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인생
2007-12-27
글 : 최하나
20세기 천재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노래만큼 격정적이었던 그 삶의 굴곡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이른바 ‘세기의 소프라노’로 불렸던 마리아 칼라스는 격정적인 목소리와 폭발적인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은 오페라의 여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여인이었다. 12월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칼라스 포에버>를 계기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마리아 칼라스의 곡절 많은 생애를 따라가 보자.

1. 미운 오리 같았던 유년 시절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2일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의 언니와는 달리 뚱뚱한 몸매에 근시가 심해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녀야 했고, 자연히 또래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는 처지였다.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칼라스는 1938년 부모의 이혼으로 그리스에 돌아온 뒤 외삼촌의 소개로 아테네 국립음악원의 성악가 마리아 트리벨리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가능성을 직감한 트리벨리는 당시 14살이었던 칼라스의 나이를 16살로 속여가며 아테네 국립고등음악원에 등록시킨다.

2. 극적인 데뷔에서 30kg 감량까지

17살의 나이에 아테나 오페라단의 평생 단원이 된 칼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그리스가 혼란스러워지자 1945년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향한다. 당시 그녀는 몸무게 95kg의 거구였다. 가냘픈 여주인공의 이미지에 적합하지 않아서였을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신 그녀는 다시 이탈리아로 무대를 옮긴다. 화물선을 타고 나폴리로 건너간 칼라스는 1947년 마침내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음악제의 <라 조콘다>에 출연 기회를 얻으며 데뷔한다. 그리고 겹치듯 다가온 행운으로, 28살 연상의 부유한 사업가 지오반니 파티스타 메네기니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열성적 후원자가 되어준 메네기니의 도움으로 칼라스는 무명 가수에서 벗어나 <트리스탄과 이졸데> <투란도트> <아이다> 등의 주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단기간에 체중을 30kg나 감량하는 데 성공하며 외모에서도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풍부한 성량과 격정적인 음색,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칼라스는 이른바 ‘세기의 소프라노’로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3. 오나시스와의 운명적 만남

순항을 지속하던 마리아 칼라스의 인생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1959년 7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칼라스 부부를 요트 항해에 초대한 것이 발단이었다. 사랑에 빠진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항해가 끝나갈 즈음에 이미 연인이 되어 있었으며, 자연히 칼라스와 메네기니와의 결혼은 파국을 맞이한다. 오나시스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들면서 그녀는 사실상 무대에 서는 것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화려한 상류생활을 즐기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등한시하면서 ‘목소리가 한물갔다’는 평이 세간에 나돌던 중, 칼라스는 1965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의 로열 갈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잠정적인 은퇴를 선언한다.

4. 이별, 은둔, 그리고 외로운 죽음

59년 선박왕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서서히 위태로워졌다.

노래를 떠나보낼 만큼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열망하던 칼라스는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1968년 오나시스가 그녀를 버리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한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던 칼라스는 옛 동료였던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설득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를 경유하는 마지막 세계 투어를 시작한다. 1974년 한국을 찾아 이화여대 강당에서 <카르멘> <라보엠> <토스카> 등을 선보였으며, 같은 해 11월 일본 삿포로에서 생애 마지막 공연을 갖는다. 여전히 오나시스와의 결합을 꿈꾸던 칼라스는 1975년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오나시스는 재클린 케네디와의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이었으며, 사망 당시 칼라스가 선물한 붉은색 캐시미어 담요를 손에 쥐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떠나보낸 칼라스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파리의 아파트에 홀로 칩거한다. 그리고 1977년 9월16일, 간호원과 집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한다.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다”는 <토스카>의 아리아로 요약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화장되어 고향 그리스 에게해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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