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권 더 그레이트! <은하해방전선>을 보았다면, 빛나는 은색 유니폼을 입고 두팔을 ‘L’로 붙여 포즈를 취하는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혹은,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 영재의 입이 되어주는 눈부신 복화술의 주인공을 기억할 것이다. 어린이영화 스타로 아이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지만, 이제는 진지한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남자. 능글능글한 속물성이 싫다기보다는 귀엽고, 또 종종 애처로워 보이는 <은하해방전선>의 혁권을 연기한 것은 그 이름 그대로, 박혁권이다. ‘혁권 더 그레이트’의 위용이 웃음과 함께 묘한 기시감을 가져다주었다면, 당신이 맞다. 그는 올 한해 화제가 됐던 드라마 2편에 출연했다. <하얀거탑>에서 장준혁 바로 아래 의사로, 증언대에서 양심을 슬쩍 감추었던 홍상일 교수가 바로 그였고,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은근한 카리스마로 팬심을 샀던 국정원 요원 기호 또한 그였다.
1993년 산울림 소극장 단원으로 출발해 뮤지컬과 연극 무대 위에서 연기를 배운 박혁권은 <음란서생> <바람피기 좋은 날>부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 청춘에게 고함>까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진영을 고루 넘나드는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단편영화는 수업료 안 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소신은 <쌍둥이들>로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 연기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두편의 드라마 덕에 이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팬도 꽤나 늘었지만 “배우 역시 하나의 직업인일 뿐”임을 강조하는 박혁권은 거침없이 소탈하고 편안했다. 마케터와 매니저까지 대화에 포섭하며 돌출적인 유머로 분위기를 휘어잡던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술 한잔을 노래하며 홍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하해방전선> 이전에도 윤성호 감독 작품에 여러 차례 출연한 것으로 아는데, 감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윤 감독이 첫 단편 할 때 만나서 <은하해방전선>이 4번째로 같이 한 거다. 그전에 <삼천포 가는 길>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 <졸업영화>, 단편 3개를 같이 했다. 시작은 2001년 즈음이었나. 연극할 때였는데, 카메라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바로 영화판이나 드라마 가기는 부담스러워서 일단 단편을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마침 윤 감독이 <삼천포 가는 길> 오디션 공고를 낸 걸 봤고, 그렇게 만나게 됐다.
-이후로 계속 함께 작업해온 것을 보면 마음이 잘 맞았나보다.
=싸니까. (웃음) 개런티의 부담이 없으니까.
-감독 입장이 아니라 박혁권씨 입장에서 이야기한 거였다. (웃음)
=<삼천포 가는 길>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시나리오 중 가장 재미있는 5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재밌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가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재주가 뛰어난 것 같아서 내가 빨리 자리잡아서 돈 벌면 유학 보내서 공부를 시키자, 생각도 했었다. (웃음) 그런데 알아서 잘하더라. 지금은 성호가 날 보내주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웃음)
-극중 혁권은 어린이영화 배우다. ‘혁권 더 그레이트’는 한번도 안 해본 스타일의 연기라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못하는 연기다. ‘혁권 더 그레이트’가 말하는 것은 일단 사람 말이 아니고(웃음), 노래에 가까운 거다, 뮤지컬처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진짜 어린이영화 배우처럼 보여야 하니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찍어놓은 걸 봤더니 답이 안 나오더라. (웃음)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예전에 뮤지컬 공연을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러다가 안 하게 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리얼한 연기를 하지 않으니까. 노래하다가 갑자기 한국말이 탁 튀어나오면 솔직히 웃기거든. 배우들끼리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객석에 대고 막 하니까 부담스럽고 자연스럽지가 않다. <은하해방전선>에서는 나만 연기를 그렇게 하니까 혼자 튀는 것 처럼 느껴져서 잘 못하겠더라. 내가 추구하는 바도 아니고.
-복화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후시녹음으로 처리한 게 맞나.
