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은 좋은 대사 감각을 보유한 연출자에요.
이동진 : <투야의 결혼>은 이국적인 공간의 비극을 한국의 편안한 극장에서 즐긴다는 사실이 미안해져요.
해운대 엔딩님(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매드 베케이션님(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매드 베케이션님의 말(이하 매드): 흠, 뭐 객지에서 메신저 접속하는 거, 별거 아니네요.
해운대 엔딩님의 말(이하 엔딩): 헉, 하다하다 실패해서 결국 <씨네21> 부산 데일리 사무실에서 접속하고 계시면서 무슨 말씀을? ^0^ 전 숙소에서, 선배는 <씨네21> 사무실에서 대화에 임하는 참신한(?) 상황이네요.
매드: 장소가 장소인지라, 센 척해봤습니다. - -;
엔딩: 저는 방금 세상에서 제일 사치스러운 극장에서 영화보고 왔어요.
매드: 수영만 야외상영관? ^^
엔딩: 넵! 호그와트 마법학교처럼 별 총총한 하늘이 극장 천장이고 벽 대신 바다가 둘러쳐져 있고요. 영화는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이었는데, 극장과 어울리더군요. 숲속의 피아노와 해변의 영화라….
매드: 너무나 낭만적이라는.
엔딩: 영화 시작 전에 작은 콘서트를 먼저 해서, 차가운 밤공기를 꽤 오래 견뎠죠. 영화 보고나니 콘서트도 피아노 연주로 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다는 욕심도 나더군요. 뭐, 25현 가야금으로 듣는 비틀스 모음곡도 좋았지만요. ^^; 새삼 느꼈어요. 영화제는 여러 가지 산업적 예술적 기능을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영화 보는 데 최고의 장소예요. 같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 열정과 집중도가 높다보니 그들의 기(氣)가 에너지 장을 만드는 기분.*.*
매드: 그렇게 서로 포스를 주고받다 보면 아동용 특촬물 영화의 단골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오늘 이야기할 부산 상영작 중에도 <대일본인>과 <은하해방전선>에 비슷한 장면이 나오잖아요?
엔딩: 게다가 오전 상영에 가보면 모두 간밤의 숙취와 싸우고 있어서 난데없는 공감대마저 형성된다는. ^^
매드: 저는 이번 영화제가 1회를 빼곤 가장 영화를 많이 본 부산영화제였어요. 그때는 막 영화기자가 되었던 터라 아는 사람도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들입다 영화만 팠습죠.^^ 부산영화제에 오면 다들 좀비처럼 세를 불려가면서 술을 마시게 되잖아요? ^^ 그런데 이번만큼은 굳게 마음을 먹었어요.^.~
엔딩: 개막식은 보도를 통해서만 봤는데요. 확실히 예년에 비해 국제 영화인보다 국내 연예계 스타들의 캣워크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더군요. 기획사들이 딱히 영화인이라 하기 힘든 소속 신인의 얼굴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있는 듯도 했고요.
매드: 오늘 그러잖아도 아시아 3개국 신인배우 8명을 영화인에게 소개하는 ‘캐스팅 보드 쇼케이스’라는 행사 사회를 봤는데, 역시 그런 인상이 있었습니다.
엔딩: 워낙 스타란 영화제를 구르게 하는 바퀴 같은 존재죠. 영화제의 본질은 아니더라도 그 이상으로 불가결한 영화제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부산영화제는 유수 국제영화제 틈에서 영화와 일반 관객의 힘으로 우뚝 성장한 영화제잖아요. 어떤 스타를 초청하고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청하느냐에 있어서도 거물 영화제들의 전철만 밟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매드: 동감합니다. 누구나 지적하는 문제지만 부산영화제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외형은 점점 거대해지고 각종 행사들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는데 그런 외피를 충분히 지탱할 인프라나 내실이 약한 게 사실이죠. 그래서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빚어지는 것 같아요. 전 올해 유독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거든요. 주로 기자와 관계자였는데, 참 옆에서 보기 좋진 않더군요. 취재진도 지나치게 많기에 성마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고, 영화제 실무 관계자들도 업무의 연속성없이 매년 바뀌는 바람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벌써 12회 행사이니 이젠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맬 때가 아닌가 싶어요.
