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8명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미 대통령 암살
2008-02-19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라쇼몽> 스타일의 액션스릴러 <밴티지 포인트> LA 시사기

스페인의 살라망카. 곳곳에 설치된 수십대의 카메라들이 이곳에서 열리는 반테러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미 대통령을 잡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고, 대통령 경호팀들은 광장이라는 노출된 공간에서 테러의 위험을 차단하느라 분주하다. 이날은 대통령을 향한 총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적이 있는 반즈(데니스 퀘이드)가 그 이후 처음으로 다시 현장에 투입된 날이기도 하다.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 노력하는 반즈의 경호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서는 대통령. 전세계의 이목과 광장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 선 대통령은 두발의 총성과 함께 고꾸라지고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미 대통령 암살의 전후 순간을 각각 8명의 시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라는 점에서 <밴티지 포인트>는 기본적으로 <라쇼몽>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다만 2008년 시점에서 각각의 분화된 시점들은 오늘날의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이다. 영화가 시점을 전달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는 감독 피트 트래비스는 화면의 숏 하나하나, 조명 스타일, 카메라 렌즈, 카메라워크 스타일, 필름의 종류에 시점마다 차별을 둠으로써 하나의 정교한 퍼즐로서 <밴티지 포인트>라는 액션스릴러를 완성해내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른 정보들을 시점에 따라 적절히 분배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결말을 향해 숨쉴 새 없이 달려가는 액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자신의 첫 장편이기도 했던 <Omagh>를 통해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구성했던 피트 트래비스의 장기는 특히 후반부 액션에서 분명해진다.

배경은 스페인이지만, 아수라장 속의 거리 추격 장면이나 광장 폭파 장면들 때문에 실제 촬영은 멕시코시티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광장장면을 위해서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물랑루즈>의 프로덕션디자이너로 활약한 브리지트 브로치와 그녀의 팀은 멕시코시티 외곽에 버려진 쇼핑몰센터를 개조한 실제 크기의 세트를 만들기까지 해야 했다.

<밴티지 포인트>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데니스 퀘이드에서부터 <로스트>로 세계적인 스타 대열에 합류한 매튜 폭스, 윌리엄 허트, 아카데미 수상자인 포레스터 휘태커, 시고니 위버,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본 얼티메이텀>에서 맷 데이먼의 상대역으로 나온 에드가 라미레즈, 스페인 배우 에두아도 노리에가 등의 화려한 캐스팅이 인상적이다.

2월7일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밴티지 포인트> 라운드 테이블에는 감독인 피트 트래비스를 시작으로, 데니스 퀘이드, 매튜 팍스, 포레스트 휘태커, 에드가 라미레즈가 함께했다. 데니스 퀘이드에 대한 인상은 다소 예민해 보이는 이웃집 아저씨였고, 아카데미 수상자인 포레스트 휘태커는 참 겸손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본 얼티메이텀>에서 암살자로 얼굴을 알린 베네수엘라 출신 에드가 라미레즈는, 한때 외교관을 꿈꾸었으며 실제로 5개 국어가 능통하다고 한다.


감독 피트 트래비스 인터뷰

“미국인이 보는 시각, 유럽인이 보는 시각을 함께 다루고 싶었다”

-왜 스페인인가.
=처음부터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이 주는 특유의 관능적인 강렬함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국적 공간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원래 시나리오의 의도였으니까. 미국인이 보는 시각, 유럽인이 보는 시각을 함께 다루고 싶었다. 그 배경으로 스페인이 가장 잘 어울렸고.

-멕시코시티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다. 어땠나.
=나와 촬영감독, 조감독, A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제외하면 다 멕시코 스탭이었다.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한 실력들이다. 지난 10여년간 <타이타닉>에서부터 <아포칼립토> 등의 대규모 영화 제작이 멕시코에서 이루어지면서 노하우가 많이 쌓인 듯하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각각의 시선을 전달해서 나름의 진실에 도달하게 되지만 삶에서 개인은 결국 하나의 시선만으로 현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화 밖에서는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나는 타인이 될 수 없다. 나의 시점에서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혼자만으로는 미스터리를 풀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조각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사실 영화에서 마지막에 반즈가 대통령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은 따지고보면 그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우연이지 않았나.

-액션 시퀀스가 훌륭하다. 가장 좋아하는 추격장면이 있다면.
=내 영화를 제외하고라면 글쎄…. (웃음) 아무래도 <프렌치 커넥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당시 정말 혁신적이었으니까. 차 안쪽에서 찍어내는 거친 화면들은 놀랍지 않나. 아, 그러고보니 하나 더 있다. <본 슈프리머시>도 무척 좋아한다. 이 영화 준비하면서 그 두 영화를 제일 많이 본 것 같다.