=어릴 때 그런 장난을 하고 놀아서 그런지 하다보면 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톤을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를 후시로 갔다. 아, 이거 윤 감독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웃음)
-본인이 출연한 장면 중 가장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면.
=<은하해방전선>을 하고 나서 갈 길이 멀다는 걸 느꼈다. 빈구석이 너무 많아서. 잘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자신에게 너무 냉정한 것 아닌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은하해방전선>에서 나는 C- 정도인 것 같다. 뭐, 낙제는 안 할 정도다. 영화를 8번 봤는데, 5번 정도 볼 때는 정말 못 견디겠더라. 너무 못했다는 생각만 들고. “아, 빵구가 보인다”라고 말했더니 성호가 “형, 우리 영화가 빵구예요?” 그러더라. (웃음)
-<씨네21> 동영상 인터뷰를 보니 해운대역신에서 후시녹음을 하려고 했다가 감독에게 욕심 부린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었다고.
=혁권이 아이들에게 “너 아저씨 몰라? 좀 이따가 아저씨가 누구 만나면 사인해달라 그래” 하는 대사였다. 사실 찍을 때부터 사운드 안 들어갈까봐 불안했는데, 윤 감독은 거기다가 음악을 깔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다. 그렇다고 음악이 크게 깔린 것도 아니고, 안 한 것 새로 해달라 한 것도 아닌데, 윤 감독이 “아, 왜 욕심을 부리세요” 하더라. 그날 일부러 그 대사 녹음하려고 일찍 가서 다른 사람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는데. 빈정이 팍 상했다. (웃음) 삐쳐가지고 잠수 타서 공식 상영에 2번 안 나갔다. (웃음)
-감독이 그 일 때문에 잠수 탔다는 걸 눈치챘나.
=이번 <씨네21> 인터뷰 보고 알게 된 모양이다. 아침에 “형 말이 맞아요” 하고 문자가 왔더라. 그래서 “아니야, 그냥 개인적이고 부분적인 이야기를 한 거야”라고 답을 보냈다. 이제는 한번 풀고 지나가서 극장에서 그 장면을 봐도 그냥 넘어가는데, 안 풀었으면 “아, 나 이런 거 못 봐” 하고 나가버렸을 거다. 그래도 한번 복수를 했으니까. 소심하긴 하지만. (웃음)
-연기를 처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였나.
=마음먹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집이 수원이었는데, 대학 갈 생각은 별로 없었고 만날 애들하고 술먹고 록카페에서 알바하고 그랬다. 그러나 어느 날 신문을 봤는데 산울림 소극장 단원모집 공고가 떴더라. 어떻게 하면 되냐고 전화했더니 일단 한번 와보라고 하더라. 1993년에 산울림 소극장 단원으로 시작했다. 아참, 그전에 서울예대 시험봤다가 한번 떨어졌구나. (웃음)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가 한창 방영하던 때였는데, 최민수 선배가 되게 멋있어 보였다. 서울예대 시험볼 때 실기를 그런 말투로 한 것 같다. (웃음) 그래서 떨어지고(웃음) 그 다음에 산울림 소극장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는 그냥 받아주던가.
=그때는 최민수처럼은 안 했던 것 같다. (웃음) 처음에는 포스터 엄청 붙였다. 그리고 한 1년 있다가 다시 서울예대 시험을 쳐서 94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매우 불우한 학생 시절을 보냈다.
-뭐가 불우했나.