엔딩: 스폰서 기업의 과다한 노출도 많이 지적됐죠. 스폰서도 없어선 안 될 요소죠. 다만 리더필름(상영작 앞에 트는 당해 영화제를 상징하는 필름)까지 메인 스폰서 로고를 반영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이더군요. 기업으로서도 역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매드: 전 하필 그 의류 브랜드 옷을 입고 첫날 내려와서 행사 진행을 맡았더니, 다들 그냥 협찬해준 옷인 줄 알더라고요.-..-
엔딩: 영화 앞에 삽입된 불법복제 방지 캠페인은, 영문으로는 “대한민국에선 불법 복제가 용인되지 않습니다”라고 썼는데 한글로는 “대한민국에는 불법 다운로드가 없습니다”라고 써서 간극이 있더군요. 묘사인지 주장인지.
매드: 사실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죠. 대한민국이라는 말만 나오면 갑자기 사람들 목에 힘이 들어가는 듯. ^^
엔딩: 제가 놓친 개막작 <집결호>로 이야기를 시작하죠. 자고로 개막작이란 축제 무드에 불을 댕기고 군중을 기쁘게 하는 영화로 선택되게 마련인데요. 제목만큼은 절묘하네요. 사람들 모이라고 부는 나팔을 뜻하니까요.
매드: 사실 펑샤오강 감독의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는데 영화는 그럭저럭 재미있었어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병사들이 그냥 실종자로 처리되자 혼자 살아남은 중대장이 사력을 다해 복권시켜준다는 내용이죠. ^^ 다들 모여서 폭죽 쏘아올린 뒤에 바닷가 야외상영관에서 수천명이 모여 관람하기에는 적당한 작품이었어요. 이야기적으로는 대단히 낡은, 이를테면 ‘반전영화’가 아니라 중국 정부에서 좋아할 만한 ‘애국영화’에 가깝지만 ‘집결호’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집결호는 일종의 ‘퇴각 신호’인데, 47명의 병사들이 가망없이 처절한 전투를 계속 벌이면서, 멀리 떨어진 연대본부에서 불어주는 퇴각 나팔 소리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거죠. 듣고 싶은데 들려오지 않는 그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병사들이 하나둘씩 느는데, 중대장은 끝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거예요.
엔딩: 환청인가요?
매드: 환청일 수도 있지만, 거짓말일 수도 있죠. 분명히 들렸다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 못하는 한 인간의 딜레마가 흥미로웠어요.
엔딩: 그가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매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면 저로선 훨씬 더 재미있었을 거예요.
엔딩: 그렇군요. 그간 부산영화제는 한국 독립영화 장편 가운데 보석을 발견하는 장으로서 한몫을 해 왔는데요.
매드: 해마다 한편씩 화제의 중심이 되는 영화들이 있었죠. 아무래도 올해는 <은하해방전선>이 가장 관심을 끈 한국 독립영화 장편인 것 같아요. 일단 제목이 워낙 독특하고^^ 내용에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든 듯한 여러 설정이 있어서 여기서 이 영화를 보는 특별한 재미가 있었어요.
엔딩: 데뷔를 준비하는 젊은 감독의 고뇌가 이야기의 한축이고, 연애하는 법을 깨우쳐가는 젊은이의 성장이 다른 한축이더군요. 데뷔 스트레스와 실연 스트레스가 겹쳐 감독에게 실어증세가 오죠. 뭐, 제목이 암시하는 SF판타지 장르와는, 대략 붕어와 붕어빵 정도의 관계가 있는 영화입니다. ^_^
매드: 이 영화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 속 상황 그대로 “소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랑이 뭔가요?” 하는 질문이 나왔답니다. ^^
엔딩: 그런데 <은하해방전선>은 소통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소통에 끼어드는 노이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영화 아닌가요? 외국어, 실어증, 복화, 동시녹음, 청각장애 같은 모티브들이 대거 등장하죠. 윤성호 감독은 음악을 포함한 사운드로 부리는 기교에 관심이 많은 걸까요?
