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성실한 마약왕과 고지식한 형사의 만남
2007-11-20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리들리 스콧 감독의 화제작 <아메리칸 갱스터> 뉴욕 시사기

프랭크 루카스는 대단한 비즈니스맨이다. 그는 여러 유통경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되던 상품의 생산지 직수입 루트를 개척해 상품의 월등한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기존 가격의 절반으로 판매하며 경쟁업체들을 완패시켰다. 프랭크 루카스는 패밀리맨이다. 사업으로 번 돈으로 노모에게 저택을 사드리고, 시골에 있던 형제, 친척들을 도시에 이주시켜 사업에 동참시켰고, 가족과 함께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녔다. 문제는 그가 거래하는 ‘상품’이 헤로인이라는 것. 루카스는 이 헤로인을 ‘상품’이라고 굳게 믿고 취급한다. 그리고 루카스가 무너질 때 그의 전 가족도 함께 무너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는 70년대 초 뉴욕 할렘에서 ‘헤로인 킹핀’으로 굴림했던 실존 인물 루카스(덴젤 워싱턴)와 그를 체포한 뉴저지주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의 이야기다. 러셀 크로가 연기한 리치 로버츠 형사는 가정적인 루카스에 비해 바람을 피워 이혼당하고 양육권까지 빼앗긴다. 하지만 지나치게 정직한 나머지 잠복수사 중 발견한 추적 불가능한 마약거래금 100만달러를 파트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보고한다. 당시 대체적인 경찰서 분위기는 청렴할수록 ‘왕따’당하기 일쑤. 모두가 여기저기에서 뇌물을 받던 시절에 거액을 거절한 로버츠를 믿고 같이 일할 경찰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일반 경찰업무를 계속하지 못해 특별마약수사반을 맡게 된 그는 자신이 믿는 정직한 동료 경찰들을 팀원으로 모집한다. 그러나 마피아를 중심으로 마약판매망을 살피던 이들은 숨겨져 있던 헤로인 킹핀 루카스를 찾게 된다.

루카스는 다른 마약상과는 달리 화려한 옷이나 귀금속, 고급 승용차로 치장하고 다니지 않았다. 허름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에 비즈니스맨처럼 보이는 그는 때로는 변장을 하면서 자신의 헤로인 ‘블루 매직’이 날개달린 듯 팔려나가는 것을 살펴본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 입소문이 나는 법이다. 마피아에게도 상품을 공급하게 된 루카스는 뉴욕시 부패 형사인 트루포(조시 브롤린)는 물론 로버츠의 수사망에도 걸려들게 된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영화적인 결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덴젤 워싱턴과 러셀 크로의 실감나는 연기 덕택에 캐릭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영화다. 하지만 스콧 감독은 루카스의 행동에 따른 파급효과 역시 잊지 않고 보여줬다. 발가락에 주사를 놓는 소녀들이나, 아이를 옆에 두고 약에 취해 침대에 쓰러져 있는 여인의 모습은 관객을 섬뜩하게 한다.

체포 당시 형량을 줄이기 위해 루카스는 마약판매와 공갈협박을 자행했던 뉴욕시경 마약단속반 형사들을 체포하는 데 협력했었다. 그리고 루카스의 증언으로 인해 당시 마약단속반의 3/4가 부패경찰로 밝혀졌었다. 이 작품의 제목을 본다면 <대부>나 <스카페이스> 같은 범죄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루카스는 사실 마약상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성공적인 흑인 사업가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논평처럼 <월스트리트>에 더 가까운 영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바탕이 된 <뉴욕매거진> 기자 마크 제이콥슨의 2000년 기사 ‘리턴 오브 슈퍼플라이’에 따르면, 루카스는 할렘 116스트리트 8애비뉴를 거점으로 타이에서 직수입한 100% 순수 헤로인을 정제시켜 판매, 매일 100만달러 수익을 올렸다. 체포 당시 루카스의 자산은 나이트클럽과 빌딩, 저택, 농장, 고급 승용차 등을 포함해 무려 1억5천만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감독과 작가, 배우들이 교체되면서 제작이 늦춰졌던 <아메리칸 갱스터>는 이미 한번 거절했던 리들리 스콧이 <어느 멋진 순간>(2006)을 촬영 중에 감독직을 수락하고, 함께 작업 중이던 러셀 크로까지 동참시키며 영화화될 수 있었다. 루카스 역을 맡기로 오랫동안 확정되어 있었던 덴젤 워싱턴은 촬영이 중도 취소되면서 위약금으로 2천만달러를 이미 받은 터라 출연에 꼭 동의할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리들리 스콧과 러셀 크로의 참여 소식이었다. 극중 실존 캐릭터들이 대부분 생존해 있는 덕에 감독과 배우, 각본가인 스티브 자일리언(<쉰들러 리스트>)은 주인공인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덴젤 워싱턴은 “이미 죗값을 치른 과거사에 대한 심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프랭크 루카스와 함께 교회도 가고 드라이브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다가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워싱턴은 “일부 사람들이 범죄자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면 찬미가 아니냐고 비난하는데, 솔직히 어떤 이야기든 영화로 만들어지는 자체가 찬미가 아니냐”고 말한다. 각본가 자일리언 역시 “단순한 마약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메리칸 비즈니스와 인종문제로도 봤기 때문에 각본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자일리언에 따르면 <아메리칸 갱스터>는 <프렌치 커넥션>과 <서피코> 등 70년대 뉴욕 범죄영화는 물론 블랙플로이테이션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블랙플로이테이션영화의 코믹 요소를 없애고, 스트레이트하게 표현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는 주연배우 외에도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루카스의 노모 역을 맡은 루비 디에서부터 루카스의 형제이자 공범인 휴이 루카스 역의 치웨텔 에지오포, 부패한 뉴욕 경찰 트루포 역의 조시 브롤린 등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테드 레빈, 로저 구에버 스미스, 존 호키스, 존 오티즈, 쿠바 구딩 주니어, 아맨드 아상테, RZA 등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뮤지션 겸 초년생 배우인 RZA는 촬영 중 큰 도움을 준 크로와 상당히 친해졌다고 한다. 크로를 ‘스승님’이라고도 부른 RZA는 “러셀의 조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촬영이 끝난 뒤 크로가 선물로 준 1961년 빈티지 기타를 자랑하기도 했다.

