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역사>와 <인랜드 엠파이어>의 DVD가 출시됐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데이비드 린치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만들어진 두 DVD는 영화만큼 인상적이다. 크로넨버그와 린치를 한자리에서 거론하는 게 이젠 지겹겠지만, 한판 승부를 바란 듯 2주 간격으로 선보인 두 DVD의 비교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지 싶다. 평소 무섭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크로넨버그에게 DVD는 그 이미지를 바꿀 좋은 기회다. 음산한 목소리로 난해한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영화 안팎을 자상하게 짚어주는 음성해설에서부터 놀라움은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 정보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펼치는 등, 관객을 향해 속내를 털어놓는 자세는 다른 거장의 음성해설에서 보기 힘든 것이다. 놀랍게도 린치와 그의 작품을 직접 언급하기도 하는데, 자기 영화는 린치의 아이러니한 영화와 궤를 달리한다는 말에서 대중을 향한 몸짓이 느껴진다. 기괴한 세계가 두려워 그간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멀리한 사람은 “유머가 없는 작품은 만들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 주목할 일이다. 메이킹필름 ‘폭력의 여덟막’(66분)에서 접하는 여유있고 평범한 제작현장 또한 뜻밖이다. 스토리보드나 예행연습 없이 촬영이 시작되고, 20년 이상 함께한 스탭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감독은 배우와 스탭이 현장에서 제안하는 사항들을 주저없이 영화에 반영한다. ‘영화작업은 비폭력의 역사다’라는 그의 말대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리고 ‘칸영화제의 기록’(9분)에선 영화제에 어울리지 않을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원래 의도였음을 밝힌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박스오피스를 호령했던 크로넨버그로선 작가란 이름하에 잃어버린 대중의 호응이 많이 그리운 모양이다.
<인랜드 엠파이어>의 DVD는 린치의 고집스러움이 담긴 부록으로 인해 빛나는 경우다. <폭력의 역사>의 삭제장면(3분)과 삭제장면의 메이킹필름(7분)까지 정성들여 구성하며 DVD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진일보했다고 말한 크로넨버그도 <인랜드 엠파이어>의 삭제장면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것 같다. ‘보지 못한 사건들’(75분)은 단순한 삭제장면의 모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뜬금없는 대사와 낯선 인상의 행렬은, 삭제장면이 본편 영화의 이해되지 못한 부분들을 설명하거나 연결해주기를 바랐던 마음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감독 인터뷰(42분)는 린치가 개인적으로 만들곤 하는 DVD에서 행했던 방식을 따랐다. 구식 스튜디오, 커다란 마이크, 담배를 피우며 인상을 쓰는 린치의 표정이 그것이다. 영화와 관련된 19개의 질문에 린치가 멀쩡히 대답하기는 하는데, 왠지 뜻모를 강연 같아서 영화의 대사처럼 “그게 무슨 말이죠?”라고 간혹 묻고 싶을 정도다. 하긴 린치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영화를 전통적인 스타일로 설명하면 무슨 재미냐,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중 ‘진실한 경험’에 대해 말한 부분이 인상깊다. 신기술에 집착하는 린치지만,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영화를 감상하면 영화에 나오는 영겁의 세월을 결코 경험하지 못한다. 경험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빌어먹을 매체로 영화를 보는 건 애석한 일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영화를 대하는 순수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명상 수련을 해온 그답게 “우리 모두 명상의 세계에 하루 두 번 빠져보는 건 어때요”라고 말하는 걸 잊지 않는다. 구름 속에서 춤추는 발레리나를 그린 <발레리나>(12분)는 몽환적인 여자 이야기인 <인랜드 엠파이어>와 같이 보기에 어울리는 단편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