매드: 소리와 관련해 몇몇 아이디어는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복화술로 일본 영화인들과 미팅을 한다든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대신 악기 소리가 난다든가.
엔딩: 윤성호 감독은 한신 전체를 오직 대사가 빚어내는 ‘점입가경’으로 감당해낼 만큼의 대사 감각을 보유한 연출자라고 느꼈습니다. 보통 한국영화에서는 서너번 주고받으면 말로 하는 코미디의 한 단락이 끝나는데, 이 영화의 말 코미디는 호흡이 길더군요. 그래서 어쩌면 장진 감독, 손재곤 감독(<달콤, 살벌한 연인>) 스타일의 코미디를 만들 수도 있겠다 잠깐 생각했죠.
매드: 반면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 장면들을 조직하고 구조를 만들어내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장면과 장면 사이의 완성도 편차가 좀 크다고 할까요. 전체적으로 재기발랄한 습작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엔딩: 우디 앨런과 그의 영화를 즉각적으로 상기시키는 단점도 있죠. 특히 <해리 파괴하기>와 <할리우드 엔딩>을 누구나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다룬 몇몇 장면은 예리한 멜로드라마적 감수성도 보여줬어요.
매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보통 관객이 멀티플렉스에서 이 영화를 보면 어떻게 느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엔딩: 물론 많은 농담들이 ‘소통’하지 못한 채 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불시착할 수 있겠죠. -_-# <상어>를 연출했던 김동현 감독의 <처음 만난 사람들>도 봤는데요. 전작처럼 여러 인물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막 적응교육을 마치고 남한 생활을 시작한 탈북자 청년과 탈북 10년째에 접어든 택시 기사, 한국 농촌에 시집 온 애인을 무작정 되찾으려 왔다가 월급 떼이고 말도 안 통해 고생하는 베트남 청년, 그리고 은퇴를 앞둔 형사 네명이 연쇄적으로 만나죠.
매드: 인물 설정이 재미있게 들리네요.
엔딩: 한국사회에서 ‘2등 시민’ 혹은 그 이하의 대접을 받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거나 추적하는 사람의 이야기죠. 그런데 베트남 청년이 할 줄 아는 유일한 한국어가 뭔 줄 아세요?
매드: 빨리빨리? ^^
엔딩: “때리지 마세요. 나도 사람입니다”예요. T-T
매드: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 노동자들이 그 말을 한국어로 외우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어요.
엔딩: 인권영화의 풍모가 강한 이 영화는, <상어>에 비해 영화적으로 한 걸음 물러선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인물이 만나는 계기가 우연에 많이 기대고 이야기 구조가 헐거워요. 또, 어떤 인물은 동어반복으로 지루하게 설명되는 반면, 가장 호감가는 캐릭터의 이야기는 어느 대목에서 멈춰버려요. 다만, <처음 만난 사람들>의 소재는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우리 영화의 토픽이 될 거예요. 외국과의 문화 교류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사회 안으로 자꾸 흘러 들어오는 다양한 정체성과 문화를 끌어안는 일이니까요
매드: 사실 그런 토픽을 부분적으로라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죠. 일본은 이 방면에 한국보다 먼저 그런 현상을 겪었고요. 아오야마 신지의 출품작 <새드 베케이션>의 도입부도 그런 부분을 건드려요. 밀항선을 탄 중국인들을 인신매매하는 일본인들이 나오거든요. 켄지라는 인물이 그중 하나인데, 도중에 죽어버린 한 중국인의 어린 아들을 2배의 돈을 준다는 데도 넘기지 않고 자신이 데려가 함께 살아요.
