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형사와 팜므파탈의 무방비사랑
2007-10-25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김명민, 손예진 주연의 <무방비도시> 부산 촬영현장

무방비도시다. 작열하는 자외선에 무방비인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국에도 이런 데가 있었네.” 선크림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의 스탭 몇명이 디카를 꺼내들고 정박한 요트를 찍고 있다. 시가 43억원에 하루 대여비만 600만원이 넘는다는 옅은 크림색의 초호화 요트 주위로는 카메라와 장비들을 설치하는 스탭들의 손길이 점점 빨라진다. 10월15일, 부산국제영화제의 환호성도 모두 사라진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김명민과 손예진 주연의 신작 <무방비도시>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다.

국내 최고의 엘리트 형사들로 구성된 한국의 FBI 광역수사대. 날카로운 직감을 가진 베테랑 형사 조대영(김명민)이 기업형 소매치기 사건을 전담하면서 <무방비도시>는 시작된다. 문제는 국제적인 소매치기 조직인 삼성파의 리더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인 백장미(손예진)라는 사실이다. 소매치기 기업의 뒤를 캐기 위해 잠복수사를 벌이던 조대영이 라이벌 조직한테 쫓기던 백장미를 구해주면서 애정과 직업윤리를 넘나드는 위험한 사랑이 시작된다. 이날 촬영한 장면은 광역수사대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일본으로 도주하려는 백장미와 조대영이 요트 선상 위에서 만나는 최후의 클라이맥스. 안전지침 때문에 요트에 오르지 못하는 기자들은 땅에 두발을 딛고 두 사람의 표정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신발을 신지 않은 게 눈에 확 들어온다. 물에 뛰어드는 장면인가. 알고보니 “고가의 요트에 흠이 나지 않도록 요트에 탈 때는 신발을 벗는 게 계약”이었단다.

장르영화에서 이토록 독한 역할을 맡아본 경험이 없는 손예진은 “처음으로 관객이 어떻게 봐주실까가 많이 고민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흔쾌히 수긍이 가면서도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지닌 슬픈 캐릭터”라는 설명에는 또 머리를 굴리게 된다. 과거 한국영화에서의 ‘한국형 팜므파탈’들이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메가폰을 쥐는 이상기 감독은 “<타짜>의 김혜수보다 농염한 연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귀띔한다. 현재 70% 이상의 촬영을 완료한 <무방비도시>는 내년 1월 개봉예정이다.

형사 조대영 역의 김명민

“김명민이란 이름보다는 역할로 기억되고 싶다”

김명민이 <무방비도시>에서 맡은 역할은 광역수사대 형사 조대영. 소매치기 조직의 리더 백장미와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은퇴한 소매치기계의 전설이자 자신의 친엄마인 강만옥(김해숙)에게도 수갑을 채워야만 하는 인물이다. 직업윤리와 개인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라니,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아른아른 겹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김명민은 “이름보다는 역할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관객이 김명민이라는 배우에게서 장준혁이나 이순신의 모습을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무방비도시>라는 영화를 보는 순간만은 장준혁과 이순신의 모습이 배우 김명민의 얼굴에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김명민이라는 이름보다는 역할로 기억되고 싶다. 그것이 내 연기의 목표다. 물론 김명민이라는 사람의 버릇과 습관이 연기에서도 나오겠지만 최대한 관객을 속이면서 연기하려고 한다.” 야심만만한 스릴러 <리턴>이 <하얀거탑>의 촬영 전에 이미 찍어놓은 영화라는 걸 떠올려본다면, <무방비도시>는 TV의 아우라를 벗어던진 영화배우 김명민의 첫 번째 스크린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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