-캐스팅이 화려하다.
=기본적으로 원하는 배우들을 다 잡은 셈이다. 운이 좋았다. 데니스가 제일 먼저 정해졌다. 그는 게리 쿠퍼 같다. 이상적인 미국의 영웅상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어딘가 내상이 있을 것 같은 영웅 말이다. 반즈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더니 무척 해보고 싶어했다. 그리고 매튜가 다음으로 합류했다. 처음 매튜를 만났을 때, 그의 눈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로스트>로 이미 영웅의 이미지를 굳힌 그가 반영웅이 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포레스트가 연기한 하워드는 정말 평범한 미국 시민이라고 할까.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서 유럽에 여행온 미국인의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동시에 바로 그 이유로 마지막 순간에 영웅이 되는 인물이다.

배우 데니스 퀘이드 인터뷰

“차 추격신은 대부분 내가 직접 운전했다”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맞다. 그러고보니 영화 내내 대사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웃음)

-차 추격신에서 직접 운전한 분량이 얼마나 되나.
=대부분 내가 했다. 사실 30마일 정도로 운전을 해도 화면에서 볼 때는 90마일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차를 들이받는 장면들은 내가 아니다.

-실제 대통령 경호팀과 만났을 때,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놀랄 만큼 정교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경호팀들은 대통령의 동선이 어떻게 될 것인지, 가능한 돌발 변수는 무엇인지, 그에 대한 각각의 대처 방식은 무엇인지 등을 6개월 전부터 사전 준비를 한다. 대통령은 이들의 정확한 경호 플랜이 세워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시점에 따라 사건의 의미가 달라지는 작품이다. 영화를 촬영할 때, 접근방식이 다른 작품과 어떻게 달랐나.
=일단 내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먼저 다 찍고 나서 다른 시점분을 촬영했다. 감독이 슛 들어갈 때마다 이건 누구의 시점에서 찍는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내 시점에서 찍는 것이 아닌 숏의 경우에는 그 캐릭터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나를 연기해야 했다.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 인터뷰

“이번엔 강한 캐릭터가 아니다”

-평범한 미국인 관광객인 하워드라는 캐릭터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이전까지 맡았던 캐릭터들은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했던, 이른바 강한 캐릭터들이었다. 그에 반해 하워드는 그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반응’하는 캐릭터다. 평범한 캐릭터라는 것. 그리고 뭐랄까, 길을 잃었다고 할까. 자신 앞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지만, 그 상황에서 보여지는 그의 행동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라쇼몽> 스타일로 보여주는 이야기 서술 방식도 흥미로웠다.

-하워드는 영화 내내 자신의 캠코더로 상황을 기록한다. 캠코더가 그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캠코더를 들고 있기 때문에 그가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하워드의 캠코더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잠시 벗어나 처음으로 발딛은 낯선 도시에서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아마 잃어버린 열정이었을 것 같다. 다시 무엇인가와 연결되고 싶어하는 열정.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엄청난 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이 찍은 영상에 무엇인가 큰 단서가 있을 것 같지만,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혼란스럽기만 하는 순간 처음에는 그는 주저하지 않는가. 사실 그에게 다가간 것은 경호팀들이었다.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그는 적극적이 되어 간다. 그리고 사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 에드가 라미레즈 인터뷰

“하비에는 암살자 이전에 고뇌하는 인간이다”

-암살자 역할로 이번에 또 등장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나는 하비에라는 캐릭터를 암살자로 여겨본 적이 없는데. 캐릭터에는 동기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암살자 역을 꽤 많이 맡은 것 같지만, 배우인 내게 그 각각의 캐릭터는 구체적인 모습을 가진 서로 다른 살아 있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다 어느 순간 총을 겨누지만, 그들이 총을 드는 이유는 각기 다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감정도 다르다.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캐릭터가 겪는 고뇌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마음이 갔다.

-그래도 이제 로맨틱한 역할의 주인공으로 나올 법하지 않나.
=배우인 내가 역을 선택하는 접근방식은 갈등하는 캐릭터인가의 여부다. 그래야만 매력을 느낀다. 물론 마케팅의 입장에서 ‘레이블’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흠, <도미노>에서 나는 정말 로맨틱하지 않았나?

-정치가를 꿈꾸었던 유망주였는데, 영화배우로의 전환이 인상적이다.
=언제나 나는 인간의 본성에 매료되었다. 배우로서 나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관찰하게 되었다. 뭐랄까, 좀더 시적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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