워싱턴과 크로는 물론 감독 리들리 스콧까지 아카데미상 후보설이 돌고 있는 이 작품은 상영시간이 2시간40분이지만 주인공이 서로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가 끝나기 20분 전에야 나온다. 그러나 아무런 지루함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르게 되는 <아메리칸 갱스터>는 미국 내에서만 11월13일 현재 849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미성년 관람을 금하는 R등급 영화로는 놀라운 수익이며, 해외 개봉이 시작되는 연말에는 더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12월27일 개봉예정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 인터뷰

-러셀 크로와는 이미 여러 작품(4편)을 함께했고, 덴젤 워싱턴은 동생 토니 스콧과 세 작품을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러셀과는 같은 나라는 아니지만 비슷한 문화에서 성장한 것 같다. 성격도 직선적이고 솔직한 게 비슷하고. 또 함께 일하다보니 친구가 돼서 영화 찍을 때도 큰 도움이 됐다. 러셀은 남의 말을 열심히 경청해준다. 대개 프로덕션의 절반은 배우들을 알아가고 그들을 ‘오픈’시키는 데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데, 이들과 일하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러셀 크로의 성격이 괴팍하다던데.
=내 성격도 장난 아니다. 몰라서 그렇지. (웃음) 러셀의 성격은 주위 환경에 따라 발전하는 타입이다. 배우로서 좋은 성격이지.

-유럽 출신이라 미국 문화의 에센스를 오히려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건가(리들리 스콧은 영국 출신이다).
=한곳에 오래 살고 있으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지. 나도 회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관계로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영화는 대부분 외국에서 찍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60년대 광고분야로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1년간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사진을 공부했는데, 뉴욕 시가를 누비며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당시의 뉴욕을 잘 안다. 솔직히 지금 뉴욕이 더 좋긴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깨끗해서. (웃음)

-실존 인물인 루카스와 로버츠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이 작품을 봤나.
=루카스는 관절염이 심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 경제적인 여건도 무척 안 좋은 편이다. 로버츠는 형사 시절 법대를 다녀 변호사가 됐고 지금은 법률회사도 가지고 있다. 둘 다 얼마 전 영화를 봤는데 무척 만족해했다.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 아들 제이크와 같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다. 아트 스쿨에 7년간이나 다녔는데, 한동안 그림을 잊고 살았지. 오일 페인팅을 하는데 수십년간 영화와 광고를 만들다가 ‘다음엔 뭘 그려야 하나?’ 하며 기본적인 고민을 하는 것도 즐겁더라.

주연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 인터뷰

-여러 번 제작이 미뤄졌는데 다시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덴젤 워싱턴: 당연히 감독과 러셀 때문이다. 리들리와 작품 이야기를 해보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러셀 크로: 그는 비주얼 아티스트지.

-극중에서 두 캐릭터가 영화 끝나기 20분 전에야 만나는데, 촬영은 어떤 방식이었나.
=덴젤 워싱턴: 내가 나오는 장면과 러셀이 나오는 장면을 두 파트로 나눠 촬영했는데, 8일 정도가 겹쳤다. 그래서 내 첫 장면은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은 체포되는 장면이었지. (웃음)

-극중 리치 로버츠가 수사 중 발견한 100만달러를 착복하지 않고 신고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 그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러셀 크로: 내가 자란 곳은 성공할 수 있는 비전이 없는 곳이었다. 배운 것이 있다면 열심히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였지. 그래서인지 100만달러를 주웠다 해도 주인이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줬을 거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

-<아메리칸 갱스터>는 가족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는 영화다. 본인들의 가족은 어떤가.
=(둘이 동시에) 당연히 가족은 중요하지.
=러셀 크로: 아내가 콘서트 투어를 한다면 난 당연히 100% 지지할 거다. 집에서 아이 볼 의향도 있고. 내가 늦게 결혼한 이유는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다. 39살에 결혼하고, 40살에 아이 아버지가 됐다. 자신을 이해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가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겐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