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재훈은 지난해 최고의 해를 보냈다. 변함없는 입담으로 무장한 TV프로그램 <상상플러스>나 <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이 큰 인기를 끌었고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에서는 생애 첫 ‘주연’이라는 이름으로 열연했다. 이제는 농담 섞인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컨츄리 꼬꼬’라는 이름으로 해체 5년 만에 연말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 마침표는 KBS 연예대상이었다. 강호동과 유재석이라는 거물들을 제치고 얻어낸 결과였다. 혹자는 그들에 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적고 파워도 덜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들과 달리 그가 꾸준히 영화배우 활동을 겸했고 심지어 연예인 축구단 가수팀의 주전 공격수로 ‘피스 스타컵’의 득점왕 및 MVP를 차지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적어도 그들보다 더 바빴으면 바빴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대상받은 방송인’이라는 칭호에 비하면 아직 그는 영화배우로서는 자신의 굳건한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여느 방송인이나 가수 혹은 코미디언처럼 단순한 ‘감초’가 아닌 진짜 영화배우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코믹한 조연으로 그의 존재감을 알렸던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이제 과거시제로만 남겨두고 싶단다. 휴먼드라마 <어린왕자>는 바로 그가 영화배우로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고 싶은 영화다. 그가 연기하는 폴리아티스트 ‘종철’은 가족을 잃은 뒤 뒤늦게 또 다른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사랑을 베푸는 남자다.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코믹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척 궁금하고 설렌다는 그를 만났다.
-여전히 당신은 브라운관의 코믹한 모습으로 기억되는데, <어린왕자>에서는 웃음도 전혀 없고 꽤나 진지한 역할이다. 지금까지 TV 안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지 않나.
=그전까지는 카메오처럼 등장하다가 본격적으로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2005)에서 사투리를 쓰는 조연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은데, <맨발의 기봉이>(2006)를 거치면서 그 모습이 쭉 이어졌다. 사실은 내가 정극 연기에 대한 욕심이 좀 있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역시 완전한 코미디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화가 흥행이 안 되다보니 믿고 맡겨준 제작사 대표님께 죄송해서 다른 영화하면 아무 역할이라도 노개런티로 출연하고 싶기도 하다. <어린왕자>는 개인적으로 터닝포인트가 됐으면 하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된 코믹 요소가 전혀 없는 착한 휴먼드라마다.
-이전까지는 현장에서 코믹한 애드리브를 잘 쳤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린왕자>는 그럴 여지가 없는 영화라 답답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나.
=내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고, 또 내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어떤 대사를 보고 그게 내 애드리브인지 아닌지 대강 짐작할 거다. 그렇게 직접 현장에서 만들어낸 코믹한 애드리브가 많았다. 나에게서 그런 걸 또 많이 요구하기도 했고. 그런데 <어린왕자>는 워낙 장르 자체가 다르다보니 그렇게 의도한 코미디는 전혀 없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애드리브를 할 수 없었다. 작품에서 나를 어떻게 잘 묻어가게 할지를 고민했다. 불편하거나 힘들거나 한 건 없었고, 반대로 과거와 같은 그런 부담이 없어서 더 편했다. 사람이란 게 참 변하지 않는데, 그렇게 변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미지 변신이란 측면에서 당신에게 <어린왕자>는 ‘이경규의 <복수혈전>’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그 변신이 두렵지는 않았나.
=진짜 말하자면 그런 거다. 그래도 내 큰 욕심과 비교하자면 분명 필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혈전>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이긴 한데(웃음), 사실 내 데뷔작은 <혼자 뜨는 달>(1994)이라는 영화였다. 내 연예계 활동의 첫 시작은 음악이 아니라 영화였다. 지금은 이렇게 내 인생이 풀렸지만 그만큼 난 영화가 좋았고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돈 벌려고 혹은 재미삼아 영화하는 거 아냐’라고 바라볼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 내 욕심이 정극 연기이고, 더 많고 괜찮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싶다고 할 때 욕심나는 역할이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시대가 좋아진 것 같다. 변화를 더 크고 너른 시선으로 봐주는 것 같다. 그런데 진짜 궁금하다. 나의 그런 진지한 모습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당신은 어땠나? 이럴 때 솔직하게 얘기해줘야 한다. 난 애써 칭찬해주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웃음) 정말 반응이 궁금하다. 내가 진지하게 나오면 그게 웃긴지 아닌지.
