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외신기자클럽] 동양 남자의 관능
2007-12-13
글 : 아드리앙 공보 (포지티브 기자. 영화평론가)
<두번째 사랑>과 새로운 ‘대상으로의 남성’

김진아 감독의 <두번째 사랑>은 2007년의 가장 자극적인 작품 중 한편이다. 그 미학, 멜로드라마적 취향 그리고 관심사(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를 뒤집어 반영한 작품인데)에 있어 전적으로 한국적인 작품인 <두번째 사랑>은 그러나 뉴욕에서 촬영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한 미국 여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부부는 겉보기에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고, 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서서히 메마르게 한다. 여주인공은 그래서 한국인 불법 체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돈의 대가로 그에게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의 만남이 잦아짐에 따라 그들의 포옹은 더욱 열정적이 된다.

가느다란 몸매의 감수성이 예민한 금발의 베라 파미가(여주인공)는 두 한국 남자 사이에서 방황한다. 데이비드 맥기니스는 이상적 사위이거나 완벽한 남자친구이며, 그의 육체는 앞발을 높이 들어올리며 달리는 말과 날개를 커다랗게 펴고 나는 새의 조각처럼 팽팽하다. 섹시한 육체지만 성적이진 않은데 그 이유는 생식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만큼이나 멋진) 하정우는 반면 관능적 섹스어필을 보여준다. 김진아 감독은 다양한 짐을 지고 있거나 심지어는 무거운 소 다리 하나를 나르는 그를 움직임이 있는 카메라에 담았다. 그 육체는 관능적인데 왜냐하면 철저하게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시각을 미국에 끌어들이면서, 감독은 동양 남자의 육체에 관한 자신의 시각을 부여하고 서양이 결코 접근할 수 없었던 영화에서의 에로티시즘의 영역을 건드린다.

확실히 서양이 아주 일찍부터 아시아 여성의 육체를 철저하게 성적 대상화했다면, 서구 영화는 언제나 동양 남자의 육체에 대해선 당황했었다. 1920년대의 안나 메이 웡 이래 오늘날의 루시 리우에 이르기까지 이국적 섹스심벌의 헐리우드 리스트는 셀 수 없이 많다. 반면 서양은 동양 남성을 결코 관능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예를 들면 주윤발은 홍콩영화에서 강렬하고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일종의 팬케이크처럼 돼버렸다. 심지어 포르노 산업에서조차 한국, 중국, 일본 등지의 여자배우를 출연시키면서도 동양 남자배우는 신경 써서 기피한다. 단 두편의 프랑스 작품만이 (둘 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관계가 있지만) 예외이다. 에이지 오카다가 나오는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사랑>과 양가휘가 나오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이다.

이런 대중매체에서의 동양 남성 에로티시즘의 재현이 거의 부재한 것은 당연한 것인가? 다른 나라들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이 10여년 전부터 남자 스타배우들을 서구보다도 더 관능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대상물로의 남성’이라는 새로운 종을 창조해냈다. 따라서 최근 <씨네21>의 김남진의 충분히 놀랄 만한 사진도 그 결과다. 그의 얼굴은 웃음을 띠고 예절 바르며, 그의 눈빛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솔직함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여배우의 관능적인 자세로 이 남자배우는 목덜미 뒤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리타 헤이워드가 이 자세의 전문가였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역시 최근 앨범 표지에서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의 스웨터는 들어올려져, 최소한 다른 영역의 입구로 볼 수 있는 그의 배 아래의 비비 꼬인 가벼운 털을 약간 드러내고 있다. 정감있고 순수한 윗부분은 그의 남성적 매력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아랫부분과 그렇게 절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사진에서, 대상으로의 한국 남성은 베라 파미가가 <두번째 사랑>에서 사랑하는 두 남자, 즉 남성적 에로티시즘의 두 측면을 그렇게 구체화한다. 윗부분은 데이비드 맥기니스의 깨끗이 면도한 매끄러운 얼굴로, 미국 교외의 냉방이 된 세계이다. 아랫부분은 차이나타운 숙소의 얼룩진 침대보 위에서 하정우의 땀 흘리는 육체이다.

번역 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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