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의 <색, 계>가 이번에도 황금사자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황금사자상을 탈 것 같냐고 어떤 기자가 공식기자회견장에서 물었을 때도 그는 그저 “나는 좋은 영화를 만든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을 뿐이다. 영화제 초반 현지 언론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2년 만에 같은 감독의 영화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건 확실히 흔치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시 또 베니스의 최고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부터 그가 상을 타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며, 리안과의 이 단독 인터뷰는 이미 영화제 초반 9월1일 이루어졌다. 그를 만나러 데바 호텔에 간 날, 그는 막 서양 기자들의 라운드 테이블을 끝내고 조용한 걸음과 친절한 웃음을 띠고 <씨네21>쪽으로 넘어왔다. 시종일관 주의 깊게 귀를 세우고 세세한 대답을 들려주던 그는 “마지막 질문”이라며 칼같이 자르려는 영화사 직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질문 하나를 더 받고 싶으니 물어보라고 할 만큼 친절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질문을 더 받지 못하자 그는 정말 많이 미안해했다. 우리가 만난 리안은 꼭 그의 영화만큼 섬세하며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전날 술을 많이 먹어 사진은 못 찍겠다며 고사했는데, 황금사자상을 탔으니 영화제가 끝난 날 그는 아마 더 많은 술을 마셨을 것이다(본 인터뷰의 끝에 8월30일 있었던 <색, 계>의 공식기자회견 내용 중 리안의 대답만 따로 모아 첨부했다).
-당신은 ‘작가의 변’에 엘렌 창의 원작을 “각색”(adapt)한 것이 아니라 “재연”(re-enacted)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각색(adaptation)이란 기술적 용어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실제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항상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게다가 엘렌 창의 작품은 덫이라고나 할까. 너무나 진실하면서도 잔혹하고 또 슬픈 비극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강렬한 매력에 붙잡혀 그녀를 미워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내적 자아로, 그녀가 진정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자아의 이면으로 나는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영화적으로 삶을 펼쳐놓고 엘렌 창 원작에 있는 심연을 불러들인 것이다. 엘렌 창이 창조한 그 이미지를 재연(re-enact)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재연 작업은 내게 그녀의 삶이라는 덫 안에서 사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래도) 원작과 차이를 둔 지점이 있을 듯하다. 있다면 어떤 것인가.
=분량이 적은 단편소설이 원작이었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빈 곳을 채워넣는 조심성이 필요했다. 그녀가 언어로 표현하지 않은 부분까지 인물들의 영화적 행동으로 나타내야만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홍콩은 중국 본토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애국적인 분위기였다. 그 당시 30, 40년대 홍콩의 대학생들은 연극을 통해 사람들의 애국심을 선동하며 세상과 싸웠다. 이 모든 것을 20분 안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너무 슬프지 않겠나. 단순히 방대한 분량을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한다는 실질적인 어려움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엘렌 창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인물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애국심과 그들이 하는 연극과 그 분위기를 모두 통감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책의 독자들은 아마도 각자의 상상력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겠지만 영화는 직접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빈 곳을 채워야 했다. 빈 곳이란 원작자가 아주 심플하게 써놓은 부분을 포함하는데, 사실 소설에서 몇 페이지 정도는 내가 보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특히 1938년 홍콩에서 3년 뒤 상하이로 넘어가는 부분이 그런 곳이었다. 주인공 웡(탕웨이)이 일부러 스파이 노릇을 위해 처녀성을 버리고, 그리고 웡의 동료들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웡과 그 동료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혹은 3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는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또 동료들이 상하이에서 만난 웡을 어떻게 다시 설득시켰는지도 말이다. 우리는 이 모든 간극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말 여러 가지 경우를 시도했다. 덧붙여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영화의 스토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결코 영화의 리듬과 구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좀더 드라마틱하지만 덜 산문적인 느낌이 나도록 신경 썼다.
-많은 부분이 상하이를 무대로 하고 있다. 상하이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아주 좋았다. 99년 <와호장룡>을 찍을 때와는 새삼 달랐다. 한번 경험이 있었기에 일이 훨씬 쉬웠고 촬영을 위한 교통통제 등 시당국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도시가 너무 크게 변했기 때문에 1942년 상하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두 블록 전체를 거대한 세트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실제 상하이 거리를 측량하고 현존하는 상점들의 사진을 찍고 1942년 당시의 거리 구조와 지도, 엄청나게 많은 사진들을 참조했다. 상점이 있었던 자리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확히 그때 182개의 상점들이 있었다. 심지어 나무조차도 1942년의 나무 크기를 그대로 재현했다. 지금 상하이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아주 크고 굵직한데 1942년에는 이 나무들이 훨씬 작고 더 가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이즈에 맞춰 새로운 나무들을 심어야 했다.
