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양조위] “성숙해질수록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2007-12-12
글 : 박혜명
<색, 계>의 양조위 서면 인터뷰

어렵게 얻어냈다. <색, 계> 홍보차 양조위와 서면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말에 질문지를 작성해 보냈는데 거의 3주 만에 답신이 왔고, 질문들의 절반은 공란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우삼 감독, 금성무, 장첸 등과 함께 <적벽>을 촬영 중이라 몹시 바쁘다고 했다. 답변을 받지 못한 질문들은 대부분 영화 속의 강렬한 섹스신 또는 힘겹고 섬세한 감정신들에 관한 것이었다. “캐릭터로부터 벗어나는 게 오랫동안 힘들었다”는 <색, 계>를 떠나 대형 사극을 열심히 촬영 중인 그에게 근 1년이 지난 영화의 묵직한 기억을 되짚도록 하는 게 까다로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차대전 시기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친일파 중국 고위관료로 매 순간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이’. 40대 중반에 접어든 <색, 계>의 배우 양조위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다 해도, 여유와 관록이라는 경험의 군살 대신 더욱 바싹 마른 눈빛을 하고 새로운 벼랑 끝에 서 있을 예감을 준다. 닳지 않는 감성의 소유자는 서면 인터뷰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아래는 반쪽이 되어 돌아온 인터뷰 답신을 정리한 것이다.

-서면으로라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번 <색, 계> 개봉 홍보차 리안 감독, 탕웨이와 함께 내한할 걸로 알고 있었는데 당신의 일정은 취소되어 아쉬웠다. 오우삼의 신작 <적벽> 촬영으로 바쁘다고 하던데.
=사실 <색, 계>를 찍고 나서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엄청나서 한동안 쉬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적벽>의 요청이 있어 바로 참여하게 됐다. 오랜 친구인 오우삼 감독과 워낙 막역한데다 근 몇 년간 두 사람이 함게 작업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드디어 만나게 됐다.

-올해 9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색, 계>의 인물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런 종류의 캐릭터를 이전에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잘생긴 남자 역을 해왔고, 리안 감독은 나에게 새로운 양조위를 보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는 어떤 인물인가.
=‘이’는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다. 겉보기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의 오만한 인물로 보이지만 내면에 커다란 두려움과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내면에서 항상 충돌하고 있는 인물이다.

-수위 높은 섹스신을 비롯해 이 영화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배우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데, 어떤 면에서 리안 감독을 신뢰했는가.
=나는 그를 전적으로 믿는다. 그는 연기자와 거리를 두지 않고 영화에 대해 항상 충분한 의사소통을 한다. 인내심 또한 많다. 나는 마음 놓고 감독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연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가 왕치아즈/막부인의 빈 침대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방을 나가는 것이다. 이 장면을 찍을 때 당신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마지막 장면은 ‘이’가 아주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이라는 걸 말해준다. 이 장면에서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고통을 억눌러야 할 뿐 아니라 한편으로 살아남기 위해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 했던 감정이 뒤얽혀 있다. 이건 쉽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그 장면을 반드시 연기해내야만 했다.

-당신은 ‘이’의 선택에 동의하나? 당신이 ‘이’였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까.
=그 시대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적벽>을 촬영 중이다. 육체적으로 고생이 많다고 하던데.
=맞다. 특히 이 영화가 막 촬영을 시작했을 때가 여름이어서 더욱 힘들었다. 전쟁신을 찍을 때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무거운 갑옷까지 입어야 했다. 정말 데일 것 같은 더위와 싸워야 했다. 그런 점이 이 영화의 촬영을 힘들게 했다.

-어떤 기사들의 보도에 따르면 당신은 처음에 <적벽>을 거절했다. 6개월짜리 촬영 스케줄이 제일 큰 부담이었다고 했는데, 결국 지금 합류했다. 왜 거절했고, 다시 출연을 결정했나.
=그때가 <색, 계> 촬영을 막 마쳤을 때라서 심신이 매우 지쳐 있었다. 정말, 먼저 휴식을 갖는 게 어떨지 신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우삼 감독에게 출연 요청이 왔고, 그는 나와 오래된 친구 사이이자 몇 해 동안 같이 작업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매우 세심하게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배우들을 분류하는 흔한 기준들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젊었을 때 미모로 전성기를 누리는 쪽과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매력적인 인물이 되어가는 쪽. 당신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은 당신의 20대와 30대, 40대의 배우로서의 삶을 어떻게 보고 있나.
=연기를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큰 노력이다. 오래 연기를 해온 경험 덕분에 나는 어떤 배역을 해석하는 법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연기를 할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즐거움과 도전도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고.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느끼지 못하지만 나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성숙해질수록 전혀 다른 종류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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