엔딩: 대체가족에 관한 상상이군요. <유레카>에서도 그랬던가요?
매드: 그렇죠. 무관할 수도 있는 버스 기사가 같은 참극을 겪은 남매를 돌보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오야마 신지 영화는 가족영화제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작품들을 연이어 상영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엔딩: 그리고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이 대담자로 나서면 좋지 아니한가!^_^
매드: 흥미롭게도 <새드 베케이션>은 아오야마 신지의 전작 2편에서 인물과 이야기를 그대로 끌어다 썼어요. 전체 이야기는 데뷔작 <헬프리스>에 이어지고 중요 인물의 하나는 <유레카>에서 데려왔죠.
엔딩: 아, 그것 자체가 유사가족이군요! *.*
매드: 그거예요. 이를테면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랄 수 있는데 이는 아오야마 신지의 인물이 영화에서 수행하는 일과 똑같다는 점에서 놀랍죠.
엔딩: 가족을 이루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라는 점에서는 베를린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던 왕취안안 감독의 <투야의 결혼>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제목을 보고는 결혼식을 둘러싼 영화인가 했더니 결혼 제도에 관한 영화더군요. 주인공 투야는 불구가 된 남편과 두 남매를 부양하다가 말 그대로 “허리가 휘는” 지경이 되어 이혼을 합니다. 이혼하는 이유는 하나. 남편까지 같이 받아줄 남자에게 청혼을 받기 위해서죠.
매드: 역시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죠.
엔딩: 이 영화에서 결혼은 참으로 생존과 도덕적 신념이 걸린 일이더군요.
매드: 결혼의 경제적인 측면에 집중한 영화로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이 영화 속 상황과 맞아떨어져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봤어요.
엔딩: <투야의 결혼>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부일처제 관습이 낭만적 연애와 얽히며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예요. 그 틈에 간과하는 더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배려를 일깨우는 거죠. 결국 투야가 연정을 품고 있던 이웃과 결혼하고 남편도 부양하게 되니, 이 영화는 “착한 투야 심성 덕에 모두 잘 살았대요”라는 동화로 끝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몽골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으로 빠질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런 함정을 잘도 피하더군요. 여자는 “우리 중 아무도 죽어선 안 돼”라는 신념으로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해결책을 찾았는데 거기서 남자들은 질투와 가부장적 의식 때문에 또 투닥거리잖아요.
매드: 오프닝과 엔딩이 같다는 점에서 명확히 그쪽으로 영화를 몰고 간 거죠. 전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처음 보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요. 물론 그쪽이 훨씬 처절하지만, 너무나 처절하게 이국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나오는 비극을 한국의 편안한 극장에서 즐긴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비슷했어요. 하지만 전 왕취안안 감독의 다음 영화도 좋을지는 확신이 서질 않더군요.
김혜리: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호감을 가질 거예요. 영화 자체가 배우 배두나 씨 같아요.”
이동진: “<엘리펀트> 이후 반 산트의 영화엔 정말 독특한 리듬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황홀해지죠. (<파라노이드 파크>는) 게다가 좋은 음악을 창의적으로 사용하고요.”
엔딩: 순박하기로 말하면 <린다 린다 린다>를 만든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시골 학생들도 뒤지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중학교가 합병 운영되는 전교생 6명의 초미니 시골학교에 멋진 도쿄 소년이 전학을 오는데요. 전교생이자 이웃인 아이들을 어미닭처럼 돌보아온 중학교 2학년생 소요는 모두의 마음을 보살피는 데 인이 박힌 소녀죠. 그녀의 몸에 밴 마음가짐과 소년이 일으키는 생소한 감정이 부딪치면서 잔물결이 일죠. ^0^
매드: 재밌겠다. ^^ 소녀의 마음속에 부는 산들바람인 셈이군요.