=학교에서 내가 연기를 제일 못했다. 내 차례가 와서 무대에 나가면 숨을 못 쉬고 입 안이 바싹 말라서 말을 못했다. 연습 끝나면 먼저 튀어나와서 앞에서 막 울고 그랬다. 선생님도 답답한데 내가 울고 온 게 딱 보이니까 그냥 한숨만 쉬고. (웃음) 친구가 제대하고 나서 인사드리러 과사무실에 갔는데, 선생님들이 모여 있다가 내 이야기를 했다더라. 아, 우리반에 혁권이라는 애가 있는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웃음) 학생 때는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까 뭘 해야겠다 싶어서 스탭으로 대학로 일을 시작했다. <모스키토 2000>이라고 학전에서 하는 공연이었는데,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큐 사인 날리는 일이었다. 근데 연기를 안 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배우같이 보더라. (웃음) 그때 김민기 선생님도 나를 보면서 “아, 저게 배우인데. 너 다음 작품 꼭 같이 하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하철 1호선>을 같이 하고 욕 엄청 먹었다. (웃음) 후회 엄청 하셨을 거야. (웃음)
-처음 배우로 무대에 선 건 언제였나.
=98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였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예수… 를 드는 역할. (웃음) 예수가 잘 보이게 어깨에 딱 받쳐서 드는 역할이었다. 대사도 없었고, 노래도 대강 입만 벌리면 됐다. 너무 좋았지. 부담도 하나도 없고. 그냥 땀 좀 흘리고, 예수만 안 떨어뜨리면 되니까. (웃음)
-제대로 대사를 하는 역할로 무대에 오른 것은.
=연극이긴 한데, 그것도 약간 음악이 들어가는 <밥퍼랩퍼>라는 공연이었다. 2002년 말 정도까지는 올해까지만 하고 배우 그만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못할 것 같은 애가 자꾸 한다고 그러면 보는 사람도 안쓰럽잖아. (웃음) 근데 막상 생각을 해보면 또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더라. 그리고 그만둘 만하면 일이 계속 들어오고. (웃음)
-학생 때 극심했다던 긴장,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연습이다. 공연할 때마다 일지를 꼭 쓴다. 공연 전에 쓰고, 하고 나서 쓰고. <지하철 1호선>은 6개월 공연인데 마지막 공연 끝난 날에도 다른 사람들 짐정리할 때 나는 일지를 썼다. 주변 사람들이 독하다 그러더라. 그리고 연습은 무조건 2시간 먼저 나가고, 끝나면 2시간 정도 남아서 개인 연습 따로 하고. 실력은 안 늘어도 자신감은 좀 생기더라.
-연기 그만해야겠다던 사람치곤 너무나 성실하게 일했다 .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할 만큼 못하고 그만두면. 둘 중 하나였다. 되든 아니면 내가 안 된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되든.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찍기는 <귀여워>를 먼저 찍었는데 <시실리 2km>가 먼저 개봉했다. 물론 오디션 봐서 한 거다. 지금까지 오디션 안 보고 출연한 작품은 거의 없다.
-<시실리 2km>를 다시 찾아 봤는데, 삭발하고 나와서 이미지가 사뭇 다르더라.
=돈 준다고 그래서 밀었다. (웃음) 그때 또 감독님이 주문했던 것이 살을 찌우라는 거였다. 근데 연극을 하던 때라 집에 먹을 게 없었다. 방배동에 누나가 살았는데, 그 집에서 많이 얻어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주 놀러갔다. 근데 누나네 애랑 열심히 놀다보니 살이 안 찌더라. (웃음) 또 그때 내 가슴을 아프게 한 여자가 있어서, 신경 쓰느라 살이 더 빠졌다. 여건이 정말 안 좋았었네. (웃음)
-영화 연기를 해보니 어땠나.
=연극은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본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거기 맞춰서 템포를 조절하고 사람하고 관계를 맺으면 되는데, 카메라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시실리 2km> 모니터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예상했던 그림, 에너지가 안 나오더라. 사람 상대 하는 거랑 기계 상대하는 것이 정말 달랐다.
-드라마는 어떤가.
=드라마는 진짜 어려운 것 같다. 연극할 때는 드라마하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근데 해보니까 드라마에서 잘하는 사람은 진짜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거기는 정말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시간이 워낙 없으니까. 드라마하면서 감정 전달이 아니라 NG 내지 않는 것이 내 목표가 돼버렸다. 속상해서 술도 많이 마셨다. 하지만 역으로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드라마는 계속해서 언젠가 진짜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올해 화제가 됐던 두편의 드라마 <하얀거탑> <개와 늑대의 시간>에 출연했다.