-이 영화를 구상할 때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
=가장 중요한 것이라…. 무엇보다 여주인공 웡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우선 매듭짓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역사적인 정확성을 확보하는 게 힘들었다는 뜻이다. 중국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SARFT)에서 극중 웡의 행동에 관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들은 영화가 그 당시 중국 공산당 혁명을 간과한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나는 여주인공 탕웨이가 그녀가 맡은 웡의 역할과 기질을 이해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했다. 나는 탕웨이를 처음 보는 순간 이 역할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수만명의 여배우 중에서도 탕웨이를 뽑아 오랫동안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한 것이었다. 촬영 전 3개월, 그리고 촬영하는 5개월 동안 매일매일이 그녀에겐 트레이닝이었을 거다. 이런 내용들이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었다.
-당신은 신인배우 탕웨이의 경력보다 가능성을 본 것인가.
=그렇다. 그녀에게 강한 믿음이 갔다. 그녀의 성격이나 외모는 내 부모 세대의 고전적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부터 그녀가 바로 웡이라고 생각했다.
-제작자 제임스 샤머스는 원작자 엘렌 창이 여러 면에서 제인 오스틴과 닮았다는 흥미로운 말을 했다. 제임스 샤머스의 그 말에 기대 묻는다면, 당신은 서양의 제인 오스틴과 동양의 제인 오스틴(엘렌 창)의 원작을 동시에 영화로 만든 유일한 감독인 것 같다. 당신 생각으로는 두 소설가의 공통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엘렌 창과 제인 오스틴 둘 다 사회와 관습을 바라보는 풍자적인 시선을 지녔다. 그들은 관습 속에서 그 너머의 것을 볼 줄 안다. 그리고 둘 다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아주 로맨틱한 감수성을 지녔다. 만약 제인 오스틴이 그 시대의 홍콩에 살았다면 엘렌 창을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마도 둘이 비슷한 성격일 수도 있고.
-엘렌 창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색, 계>인가.
=그렇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좋아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숨은 고통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한번 읽으면 결코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난 아마도 이 이야기가 그녀 자신에 대한 얘기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녀가 쓴 모든 내용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들일 테니 말이다.
-단편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드는 건 아주 힘든 작업이라고들 하던데, <브로크백 마운틴>도 그렇고 당신은 그걸 아주 잘해내는 것 같다.
=최근 두 영화(<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 때문에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 단편을 영화화하는 이점은 자신의 영화적 측면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는 거다. 영화적으로 많은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두껍지 않은 책이라도 일단 장편소설은 영화적으로 많은 것을 다룰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생각해본다면 단편소설은 감독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를 준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역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당신은 그 간극을 채우는 걸 즐기는 타입 같다.
=그렇다. 나는 간극을 채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확장하고 발전시킬 요소들이 원작에 있어야 한다.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과거 시대 속으로 들어가 재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내 부모 세대의 기억을 듣기도 하고. 젊은 세대 배우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까지도 하나하나 쭉 지켜보았다. 그게 상당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마저도 변했다. 모든 걸 기억하면서 돌아봐야 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신경을 써야 하는 일들이 끝이 없었다. 우리(중국) 영화계에는 아직까지 세세한 부분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없어서 감독으로서 정말 많은 사항들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했다. 행동과 언어, 악센트까지… 모든 것을 말이다.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작업할 때는 외국인 감독이어도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여기(중국)서는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명함까지도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웃음)
-지금까지 당신은 많은 러브스토리를 다뤄왔지만 ‘섹스장면’을 격렬하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동안 당신 영화의 사랑은 ‘감정의 러브스토리’였다. 이번에는 강렬한 섹스신을 피하지 않고 직접 보여주었다. 단순히 ‘창작 작업에 있어서 추구한 변화’라는 넓은 의미 이외에 처음으로 당신이 배우의 ‘육체성과 섹슈얼리티’를 도전적으로 다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변화는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웡(탕웨이)과 이(양조위)가 서로에게 강한 감정을 갖기 전까진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과 증오를 표출하고 서로를 점령하는 한편 서로에게 점령당한다. 이건 증오와 사랑과 부정의 표출이다. 두 사람은 자기 부정과 자기 증오의 감정이 강한 인물들이다. 둘 다 사랑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저항하고, 서로에 대한 강한 불신을 품고 서로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다. 그 (강렬한 섹스) 장면은 이 모든 면면을 보여주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
-당신은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갖고 만든 <센스, 센서빌리티>의 시대를 재현하는 것이 지금 1940년대 상하이를 재현하는 것보다 쉬웠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의미에서 한 표현인가.