엔딩: 그저 예쁘장한 동화인 것만은 아니고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좋아한 관객이라면 분명히 호감을 가질 거예요. 배두나씨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영화 전체가 배두나 같다”라고 하면 감이 잡힐까요?
매드: 대충 감 잡힙니다. ^^
엔딩: 전 램프의 요정이 나와 10대로 돌아가게 해준대도 사양한다는 신조가 있는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소녀가 아니라 분하더군요. -.-
매드: 시간을 한번 줄곧 달리셔야 할 듯.^.~ 같은 10대를 다룬 영화인데도 <파라노이드 파크>의 색깔은 확연히 다르죠?
엔딩: 아이고 제목 보세요. 산들바람 대 파라노이드라고요. - -;
매드: 그래도 파크잖아. ^^
엔딩: 이 파크는 쥬라식 파크쪽에 가까운 듯. -.- 뭐,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를 내처 보아온 분이라면 <게리>부터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까지 한 단락으로 묶을 듯합니다.
매드: 한두편 더 나오지 않을까요? ^^ 전 이 시기의 반 산트 영화가 정말 좋아요.
엔딩: 감독의 성 정체성을 꼭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자꾸 데릭 저먼 감독의 영화와 닮아가는 것도 같아요. <파라노이드 파크>는 <엘리펀트>처럼 10대다운 일상의 경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사건과 충돌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무심코 한 소년의 작은 행동이 타인의 죽음을 초래하고 충격의 여음이 계속됩니다. 요약하면 “나는 지난 여름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고, 그래서”라고나 할까요.
매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반 산트 영화는 <엘리펀트>인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무척 좋았어요. <엘리펀트> 이후 반 산트의 영화엔 정말 독특한 리듬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황홀해지죠.
엔딩: 주인공 소년의 모습은 원죄를 짓고 아벨의 피를 손에 묻힌 카인, 즉 죄를 안고 계속 살아가는 인간 일반에 비추어봐도 들어맞을 법합니다. 성인들 누구나 자기만의 파라노이드 파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매드: 그게 10대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도 분명히 있고요.
엔딩: 여자친구 문제, 가족 이야기가 같이 흘러가죠? 소년의 행위가 갖는 법적, 윤리적 책임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사고와 사춘기의 과제를 동시에 겪는 소년의 내면을 보여주는 영화였어요.
매드: 소년들의 마음을 반 산트 아저씨가 진짜 잘 아는 것 같죠? ^^ 느릿느릿 걸어가는 장면은 어쩜 그렇게 매혹적으로 찍는지!
엔딩: 반 산트는 에곤 실레가 소녀들에게 가졌던 것 같은 특별한 미감을 소년에게 발휘해요. 관습적이지 않으면서도 매혹적인 10대 소년의 이미지를 잘도 잡죠. 한데 이 영화의 주인공 소년은 이자벨 위페르를 닮았더군요.
매드: 이자벨 위페르가 과연 좋아할는지….-.-
엔딩: 소년이 혼돈 속에 샤워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고개 숙인 단발머리를 타고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끈질기게 바라보는데요. 그러다보니 무슨 도상처럼 보이더라고요.
매드: 확실히 몇개의 도상으로 인수분해되는 영화죠. 음악도 참 좋죠? 좋은 음악을 가져다 쓰기도 하지만, 그 음악을 창의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소년들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줄 뿐인데도 음악과 결합되면서 잊지 못할 이미지가 되잖아요.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도 정말 멋지게 쓰였고요. 엘리엇 스미스는 포틀랜드 출신이라는 점에서 특히 반 산트가 편애하는 듯.^^
김혜리: “에드워드 양의 영화들을 보면 그 시기를 거기서 산 사람들의 삶을 서너 시간 동안 통째로 체험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동진: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몸이 아픈 영화더라고요. 스타일상으론 다르덴 형제 영화와 비슷한데 더 끈끈하고 지독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엔딩: 소년과 살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영화제의 에드워드 양 회고전을 잠깐 언급할까요? 전 이번 회고전에서 네편을 보았는데요. 영화를 보며 행복했고 행복해질수록 마음이 아팠어요. 이런 감독이 단 여덟편을 남겼다는 사실과 그 작품들 사이에 있었던 긴 공백이 새삼 안타까웠습니다.