-웃기다는 생각은 안 했다.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의사에게 화를 내면서 아이를 살려내라고 할 때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갑자기 확 돌변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사실 나도 그 장면을 더빙하면서 좀 이상했다. 종철이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어 딱딱했다. 그전까지는 아이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가 갑자기 그 호감을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아 좀 걸렸다. 나는 방송 진행할 때도 슬렁슬렁 얘기하듯이 끼어드는 개그를 좋아하고 정극 연기도 그런 게 좋은데 이 장면은 좀 그러지 못했다. 빼달라고 지금 전화해야겠다. (웃음)
-지금까지 쭉 유부남을 연기하긴 했지만 <어린왕자>에서는 처음으로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다. 그런 점이 당신의 현실과 연결돼서 다르게 느낀 지점들이 있었나.
=물론. 나 역시 두명의 자식이 있고 최종현 감독과도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몰입하기 위해 애썼다. 친자식은 아니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종철을 존재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니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영화가 너무 착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너무 착하면 지루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어린왕자>가 큰 흥행 카드나 상업적 요소를 지닌 영화는 아니다. 개인적인 욕심이야 한도 끝도 없지만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만∼400만명 대박나는 영화가 아니라 해도 이런 감성의 영화도 한국 영화계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탁재훈도 저런 연기가 가능하구나, 정극 연기도 무난하구나, 하는 식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컸다.
-홍보에 관한 한 ‘총대’를 짊어져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배우가 약하다보니 먼저 불러주는 곳은 거의 없을 거다. 영화 자체가 순수하고 착한데 오락프로그램에 나가 홍보하기도 애매하고. 그래도 나 아니면 홍보하기 힘든 영화라 직접 하고 있다. 오늘도 <두뇌왕 아인슈타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갈 텐데, <어린왕자>가 동화적인 성격도 있고 아이가 주인공이기도 하니까, 그 프로그램은 괜찮다 싶었다. 그래서 짧게라도 홍보하게 안 해주면 안 나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나오라고 하더라. 내가 그런 방송 ‘쇼부’는 잘 친다. (웃음)
-아무튼 그렇게 지금의 당신은 ‘방송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음악, 영화, 방송 버라이어티 모두를 엄격하게 나누고 싶지는 않다.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방송인으로 풀리게 된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영역이라 아무래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옛날 <혼자 뜨는 달>을 할 때는 실패도 성공도 몰랐다. 나이도 어렸고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영화 찍고 1994년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데뷔앨범을 내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별 반응없이 시간이 참 잘 가더라.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서른살이 되기 전에는 내 위치를 확실히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후 3년간의 공백기가 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남들은 서른살이 되는 것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그렇게 서른살이 지나갔다. 영화는 더 출연하지 못했고 가수로서도 오래 문을 두드렸는데 전혀 좋은 결과가 없어서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자고 생각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소속사에서 신정환과 함께 ‘컨츄리 꼬꼬’라는 이름으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때가 1997년 12월 말이었는데 난 정말 1997년으로 연예계 활동을 접고 싶었기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게 됐는데 1998년에도 거의 방송 출연 없이 시간만 지나갔다. 방송도 인맥이 중요하고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속사에서도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까 접자고 했다. 당시 서태지, DJ DOC, 박미경이 잘나갈 때였고 R.ef나 솔리드 같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이 먹은 내가 초라하기도 했다.
-그럼 어떻게 방송을 통해 뜨게 된 건가.
=그러다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된 게 <좋은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땐 정환이도 거의 포기한 상태로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학교에 가려고 했을 때였다. 그래서 정환이에게 “야 오늘 우리 마지막 방송인데, 방송사고로 방송정지를 먹나 그냥 인기가 없어서 못하게 되나 한가지인데, 그냥 막 한번 해보자”고 얘기했다. (웃음) 그래서 카메라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술 마실 때 노는 것처럼 방송을 했는데 그게 뻥뻥 터지더라. 그땐 인터넷도 없어서 잘 몰랐는데 제작진이 다음주에 한번 더 나오라고 하더라. 그러고 나갔는데 반응이 좋아서 아예 고정출연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가수 생활 접으려고 하다가 버라이어티쪽으로 풀리게 된 거다.
-그래서 컨츄리 꼬꼬 2집도 내고 한창 잘나갈 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2002)에 출연했다.