=원 재료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문제를 말한 것이다. <센스, 센서빌리티>를 제작할 때는 기존의 테크닉이나 로케이션에 대한 정보가 충분했다. 제작진 또한 아주 경험이 많은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상의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료도 아주 풍부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등을 겪으면서 모든 게 과거로 돌아갔다. 모든 게 뒤엎어진 상태에서 새로운 걸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제작 수준을 이곳으로 끌어오기엔 힘들었다. 또한 내 조국인 대만은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와 방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내 고향, 내 문화적 뿌리인데도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 더러 있었다. 어머니가 쓰시는 언어도 잘 못 알아들을 정도니 말이다.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수많은 측면을 알아야 한다.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을 촬영하기도 한 훌륭한)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와 어떤 점을 주로 상의했는가. 그는 당신이 양조위를 비출 때는 특정한 “킬러 라이트”(killer light)를 요구하거나 전체적으로는 이 영화에 “필름누아르 룩”을 요구했다고 하던데. 우선 “킬러 라이트”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건 어떤 점에서 필요했는가.
=우리는 그걸 “피자 라이트”(pizza light)라고도 부른다. 극중 양조위는 아주 냉혈한의 모습인데, 그런 그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효과를 낼까 고심하다 발견한 방법이다. 본래 양조위라는 배우에게는 없는 섬뜩하고 위협적이며 악마 같은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둥근 판에 크리스마스 전구를 여러 개 달아 반사판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킬러 라이트 혹은 피자같이 생겨서 피자 라이트라고 불렀다. 그 조명으로 주인공 이(양조위)의 악마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그럼 영화 전체적으로 필름누아르 룩을 요구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
=그것도 역시 다루기 힘든 부분이긴 했는데, 우리는 40년대 고전 누아르영화를 참조했다. 40년대 누아르는 아주 어둡지만 로맨틱한 정서가 담겨 있다. 내 생각에 그 뒤로 시간이 흐르고 누아르 장르는 좀더 시니컬해진 반면 로맨틱한 멋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극중 웡이 40년대 미국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엘렌 창이 이런 40년대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40년대 누아르처럼 지나치게 음영을 많이 주기보다는 현대 누아르처럼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 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기 위해 카메라의 심도와 초점을 다양하게 조절한다든지 말이다. 그런 건 우리가 원작을 발전시키는 단계에서 시도했던 새로운 접근방식이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1942년 상하이가 영화의 주배경이다. 과거 허우샤오시엔과 관금붕 역시 엘렌 창의 다른 소설을 <상하이의 꽃>(Flowers of Shanghai)과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Red Rose, White Rose>로 영화화한 바 있다. 각각 양조위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 (<색, 계>에서 양조위의 부인으로 나오는) 조안 챈은 관금붕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우리는 허우샤오시엔이나 관금붕과 달리 당신이 생각한 1940년대 상하이란 어떤 곳이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 상하이를 섬 혹은 암흑가라고 부르곤 했다. 정말 지독한 곳이었다. 프랑스, 독일, 영국이 개입하면서 부유한 자들은 훨씬 더 호사스럽게 부를 누릴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400만의 인구가 그 작은 땅으로 밀려들어와 그 당시에만 인구가 4배나 증가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과 암살이 일어나고, 마피아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여러 문화가 섞인 독특한 패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그 시대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비일비재했던 때다.
<색, 계> 공식 기자회견
“섹슈얼리티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번 영화는 아주 도발적인 섹스장면이 나온다. 당신에게 섹스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고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한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한다.-엘렌 창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원작보다 훨씬 더 심오한 접근을 한 것 같다. 어떤가.
=원작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나는 여기에 좀더 어두운 요소를 가미했다. 제작진들에게도 말했지만 원작 소설은 시작점일 뿐이지 마지막 도달지점이 아니다. 소설의 행간에 숨은 많은 의미들을 보여주려 노력했다.-당신의 경력과 관련하여 묻는다면 영화가 좀더 정치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 같다. 감독으로서 당신은 정치적인가.
=나는 감독이란 그저 영화가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 문화에 익숙하면서도 서양 문화를 경험한 것, 말하자면 이 두 문화의 간극을 체험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화란 이성적 사유가 아닌 습관적이고 무의식적 행위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든 지점이 있는데, 서로 다른 두 문화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다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 경험하고 있는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다.-전작과 이번 영화로 당신을 섹슈얼한 주제를 주로 다루는 감독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는 섹슈얼리티가 메인 토픽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섹슈얼리티는 일부를 이루는 요소일 뿐이지 그것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영화의 주제에 관하여 묻고 싶다. 이번 영화에서 폭력과 섹스의 관계는 무엇인가.
=영화를 봤나? (기자가 보았다고 대답하자) 그럼 그걸 왜 묻나?-올해 베니스 경쟁부문에는 중국영화들이 꽤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혹시 이번 작품 <색, 계>로 또 다른 황금사자상을 기대하지는 않는가.
=이번에 중국어로 된 중국영화를 들고 베니스를 찾아오게 된 것을 아주 영광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집행위원장인 마르코 뮐러의 취향이 반영된 것 같다. 그는 중국과 중국영화 전문가니까.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좋은 작품을 만든 것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