매드: 대만 영화계의 빛이자 빚 같은 존재일 겁니다.
엔딩: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보면서 ??이야말로 영화가 역사를 쓰는 최선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 시기를 거기서 산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가. 매일 어떤 꿈을 꾸고 무얼 견디고 살았는가를 서너 시간 동안 통째로 체험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어도 동시대 삶의 핵심을 실감하면서 살지는 못하잖아요. 다수의 영화는 거꾸로 현실에서 도피하도록 도와주는 기능도 하고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비롯한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그 벽을 넘어서는 괴력을 보여줘요.
매드: 에드워드 양의 영화 네편을 연이어 부산에서 보셨다니, 부럽습니다. 정말 각별한 경험이었을 거예요. 저도 필름으로 다시 보거나 예전에 보지 못했던 영화를 챙겨보면서 내 마음속의 회고전을 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스크린으로 보면 압도당하는 느낌이죠. 사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에 비해서 그 영화를 좀 과소평가하고 있었는데 필름으로 보니 그만큼 좋더군요.
엔딩: 대만과 한국은 꽤 비슷한 현대사를 통과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어요. 1970, 8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보면서 다시 기억할 수 있었거든요.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모르는 채 고도성장 속에서 자기를 마모시키는 남자들과 그 옆에서 불행해지다가 마침내 독립적으로 변하는 여자들, 부모의 어려움을 알기에 홀로 어떻게든 성장의 고통을 견디다 심하게 다치는 아이들….
매드: 저는 가장 중국적인 무엇인가가 중국영화가 아니라 대만영화에서 더 잘 발견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특히 에드워드 양이 그런 것 같아요.
엔딩: 영화제에서 무슨 영화를 보면서 제일 많이 웃으셨어요?
매드: <대일본인>을 폭소는 아니고 계속 실실거리며 봤죠. 이 영화를 연출한 코미디언 감독 마쓰모토 히토시를 흔히 기타노 다케시와 연결해 평하는데, 둘은 지금도 다르고 앞으로도 완전히 다를 거라는데 5천원 걸겠습니다! (메신저토크 사상 최고 액수 베팅임. 부산영화제 티켓 한장 값!) ^^
엔딩: ^.~그런데 그만! 덜컥 둘이 같이 영화를 찍으면 어쩔래요.
매드: <기타노히토시스>라는 제목으로! ^^ 막판에는 괴수를 다 해치우고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며 씩 웃으면서 허무하게 끝나는 거야.
엔딩: ‘기타노히토시스’, 공룡이름 같습니다그려. 이 영화는 괴수가 나타날 때마다 전력을 먹고 몸이 커져서 일본을 지켜내는 특수 체질 히어로 ‘대일본인’이 세습되고 있다는 설정 아래 6대손이 겪는 일상의 애환을 그립니다. 아니, 그리는 듯하다가 옴팡진 판타지 특촬물로 끝나죠.
매드: 요즘 4차원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는데, <대일본인>의 유머야말로 4차원이더군요.
엔딩: 확실히 이 영화의 상상력과 괴수의 행태는 어떤 도를 넘었어요. 솔직히 일본사회의 풍자라기보다 엔터테이너로서 감독의 자기 고백과 취향이 더 비중이 큰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달갑지 않은 친절”이라고 시민들은 반응하는데, 그래도 “생물과 생물이 싸우는 모습을 다른 생명체에게 보여주는 일은 가치가 있다. 만사를 조이스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요즘 세대에게 위화감을 느낀다”는 대사도 자기를 투영한 말 같았습니다.
