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 -김영현
2007-12-21
더 나은지 알 수 없는데도 나를 위해

나는 ‘보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당연히 영화도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흔히들 드라마를 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것조차 일로 전락하여 슬프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영화 보는 일은 여전히 나의 가장 훌륭한 취미이자 안식처다. 난 영화를 볼 때 분석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영화가 얘기해주는 감정을 느낄 뿐. 그럼 영화가 친구가 되는 것 같아 좋다. 그런 내 친구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하나만 뽑으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이 영화가 나를 위로해줬고, 이 영화는 이때 나를 지탱해줬고, 이건 나를 웃게 해서 좋고, 저건 나를 울려서 좋고, 요건 나랑 지적인 대화를 좀 나눠주는 놈이고, 조놈은 내 앞에서 까불어대서 좋은데….

그럼에도 내가 <허공에의 질주>를 꼽은 이유는 내 인생의 전환기마다 이 영화가 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멀쩡히 대학 나온 년’이 2년간 백수로 지내다가 겨우 들어간 잡지사를 1년 만에 때려치운 그날, 마침 동네 상가에 캘리포니아비디오점이 들어섰다. 백수에게 딱 어울리는 가게군. 바로 다섯개의 비디오를 빌려나오는데, 주인아저씨는 개업떡과 함께 이 영화를 덤으로 빌려주었다. 사실 난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이제부터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내게 허공에서 질주하라니! 저주다 싶었다. 영화는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군사실험실을 폭파하다가 실수하여, 경비의 눈을 실명케 한 아더와 애니 부부가 두 아들 대니와 해리를 데리고 FBI에 15년간 쫓기며 사는 이야기로, 아들들이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처럼 도주하는 장면부터 시작됐다. ‘어라, 미국 운동권 영화네’, ‘운동권 영화가 그렇지 뭐. 뭘 가르치려고 들라나’. 다시 백수가 된 날의 불안정하고 초조한 마음을 이놈을 욕하며 풀어야겠다는 야무진 마음으로 봤다. 근데 이놈이 통 가르치질 않는 거다. 가르치지는 않고 자기들끼리 필사적으로 열심히! 되는 것도 없고 앞으로 될 것도 없는데 열심히! 도바리 운동권의 원칙이랍시고 6개월마다 사는 곳 바꾸고, 이름 바꾸고, 직업 바꿔가며 열심히! 이미 운동의 기운이 사그라진 미국에서 자기들끼리 보고도 하고, 비판도 하며 오로지 열심히 살기만 할 뿐이었다. 부모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니 그렇다쳐도 아무 동기도 없는 아들들까지 ‘우리는 조직이야’ 한마디에 반항도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게 날 열받게 했다. 영화는 갈수록 가르치는 것 하나없이 감동으로 휘몰아쳐가는데 나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몸속의 다른 욕망을 어찌할 줄 모르는 리버 피닉스의 눈을 보면서 점점 미칠 것 같았다. 물론 멋있어서도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참으로 오랜만에 목놓아 울었고, ‘Running on Empty’의 의미가 ‘허공에의 질주’가 아니라 ‘더이상 잃을 게 없는’이라는 것도 알았다. 더이상 잃을 게 없는…. 그 말은 갑자기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게 해주었고, 난데없이 난 방송작가가 되겠다 하는 마음을 먹게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준 마지막 대사처럼 난 자전거를 다시 탔고, 드디어 독립을 했다. 더 나은지 알 수 없으나 나를 위해 27살이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렇게 결정한 오락프로그램의 작가를 7년쯤 하던 어느 날이었다. 캘리포니아비디오점이 망했다. 아저씨는 이번엔 개업떡 대신 소주를 들고 계셨고, 그 사이 단골이 된 나에게 그 영화, <허공에의 질주>를 주셨다. 또 봤다. 근데 이번엔 대니가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더와 애니가 보였다. 처음 봤을 때의 아더는 아들을 억누르는 억압자처럼 느껴졌고, 놓아주었으니 됐다 생각했다. 근데 다시 보니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아더의 눈빛엔 그렇게 사는 삶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빼도 박도 못해서 그냥 사는, 돌아갈 곳이 없어서 그냥 사는, 결정적으로는 놓여나게 해줄 아버지도 없어서 그냥, 욕망을 누른 채, 그러나, 필사적으로 사는 ‘어른’만이 있었다. 그래서 아더는 어른스러웠고 믿음직했고, 위대해보였다. 그러나 불쌍했다. 그래서인지 그날부터 난 나의 또 다른 욕망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오락작가를 그만두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더 나은지 알 수 없으나 나를 위하고 싶어서말이다.

김영현/ 방송작가·<대장금> <서동요>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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