틈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진지한 목소리로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노래를 부르며 비장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이어서 호명된 두분의 영화감독님이 대형 태극기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삭발식을 시작하려는 순간, 한 기자가 소리를 질렀다. “죄송한데, 한 화면에 잡을 수 있게 두분을 한꺼번에 삭발해주십시오!” 그러자 머리를 깎기 위해 미용실에서 나온 원장님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바리깡이 하납니다~”. 엄숙한 순간에 ‘바리깡’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혀를 물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삭발식 도중에 또 발생했다. 첫 번째 감독님의 삭발이 끝나고, 두 번째 감독님의 차례가 됐을 때였다. 참고로 두 번째 감독님은 바로 내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장하게. 한편 ‘바리깡 원장님’은 문제의 바리깡에 뭔가 걸렸는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두 번째 감독님의 머리에 바리깡을 대는 순간, 매끄럽게 돌아가는 소리 대신에 거칠게 쥐어뜯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어쩌랴, 방송사 카메라는 바쁘게 돌아가고 기자들의 카메라에서는 플래시가 계속해서 터지는 중이었다. 감독님의 표정은 비장했지만 머리는 점점 영구머리로 변해갔다. 첫 번째 감독님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대충 잘라낸 다음에 바리깡을 사용했으면 날 사이에 머리카락이 엉켜 기계가 고장나지는 않았을 것을…. 바리깡을 머리에 댈 때마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참아내고 있는 감독님, 바로 앞에 커다란 태극기를 목에 두른 채 앉아 있는 남자는 머리카락을 쥐어 뜯기고 있는데, 배경이 된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나는 정말 참기 어려워 눈물이 났다, 웃겨서. 그래서 웃음을 참기 위해 다시 한번 혀를 물고 노래했다. “져-드-레-프-르-른-설-리-플-보-라~!”
그래,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슬픈 것도 인생이고, 기쁜 것도 인생이다. 받아들이며 사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은 다르게 다가온다. 한번 뿐인 인생, 아름답게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