매드: 막판에 이르면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지더군요. 엔딩 크레딧은 또 어떻고요. 이건 황당이 아니라 퐝당이라고 써야 어감이 전해질 듯. -..- 주연을 겸한 마쓰모토 히토시의 표정은 그 자체로 개그였어요. 어쩜 그런 표정이 있을 수가 있는지.
엔딩: 눈빛이 진실하지 않아요? ^^ 어떻게든 단언을 안 하려고 요리조리 돌려 말하는 우회 화법도 일본이라 가능한 유머였어요. 영어자막은 그 맛이 아니더군요.
매드: 극중 대일본인이 상대한 다양한 괴수를 피겨로 판매한다면, 모조리 세트로 사다가 정말 싫어하는 상대에게 생일선물로 주면 딱일 듯!
엔딩: 맙소사! 여하튼 최근 들어 중국 독립영화가 보여주는 깊이나 일본 대중영화의 재미는 어쩐지 한국영화의 정체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네요.
매드: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느낌이 확실히 있어요.
엔딩: <대일본인>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더 어울리는 영화이긴 해요.
매드: 부천 폐막작으로 최고입니다. 이 영화를 끝으로 당분간은 판타스틱한 영화는 생각도 안 나게. ^0^
엔딩: <대일본인>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었는데, 그 칸에서 냅다 황금종려를 딴 <4개월3주2일>도 부산에서 소개됐죠?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매드: 조금 전에 보고 왔는데, 무엇보다 보고나니 몸이 아픈 영화더라고요.
엔딩: <밀양>입니까?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입니까? ^^
매드: 두 영화 모두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습죠. 스타일상으로는 다르덴 형제 영화와 비슷한데, 더 끈끈하고 지독하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보는 내내 숨을 쉴 틈을 주지 않으니 다 보고 일어서는데, 정말 온몸이 아프더군요.
엔딩: 그건 그냥 피로로 근육에 젖산이 누적돼 그런 거 아니에요? -.-
매드: 그나마 밤에 봤으니 망정이지 조조 영화로 봤으면, 그날 하루는 그냥 작파하고 들어가 누워야 하는 영화예요.
엔딩: 별점 대신 링거 병 개수로 표현해야 하는 영화들이 있긴 하죠. -_-#
매드: 진짜 그럴까보다. 이 영화가 탁월했던 점은 그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대사와 생생하기 이를 데 없는 심리묘사였어요. 테이크들이 길고 대사도 적지 않은데도 그 모든 게 애드리브없이 연습해 찍은 것이고 그럼에도 실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엔딩: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이 그의 영화와 비교되는 과거 거장들과 차별화한 개성의 작가로 자리잡을 것 같았나요?
매드: 전 크리스티안 문주의 차기작들도 상당히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투야의 결혼>을 만든 왕취안안의 차기작들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과 달리 말이죠.
엔딩: ^^ 그런 차이는 어디서 온다고 보세요?
매드: 영화의 힘이 소재에서 온 게 아니라는 느낌이죠. 왕취안안의 영화가 가진 힘은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라고 느껴지는데, 크리스티안 문주의 이 영화를 보다보면 1987년의 루마니아가 아니라도, 또 불법 낙태를 둘러싼 소녀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 정도의 힘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겁니다.
엔딩: 물론 좋은 창작의 파트너들과 어느 경우나 필요한 한 스푼의 행운도 같이 해야겠죠.^.~ 그럭저럭 부산에서의 1주일 1일 9시간도 끝나가네요.
매드: <4개월3주2일>은 결국 식당에서 메뉴판을 뒤적이며 끝나는데요. 오늘 저녁을 핫도그 하나로 때웠더니, 우리의 ‘1주일1일9시간’도 이곳 <씨네21> 데일리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도넛을 베어물며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_+
엔딩: 그거라도 드셔요.^0^ (그 도넛 언제부터 굴러다녔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