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2월 28일(금) 오후 2시
장소 용산CGV
이 영화
여자핸드볼 대한민국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미숙(문소리)은 소속팀이 해체되자, 인생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접고 대형 마트에서 일하게 된다. 역시 전 핸드볼 선수였던 남편(박원상)은 빚 독촉에 시달리며 집을 나가 있는 상태라 아들까지 도맡아 키우고 있다. 한편, 일본 실업팀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혜경(김정은)이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으로 귀국한다. 팀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골키퍼 수희(조은지) 외에 그녀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인 미숙을 비롯 정란(김지영) 등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노장 선수들을 하나 둘 불러 모은다. 하지만 혜경의 강도 높은 훈련이 선수들 간의 불화를 야기하게 되고, 이에 협회위원장은 혜경을 감독대행에서 경질시키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이자 한때 혜경의 연인이기도 했던 안승필(엄태웅)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자존심 회복을 벼르는 혜경은 선수로 계속 남는다. 하지만 승필 역시 과학적인 프로그램과 유럽식 훈련 방식을 무리하게 도입해 갈등을 빚는다. 대표팀은 남자고등학생 선수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졸전을 펼치게 된다. 급기야 미숙은 선수촌을 무단이탈하게 되는데, 이런 위기 속에서도 혜경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의 노력으로 미숙은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고, 승필과 신진 선수들도 그녀들의 핸드볼에 대한 근성과 투지를 인정하게 된다. 마침내 최고의 팀웍으로 뭉친 그들은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한다.
말말말
“지금 한국영화가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스포츠 영화, 그것도 여성 스포츠 영화를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영화를 찍으며 순간순간 열 번 중 한번쯤 가진 나약한 마음들을 반성하게 되고 그 나약함을 극복한 것 같아 좋다.” -문소리
“실제로 진통제를 맞으며 뛰었는데 그런 모습이 영화 속에 보여 아쉽긴 하다. 그래도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원 없이 먹었다. 어느 여배우도 자기 전에 먹고 싶다고 이렇게 먹지 못했을 거다.” -김정은
“실제 주인공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우리 대표팀이 금메달을 땄으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새삼 그때 은메달을 따는데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존경심이 든다. 그 분들의 투혼에 누가 되지 않게 배우들이 잘 해 준 것 같다.” -임순례 감독
100자평
임순례는 그 이름만으로도 신뢰와 선입견을 동시에 주는 감독이다.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신뢰는 여전하되 선입견은 없애준다. 수안보의 퇴락한 클럽을 무대로 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비인기 종목 선수’라는 마이너리티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시선은 물론, 셋만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는 여자들의 수다를 즐거이 녹여냈다. ‘실패의 기록’을 다시 재현하면서도 보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유연해졌다고나 할까.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조은지 역시 핸드볼 훈련이라는 육체적 협동 이상으로 멋진 팀웍을 이뤘다.
주성철 <씨네21> 기자험난한 소재에 덤벼든 임순례 감독의 포석은 꽤나 온화해 보인다. 전작에 비해 화법은 한결 대중적이고, 간간히 일상 속 유머를 선사하는 영화 속 인물 중 그 누구도 악인은 없다. 예상했던 순간에 찾아온 클라이맥스에서는 예상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실제 선수들과 감독의 경기 직후 인터뷰 장면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까지, 예상 가능했던 선택이다. 그러나 영화 안팎의 착한 사람들이 만든 착한 이야기는 조금 의외의 방식으로 사랑스럽다. 나이 때문에, 성별 때문에,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 때문에 설움 받는 극중 인물들의 소위 ‘한국식 아줌마’의 면모를 관객에게 사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영화의 곳곳에서 빛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여자감독이 여자배우들과 비인기스포츠영화를 만드는 영화 밖 상황이 오버랩 되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신파 같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극장 밖을 나서자마자 휘발되어버리는 감정에 그치지 않기 위한 안간힘. 신파와 눈물을 너무 쉽게 다루는 요즘의 한국영화들이 우선적으로 본받아야 할 미덕이다.
오정연 <씨네21> 기자<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오랫만에 보는 '감동적'인 영화이다. 이는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영화가 결과적으로 '감동'을 준다는 것, 둘째, 감동을 추구하는 영화라는 자의식을 지녔다는 것이다. 즉 영화는 정직하게 감동을 향해 나아가며, 그것을 머쓱해하지 않는다. '감동'이라고 하면 흔히 냉엄한 진실을 은폐하는 판타지가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고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힘든 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팍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각자의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준다. 영화는 참 씩씩하고 건강하다. 스포츠 영화로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성취를 보여주고, 여성 영화로서도 빛을 발한다. '여성적 특수성'을 기괴한 방식으로 들이밀며 이해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의미의 여성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도망다니다 혼자 절망하는 남편보다 강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인 남자 감독보다 성숙하다. 남자들은 '소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아줌마성'으로 도약한다. 끈질기고 뻔뻔하게 ! 그리고 악착같이 매 순간 삶의 싸움을 벌이는 아줌마들과 함께 이 영화의 감동을 나누고 싶다.
황진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