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사토시 감독(<퍼펙트 블루> <파프리카>)은 원래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객관과 주관을 넘나들며 일반적인 서사를 자유롭게 농락하는 전개가 특징이지만, 그 속엔 어딘가 현실의 중력을 농축시킨 순간이 존재했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어두운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의 단면을 슬쩍 묻어넣어 서늘함을 환기한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원제: <도쿄대부>)은 그의 인장 같은 판타지적 유희를 덜어내고 대신 도시의 현실에 대한 농밀한 시선을 코믹한 소동극으로 연결한 편안한 소품이다. 12월의 도쿄, 술주정뱅이 아저씨와 소녀적인 감성을 지닌 중년 게이, 터프한 가출소녀가 쓰레기장에 버려진 아기를 줍는다. 이 이상한 유사가족은 아기의 친부모를 찾기 위해 실낱 같은 단서만 갖고 도시를 헤매고, 예상치 못한 계기로 야쿠자의 결혼식장, 게이 호스트바 등으로 자꾸만 휩쓸린다. 유쾌한 코미디에 도시의 낮은 곳에 처한 다양한 군상이 침투하고, 절망을 일상으로 삼은 사람들을 따스히 감싸는 기적이 찾아온다.
전작의 팬이라면 조금 심심할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에…>는 관객에게 폭소를 선사하면서 억지스럽지 않게 행복한 미소까지 안기는 데 성공한다. 실재하는 도쿄 거리를 정성껏 옮긴 배경은 이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초라한 주택가, 요란해서 조금은 우스운 광고판, 멀리 보이는 도쿄타워의 불빛 등 지나치리만큼 섬세한 배경의 존재감은 도시의 쓸쓸한 이면에 애정을 갖고 관찰한 감독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애니메이션 ‘배우’들의 연기 투혼도 좋다. 진솔한 가족 사랑을 다루면서도 혈연주의의 끈끈함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도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