=1, 2등을 했더라. 어느 잡지에서 뽑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에 1등이 <하얀거탑>, 2등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하얀거탑>을 할 때는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아니 왜 울었나.
=내가 원래 눈물이 많다. <하얀거탑> 때는 드라마 대본을 쓰는 친구가 정말 고민하고 밤 새워가면서, 힘들게 힘들게 쓰는 걸 보고 가슴이 찡했다. 또 드라마 마지막 3회 정도는 내용도 가슴아프고, 배우들도 계속 울지 않나. 촬영 들어갈 때마다 항상 눈물 참느라 힘들었다. 지금도 어디서 <하얀거탑> 음악이 나오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O.S.T도 받았는데 아직 뜯어보지도 않았다.
-두편의 드라마로 대중에게 얼굴을 많이 알렸는데, 삶이 달라진 것이 있나.
=달라진 부분은… 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근데 주변 사람들이 좀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사실 나도 조금은 변했겠지. <하얀거탑> 할 때 인터뷰를 하는데, 숍에 가서 머리하고 옷도 코디가 맞추고 얼굴에 분장까지 시키려고 하더라. 무슨 애완견 미용대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만드는지 굉장히 불쾌했었다. 근데 요새는 신경 써야겠구나 생각한다. (웃음) 그래서 오늘은 집에 있는 4B연필로 눈썹을 살짝 그리고 나왔다. 집에 있는 한 5년 된 컬러로션도 바르고. 변했네 나도. (웃음) 이러다가 나중에 숍 갈지도 모르겠다. (웃음) 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박혁권이 아니라 박혁권이 하는 연기.
-연기를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었나.
=2002년 말쯤에 뮤지컬 <카르멘>을 했는데, 그 작품을 하면서 조금 더 편하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하더라. 칭찬 들으니까 기분이 좋잖아. 아, 나도 잘하는구나. 좀더 해도 되겠다. 그런 생각들이 그즈음 들었다. 그때는 정말 하루 종일 거의 연기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평생 연기할 것 같나.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내가 다른 취미가 별로 없다. 연기하는 게 제일 재밌고. 사실 스키장도 가본 적이 없다. 가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매니저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하면 “뭐하러 거기까지 가서 술먹냐?” 이런다. (웃음)
-앞으로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나 역할, 장르 같은 것이 있나.
=악역을 해보고 싶다. 안 그런 척하면서 사실은 굉장히 악한 역할. 연극할 때 그런 역을 했었는데, 나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더라. 사실 연극할 때는 후배들을 막 쪼니까 다들 날 무서워했었는데, 이 바닥에서는 아직 힘이 없으니까 내가 착한 척을 하고 있다. (웃음)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한 계획을 세웠나.
=뭐, 술 마셔야지. (웃음) 여자친구한테 좀 미안하다. 남들처럼 이벤트도 해줘야 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그런 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 형식 차리는 걸 싫어한다. 나는 죽으면 장례식도 하지 말라 그럴 거다. 귀찮잖아. 사람들 피곤하고 다음날에도 일해야 하는데 늦은 시간에 오라 그러는 게. 그리고 오히려 장례식을 안 해야 사람들이 가슴속에 슬픔을 간직할 수 있다. 장례식장 가서 고스톱도 치고 술 한잔 마셔야 좀 보낸 것 같은데, 그냥 죽었다는 것만 딱 연락하면 주변 사람들이 속상해할 것 아닌가. (웃음) 한 이틀 뒤도 너무 먼 일처럼 느껴져서 계획을 세우거나 그런 걸 잘 안한다. 아, 내년 말쯤에는 연극을 한번 해보고 싶다. 그때쯤 연극 무대에 서면 기분이 굉장히 색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