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비욕] “지금의 할리우드 문화는 정말 걱정스러워요”
2008-01-29
글 :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2월16일 처음 내한공연 갖는 비욕 전격 전화 인터뷰

이 인터뷰는 2월16일에 열릴 브욕(Bjork, ‘뷰욕’이라고도 하고 ‘비요크’라고도 한다)의 내한공연에 맞춰 이뤄진 것이다. 그녀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하자면 이런 머리글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 몇 가지 사실만 언급하자. 그녀는 싱어송라이터이고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며, 또한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배우다. 줄여 말하면 ‘예술가’다. 그녀는 1965년생으로 지금까지 총 6장의 스튜디오 정규작과 한장의 영화음악 사운드트랙, 한장의 비디오아트 사운드트랙을 발매했다. 이 음반들은 모두 비평적으로 높은 평가를 얻었고, 몇몇은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거뒀다. 그녀는 숭배자들 사이에서는 ‘여신’이고, 패션잡지 에디터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패션으로 회자되는 바로 그 ‘백조 드레스’의 주인공이다.

비욕은 미디어와 그리 친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 전화 인터뷰를 위한 질문들을 보내긴 했지만 이렇게 옹골찬 답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 못했다(전화 인터뷰는 공연기획사에서 진행했다). 인터뷰 진행자의 말에 따르면 ‘유쾌하게’ 대답했다고까지 하니, 내가 나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착한 일이라도 했던 건지 궁금해하며 여기 그 내용을 싣는다.

-최근작 얘기부터 하지요. <<Volta>>(2007)에서 의외였던 것은 팀벌랜드와의 작업이었습니다. 언뜻 봐서는 엮기 힘든 조합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결과는 만족스러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요. 그가 제 노래 <Joga>를 샘플로 사용한 적도 있고요. 우리는 그가 11년 전에 열었던 파티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말하길 제 노래의 베이스라인이 마음에 든다더군요. (웃음) 저는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 좀더 현대적인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와 작업한 건데, 사실 저는 팀벌랜드보다 더 실험적이고 싶었거든요. 그에게 아프리카에 가서 그쪽 뮤지션과 작업을 하자고 했지만 그는 다른 작업 일정이 잡혀 있었죠.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음반이었는데 그게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 뭐예요. (웃음) 어쨌든 그와 함께 여러 사람들이 뉴욕에서 작업했던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정말로 다른 작업방식이었거든요. 제가 한번도 취해보지 않은 작업방식이었죠. 하지만 그게 공동작업의 장점이죠. 혼자서 작업할 때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 알지만 공동작업을 할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공동작업의 불확실성이 좋아요. 때로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만드는 것도 좋죠.

-(<<Volta>>의 수록곡인) <The Dull Flame Of Desire>에서 앤토니 앤드 더 존슨스의 리더 앤토니와의 듀엣도 신선했습니다. 그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요?(앤토니 앤드 더 존슨스는 뉴욕 출신의 인디 록밴드로, 2005년에 발표한 <<I Am A Bird Now>>가 머큐리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얻었다.-편집자)
=앤토니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고, 이 곡을 위해 같이 자메이카에 가서 1주일 동안 머물렀어요. 그곳의 분위기를 잡아내고 싶었거든요. 거기에서 바다의 수많은 모습들과 여러 가지 과일들의 맛을 체험했답니다. 그때는 음반작업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그와 함께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었지요. 어떤 방향으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요. 앤토니는 매우 따뜻하고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작업도 즐거웠어요.

-한국에서의 첫 번째 공연입니다. 그동안 한국을 찾지 않았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제가 가고 싶은 나라를 지정해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찾아주는 곳을 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번에 한국이 저를 찾아준 것이죠!

