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김범] 범이를 오해하지 마세요
2007-12-27
글 : 강병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뜨거운 것이 좋아>의 김범

“너랑 껴안으면 꼭 숲길을 산책하는 기분이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165번째 에피소드가 전하는 진실은 충격적이다. 언뜻 동성애를 연상시키던 민호와 범이의 잦은 포옹이 범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진 음이온 때문이었다니. 그와 포옹하고 나면 지중해의 해변을 자전거로 내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덕분에 민호는 물론이고 준하도, 문희도, 동네할머니들도, 급기야 그의 음이온을 의심하던 순재까지 범이를 껴안고 잔다. 어쩌면 이 진실은 그가 수많은 누나들이 격하게 사랑하는 ‘우리 범이’가 돼버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순재 가족의 객식구로서 밥만 축낸다고 구박받던 하숙범은 어느 때부턴가 스스로 청량감을 높여갔고 결국 극중에서는 무성화된 캐릭터였던 범이는 마성의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PD나 작가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 에피소드는 김범에게 보내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평상시에도 저 말고 많은 배우분들을 세심하게 관찰해주셨던 것 같아요. 사실 하이킥 식구들은 촬영할 때나 안 할 때나 똑같거든요. (웃음)”

최근 원더걸스 안소희와의 키스신으로 ‘피치 못할 논란’을 일으킨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호재도 범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아이다. 호재는 호시탐탐 그와의 스킨십을 노리는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눈싸움만 해도 웃긴” 소년이다. 심지어 여자친구 혼자 있는 집에 가서도 먼저 게임기를 들이민다. 김범을 캐스팅한 권칠인 감독도 <거침없이 하이킥>의 범이에게서 “수도승 같은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범은 전혀 다른 면에서 호재와 자신의 공통점을 설명한다. “자기 입장도 분명하지 않고, 혼자 답답해하는 건 저한테 없는 모습이었어요. 다만 묵묵히 기다려주고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면은 조금 비슷한 것 같아요.” 유미에게 농락(?)당하는 범이, 강애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하는 호재, 또한 얼마 전 MKMF페스티벌 무대에서 4명의 아이돌 여자그룹 멤버와 연출한 “섹시해서 뻘쭘했던” 무대처럼 여자에게 먼저 공략당할 것 같은 이미지 또한 자신과는 다르다고 못박는다. 말하자면 먼저 대시하지 않으면 안 넘어올 남자가 아니라 그의 눈에 꽂혔다면 먼저 대시받을 거라는 것이다. “느낌이 좋고 마음에 들었다면 먼저 친해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꼭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심을 표현하는 거죠. 이성이 아니더라도 제가 친해지고 싶은 분들에게는 먼저 다가가는 편이에요. (웃음)”

캐릭터 덕분에 생긴 김범에 대한 오해, 혹은 누나들의 바람이 만들어낸 오해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다. 그는 의외로 강한 승부욕을 지녀서 오히려 “남들은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패배”를 느끼기도 하며, 집안의 어엿한 장남으로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 노력하는 한편, 여동생의 연애문제와 진로문제를 성실히 상담하고 챙기는 오빠다. 최근에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동생을 데리고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고. “그렇다고 자상한 오빠는 아니에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이고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인 거죠.” 축구선수였던 중학생 시절, 운동부원이면서도 전교 10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했던 것도 “색안경을 끼고 운동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친구들을 보호하고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서”였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경영에서도 확고한 신념과 전략을 가진 소년이다. 민호나 윤호와 달리 자신의 캐릭터 설명이 단 3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서운했던 그는 A4 3장에 걸쳐 범이의 디테일한 성격을 적어 PD와 작가에게 전했다. 헤드폰을 귀가 시려워서 쓴다거나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범이의 캐릭터는 그런 노력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자기 관리에 대한 엄격함, 언제나 주변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혹시나 그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본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그런 성격 때문에 피곤한 것도 있죠. 하지만 저를 믿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키는 건 더 견디기 힘들어요.”

“삼재에 열아홉살 아홉수까지 끼었던” 2007년은 김범에게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범이’라는 영원히 잊지 못할 캐릭터를 만나기도 했지만 3차례의 교통사고가 있었는가 하면,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지고 바람에 날린 조명이 그를 위협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게 다칠 뻔한 일들”이 많았단다.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웃음)” 삼재와 아홉수를 걷어버린 2008년은 어떨까. 작품계획을 물었더니,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싶다는 다소 재미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1, 2학년은 기초학문을 배우는 학년이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동기들과 함께 연극 공연에도 꼭 참여할 생각이에요.” 심지어 그는 대학 입학을 앞둔 신입생으로서 기대할 만한 연애에 대해서도 가볍지 않다. “지금은 제가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무리를 해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 친구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혹시나 자연인 김범은 누나들이 선망하는 귀여운 연인이라기보다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 아닐까.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던 이 건실한 소년은 이미 스스로 훌쩍 커버렸다. 다행히 제멋대로 크지는 않았으니 그저 흐뭇할 수밖에.

스타일리스트 202Style(정혜진, 지경미)·헤어 정애라(0809)·의상협찬 솔리드 옴므, 코데즈컴바인, 스웨어, MVIO, 드레스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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