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 웃고 흐느끼고 분노하는 그 몸!
2008-01-25
글 : 김애란 (소설가)
핸드볼 선수들의 육체에서 무수한 감정을 자아내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한 부분을 옮겨본다.
‘가슴으로’ 이 말은 내가 함부로 쓰는 표현이 아니다. (……) 매일의 작은 모욕감은 주로 간(肝)으로 받아들인다. (……) 췌장은 사라진 것에 대한 충격을 받아들이려고 남겨둔 부분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느끼는 실망은 왼쪽 신장이다. 개인적 실패는 창자의 몫이다. (……) 누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고 믿는 실수를 저지르던 그 모든 시절, 그 모든 시간은 치핵이 맡는다. 외로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일 만한 내장은 없다.’ 더 잦은 말줄임표를 쓰지 못한 건, 본문에 더 많은 기관들이 나열돼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장기를 서술한 이유는 단순하다. 한 인간이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감정들이 좀더 숱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으로도, 의지로도 견뎌낼 수 있지만, 우선 그 많은 모욕과 충격, 실망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일은 몸이 한다. 여러 개의 장기를 가진 육체가 한다. 그 몸은 먹고, 번식하고, 일하고, 늙는다. 화자는 ‘가슴으로’란 말을 아낀다고 말한다. ‘가슴’이 떠맡는 감정이 특별히 고귀한 것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심장이 좋지 않은 노인인 까닭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 말을 한다. 마치 ‘가슴으로’란 표현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는 인생은 없다는 듯이…. 물리적인 통각과 정서적인 통점이 맞물릴 때, 그 구분이 무의미할 때, 이상하게 그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로 한 사람의 손이 말보다 많은 얘기를 전하는 것처럼. 어떤 몸들은 단지 그것이 우리 앞에 ‘보여진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마 운동선수의 몸도 그러할 것이다.

핸드볼 결승전을 보며 떠오른 단어는 ‘온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온몸’을 선정적으로 발음하지 않으려 주의한다. 영화에서도, 실제 올림픽 경기에서도 그랬다. 공을 쥐고 뛰어올라, 손에 힘을 실으려 상체를 한껏 젖히는 순간, 선수들이 사물이 아닌 존재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들의 얼굴, 각 기관이 올려보내는 감정들이 퇴적된 표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들의 팔뚝과 허벅지, 젖가슴, 어깨, 그리고 제한된 신체구조가 그려내는 확장된 실루엣을 바라봤다. 허공에 뜬, 집중하고 있는 몸. 전시되는 몸. 운동으로 잘 다져진 몸인데도, 그 육체는 묘한 연민을 자아냈다.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백넘버를 달고 살아온 이가 가진 췌장의 역사, 창자의 운동, 치핵의 수치가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그 근육의 당위가 쓸쓸했던 탓일 거다. 그러나 그 육체는 (한 유대인의 표현을 변형해보자면) 질문의 답을 구하고자는 몸뚱이가 아니라,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걸 인식하는 몸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국가나 민족을 위한 ‘절정’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발단’과 ‘전개’에 애정을 담는다.

영화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핸드볼 결승전을 복원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끼는 장면을 재현한다는 것만으로 영화는 좋은 패를 쥐고 출발하는 셈이다. 다행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순간’을 기념우표로 만들지 않는다. 수집하고 안도한 뒤 앨범을 덮지 않는다. 영화는 우표가 되기보다는 일종의 나무, 초록과 그늘에 집중하는 기념식수가 되려 한다. 정란과 혜경, 현자와 보람 같은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로. 시종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듯하지만, 조용히 자라고 있는 침엽수로 말이다. 열광이 사라진 자리서 혜경은 여전히 마트에 나가고, 정란은 갈비탕을 나를 테지만. 성취로 마감되는 게 아닌, 여전히 계속되는 인생을 보여주며 그 삶과 개인을 아끼려 한다. 실화가 아니더라도, 임순례 감독은 이들을 실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연장전. 골키퍼와 일대일로 선 선수들의 고독을 떠올려본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을 그려본다. 외로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일 만한 내장은 없다고 했던가. 관객의 탄식은 아마 누구나 겪어봤을, 고요한 코트 위에서 한번쯤 혼자였던 사람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나를 보는 시선, 내가 대면한 질문, 열심히 했지만 잘 안 될 것 같은 예감. 빗나간 공은 번번이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골문 앞에 우리는 늘 홀로 서야 하지만, 인간은 바로 그 고독 속에서 성장하고 자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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