-당신의 음악을 듣다보면 꼼꼼하게 제어된 사운드와 제어되지 않는 보컬 사이의 전투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인공미와 자연미의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요.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제 느낌이 가는 대로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에 끊임없이 도전함에도 당신의 음악은 늘 ‘비욕의 음악’ 같습니다. 그렇게 들리는 데 아이슬란드라는 지역의 ‘색’(color)도 한 요인이 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떻게 보면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제 음악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특별히 제 조국이 제 음악에 직접적으로 어떤 색깔을 가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이슬란드에는 당신을 비롯하여 당신이 활동했던 슈가큐브스나 에밀리아 토리니, 최근에는 시규어 로스까지 독특한 뮤지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뮤지션들의 음악이 주는 감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곳 출신인 당신에게 아이슬란드 음악의 매력이 무엇인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저에게요? 그 질문은 제가 대답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웃음) 왜냐하면 전 그런 측면을 자주 느끼지 않거든요. 하지만 아이슬란드에는 신선함이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곳의 풍경은 매우 삭막하고 솔직해요. 상당히 ‘구식’(old-fashioned)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복잡한 느낌은 없어요. 그래서 아이슬란드에는 아이러니가 별로 없죠. (웃음)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이상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Medulla>>의 음악적 시도가 당신의 사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는 2003년 비디오 아티스트 매튜 바니와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했다. <<Medulla>>는 그 이듬해에 나온 음반으로, 여기서 그녀는 음반 전체를 아카펠라로 녹음했다.-편집자)
=저는 금방 싫증을 느끼는 성격이에요. <<Medulla>>를 보컬 위주로 만든 것도 그전 음반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저는 페미니스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제 사적인 인생 경험이 저의 음악을 더욱 여성적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요.

-<Venus As A Boy> 같은 당신의 대표곡에서는 인도 발리우드 영화음악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또 <Drawing Restraint9>에서는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당신에게 동양은 무엇인가요. (<Drawing Restraint9>는 매튜 바니가 제작한 동명의 비디오아트의 사운드트랙이다. 여기서 그녀는 게이샤 옷을 입고 출연한다.-편집자)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스스로를 중국 여자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아이슬란드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금발이었고,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이 저를 동양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뭔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죠. 그래서 10대에 접어들었을 때 저는 일본 책들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동아시아의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모르게 동양 문화와 연결된 느낌을 받아요. 인도 발리우드의 영화음악도 잘 알고요. 그 음악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죠. 할리우드 문화에 비해서도 월등해요. 지금의 할리우드 문화는 정말 걱정스럽거든요. 제가 1992~93년에 런던에 있을 때 거둔 최고의 수확도 인도 음악을 접했다는 거예요. 런던에는 거대한 인도 커뮤니티가 있거든요. 제 자신도 이주자였기 때문에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제 밴드에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이주자들이었어요. 터키 드러머가 한명 있었고, 인도 출신 퍼커션 주자도 있었고, 이란에서 온 키보디스트도 있었어요. 그게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요. (여기서부터 약간 대답이 어긋난다.-편집자) 세계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같은 1세계 국가들이 있고, 아프리카에 있는 가장 가난한 3세계 국가들도 있죠. 그리고 2세계 국가들도 있어요. 아이슬란드가 거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죠.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이니까요. 우리는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사용하죠. 저는 제가 2세계 국가들의 일종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웃음) 그래서 저는 파리나 로스앤젤레스와 같이 중심에 서 있는 도시의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죠.

-스파이크 존즈, 미셸 공드리, 크리스 커닝엄 등 늘 최고의 감독들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해왔습니다. 감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또 본인의 뮤직비디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면 무엇입니까.
=저는 그들을 다 좋아해요. 그 뮤직비디오들과 감독들은 각자 매우 다르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죠.

-이번 투어에서 리액터블(Reactable)이라는 장비를 공연에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리액터블은 테이블 위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사운드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전자악기다.-편집자)
=저는 음악과 영상이 항상 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리액터블과 같은 흥미로운 기기를 선보이게 된 것이고요. 그동안 관객이 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던 거죠.

<어둠 속의 댄서>
<어둠 속의 댄서>

-영화잡지 인터뷰니 영화 관련 질문도 하나 하겠습니다. <어둠 속의 댄서> 이후 다시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하지만 ‘진짜’ 뮤지컬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저는 어떤 일을 미리 계획하고 진행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어둠 속의 댄서> 같은 뮤지컬영화 프로젝트도 제 인생의 적당한 시점에 진행되었던 일들이고, 앞으로 특별히 어떤 걸 해야겠다는 계획은 아직 없어요.

-한국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팬들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빨리 2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팬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사진제공 옐로우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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