=한번 탄력을 받으니까 무섭더라. 방송을 계속 하고 2집을 냈는데 <애련> <일심> <김미김미> 다 잘됐다. 우린 이미지상 앨범이 나가는 가수가 아닌데도 45만장이 나갔다. 그러면서 거의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방송, 지방 행사, 밤무대 다 뛰었다. 자고 있으면 매니저가 업고 차에 태워서 어딘가에 데려다놓고, 또 하루 일 다 끝내고 차에서 자고 있으면 들어서 집에다 내려다놓고(웃음). 정말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는 ‘이거 나 지금 되는 거야? 뜬 거야? 그런 거야?’ 하고 생각 좀 하려고 하면 매니저가 업어서 또 어디 데려다놓고 그랬다. 얼마 전에 정환이랑 그런 옛날얘기하면서 ‘우리 그때 얼마쯤 벌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어림잡아 5년 동안 소속사에 150억원은 벌어다준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그냥 바지 벗어 내팽개치고 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그 바지 입고 나가는 생활을 그렇게 몇년 동안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영화나 다른 쪽에서도 제의가 하나둘씩 들어왔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도 그런 경우였다. 아주 작은 카메오 역할이었지만 나로서는 <혼자 뜨는 달> 이후 두 번째 영화라 다시 영화계 일을 한다는 기쁨을 줬었다.
-이후 주로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를 찍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아무래도 카메오가 아닌 조연급으로 나에게 역할을 준 곳이 태원이었고, 그러면서 제일 먼저 친해진 영화계 인사 또한 정태원 대표님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태원에서 불러만 주면 갔다. <맨발의 기봉이>도 현준이가 이거 하고, 내가 이거 하면 되겠다, 라고 얘기했던 게 바로 캐스팅으로 이어졌던 케이스고.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배우 탁재훈’이라는 말이 어색한 건 마찬가지다.
-피스 스타컵 연예인 축구대회에서 가수팀 선수로 나와 영화배우팀과 경기할 때 혼자 4골을 넣어서 이겼다. 그런 것도 관련이 있나.
=하하. 난 한때 모델로도 활동한 적이 있으니까 가수팀, 영화배우팀, 모델팀 다 가능하다. 그래도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은 이미 시작한 거고 원했던 거니까 최고는 아니더라도 뭔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린왕자>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탁재훈 괜찮네’라고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자랑 같지만 사실 전체 관람가 영화를 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 되지 않는다. (웃음) 스타일로는 진짜 생활하는 것 같은 자연스런 모습으로 연기하는 게 참 좋다. 예를 들어 지난해 영화들 중에서는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가 가장 좋았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출연했던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그때도 딱히 코믹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하면서 시나리오작가 겸 배우이기도 한 김해곤 감독과 친해져서 출연하게 됐다. 그때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아닌 작품에서도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배우고 싶었던 거지. 단지 코믹한 역할이 아닌 쪽으로도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고. 마침 김해곤 감독도 자기가 이런 영화를 하는 데 내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김승우의 친구들로 나온 배우들의 호흡도 좋았고 나 역시 새로운 역할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TV프로그램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 있나.
=애착이라고 해봐야 <상상플러스>랑 <불후의 명곡> 2개라서 뭐. (웃음) <상상플러스>는 워낙 오랫동안 해서 인이 박인 거고 <불후의 명곡>은 생각하면 좀 슬프다. 왜냐하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이게 곧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좀 그런 것 아닌가. 지금도 인기야 있지만 앞으로 ‘불후의 명곡’이라는 이름으로 초청할 수 있는 인기가수들의 리스트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더불어 오락적인 성격이 강해 우리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도 그 컨셉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아마 퀄리티있는 토크쇼를 원했을 거다. 그리고 그분들 노래 중에 이제는 도저히 음반으로 구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음악인으로서 슬프다. 가끔 하나TV로 <7080콘서트>를 보는데 우리 프로그램에 나왔던 김범용 선배님 같은 분들이 나와서 노래 부르면 참 좋다. 그래서 ‘불후의 명인’이라는 타이틀로 바꿔서 가수 외에 운동선수나 영화배우, 정치인도 만나보면 계속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새해에는 프로그램이 줄고 영화 편수가 줄더라도 ‘양보다는 질’로 확실하고 새롭게 나를 더 각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잘해야지, 더이상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해선 안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