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0월 23일(화) 오후 2시
장소 용산CGV
이 영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홍콩으로 간 왕치아즈(탕웨이)는 대학교 연극부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급진파 광위민(왕리홍)을 흠모하던 그녀는 자연스게 그가 주도하는 항일단체에 몸담게 된다. 그들은 친일파의 핵심인물인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왕치아즈는 자신의 신분을 막부인으로 위장한 채 그의 아내(조안첸)에게 접근한다. 리는 왕치아즈에게 끌리게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상하이로 발령이 나면서 계획은 무산된다. 그로부터 3년 뒤, 왕치아즈에게 광위민이 찾아와 다시 막 부인이 되어 더욱 권력이 막강해진 이의 암살 작전에 주도적 역할을 해주길 부탁한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왕치아즈와 이는 격정적으로 섹스를 하게 된다. 그 관계가 거듭될수록 리는 점점 경계를 풀고 그녀를 더욱더 깊이 탐하게 된다. 왕치아즈 역시 연기가 아닌 실제로 사랑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와 더불어 이를 암살하려는 항일단체의 움직임도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11월 8일 개봉.
100자평
아시아 감독 혹은 특정 장르의 감독이라 선뜻 규정하기 모호한 리안 감독이 또 하나의 실험에 도전했다. 얼핏 2차대전의 항일운동 시기, 홍콩과 상하이를 잇는 이야기 속에서 그가 <와호장룡>(2000) 이후 다시 중국어 영화로 돌아온 것 같지만 역시 그는 욕망을 둘러싼 보편적 감성을 이야기한다. 157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리안은 ‘계’를 무너뜨리는 ‘색’의 본능을 탐색하고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시대의 서사에 눌리지 않고 본연의 테마에 집중하는 리안 감독의 집중력은 역시 놀랍다.
- 주성철 <씨네21> 기자2시간40분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 액션영화, 가 아니라 멜로다. 희고 늘씬한 여배우, 지성과 감성과 열정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맞은 노련한 남자배우, 모든 감각을 충족시키는 클로즈업과 격조있는 촬영, 실크처럼 부드러운 음악, 참과 거짓을 줄타기 하는 로맨스의 긴장감, 수위 높은 섹스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땀내. <색, 계>는 이 모든 요소를 끌어온 리안의 세공정신에 감탄을 표하게 될 영화다. <색, 계>는 마치 에두아르로 마네의 화풍을 따라 그린 초대형 화폭의 현대 유화 같은 느낌을 준다. 깊이가 없음에도 <색, 계>는 경박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다. 다수를 매혹시킬 만한 스타일인 동시에, 그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취향이 특별한 취급 받을 여지도 있다. 리안은 고상함이 화려함에 대해 갖는 우월한 위치를 안다. 그리고 야단스러운 작가주의가 상업영화의 미덕을 망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당신은 이 영화의 고급스러움에 반하고 말겠지만 그게 리안의 브랜드라는 건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알아챌 수 있다면, 당신은 명품의 바느질 땀만 보고 그 브랜드를 맞출 수 있을 만한 눈썰미의 소유자라 해도 좋다.
- 박혜명 <씨네21> 기자한 남자에 대한 사랑과 미움, 저주와 분노가 정리되지 못한 채 흘러간다. 인물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일제 치하라는 시대와 뒤섞이고, 홍콩과 상하이를 오가는 영화의 공간은 광주에서 태어나 홍콩으로 이주한 여자 막부인의 사연과 겹친다. 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는 시간과 사건을 교차하며 인간 내면의 경계를 흔든다. 친일 세력에 대항해 함께 행동했던 일행은 조직 내부의 싸움으로 피를 보고, 불확실한 마음으로 항일 단체에 합류했던 막 부인은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색, 계>에서 모든 일은 불명확하고, 인간은 그 경계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끝이 없는 절벽으로 보여지는 막 부인의 마지막과, 텅 빈 침대로 사라지는 이의 모습은 영화가 보여주는 불안한 삶의 유일한 결말이다.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표현하는 리안 감독의 연출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조성된 분위기가 영화의 시대적 공기를 대신한다. 150분이 넘는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촘촘한 영화. 전해지는 울림도 크다.
- 정재혁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