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조한선] 열혈남아, 고진감래
2008-03-07
글 : 최하나
사진 : 이혜정
<마이 뉴 파트너>의 배우 조한선

어쩌면, 필요한 것은 한번의 도약대다. 스타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순간, 이목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일지 모른다. 유행의 흐름에 가혹할 만큼 민감한 세계에서 그 기회조차 맛보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이지만, 조한선은 이미 그 발판 위에 한번 올라선 적이 있다. 시트콤 <논스톱3>를 경유해 2004년 <늑대의 유혹>으로 스크린에 데뷔했을 때, 이른바 꽃미남 신드롬 속에서 그는 다음 지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탄성을 확보한 듯싶었다. 하지만 함께 출연했던 강동원이 한층 더 뜨거운 스타덤으로 부상하는 동안 조한선은 말 그대로, 사라졌다. 2년간의 지루한 공백. 대중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또 실상 금세 관심을 잃었다. 스타성의 빛이 상당히 희미해졌을 2006년 조한선은 <연리지>와 <열혈남아>로 복귀 신호를 보냈고, 2008년 현재 안성기와 짝을 이룬 <마이 뉴 파트너>로 다시 스크린을 찾았다. 뇌물수수로 좌천당한 아버지를 증오한 나머지 부패의 싹을 뽑는 내사과 경찰로 성장한 아들이 8년 만에 의절했던 아버지와 공조 수사를 펼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수사극의 외피를 쓴 영화는 부자(父子)간의 화해를 이야기한다. 낯익은 곡조의 노래다. 하지만 적어도 조한선에게, <마이 뉴 파트너>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역할이 아예 아버지를 잊고 사는 놈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연기하면서 저희 아버지 생각을 머릿속에 안 두려고 했어요. 하지만 극중에서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거나, 아버지를 걱정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참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울면 안 되는데, 감정이 막 북받쳐 올라서….”

많이 알려진 대로 조한선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때까지 축구를 했다. 비범한 외모에 힘입어 연예계에 입성한 운동선수. 운 좋은 성공담으로 간편하게 요약되기 쉬운 그의 이력은 그러나, 행간에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감추어두고 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들의 동계훈련장을 찾았던 아버지는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무려 10년간의, 길고도 가혹한 투병생활이 시작됐고 극심한 생활고는 한창 예민할 10대 소년을 집 밖으로 내몰았다. “철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장사를 하셨는데 생활이 힘드니까 돈도 안 주시고, 집 안에는 빗물이 줄줄 새고 천장에는 쥐가 막 뛰어다니고… 모든 게 너무나 싫어서 가출을 열번도 넘게 했죠. (웃음)” 어릴 때부터 붙들어온 축구만이 유일한 숨통이었을 시절, 조한선은 갑작스런 허리 부상을 당했고 운동선수로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이제 우리 가족은 몰살이다, 그런 분위기였어요. 내가 장남인데, 배운 거라곤 운동밖에 없었으니까. 식구들 전부가 자포자기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때 그의 앞에 가느다란 희망이 한 줄기 던져졌다. 선수 시절 한 맥주 광고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예인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소식을 들고 달려간 아들에게 어머니는 “사기가 뻔한데, 너는 세상을 모른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다시 한번 집을 뛰쳐나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모델 생활을 했다. 10만원, 20만원, 어머니의 통장에 차근차근 출연료를 입금하던 중,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잠깐 집에 들어와봐라, 하셨어요. 가니까 앉혀놓고 말없이 김치찌개를 끓여주시더라고요. 정말 그때, 얼마나 서럽던지…. 제가 최고로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최고로.” 아버지의 병원비가 가족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던 시절, 연예계에 갓 들어선 조한선의 목표는 명백했다. 돈을 버는 것.

“정말 돈 없고 빽 없으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당시 집 앞에 전원주택이 하나 있었어요. 우리 집이 지하여서 그 집을 보려면 2층까지 몰래 올라가야 됐는데, 한번은 어머니한테 물어봤어요. 엄마, 저 집 얼마나 할까? 그랬더니 몇억 하겠지, 하시는 거예요. 우리 통장에 얼마 있어? 물어보니까 한 200만원 있나,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마, 내가 저거 사줄게, 그랬어요. 사실은 지금도 전세 살지만요. (웃음)”

“죽기 살기로” 덤벼들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늑대의 유혹>과 함께 찾아온 다소 호들갑스러운 스포트라이트.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로 접어들고” 있는 듯싶던 순간, 조한선은 또 한번 벼락같은 소식과 마주했다.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갑작스런 공백의 이유. 병상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결국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동생은 군대에 가 있고, 어머니는 당뇨를 심하게 앓으셨고. 그러면 병원을 지켜야 할 사람이 저밖에 더 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갔어요.” 사적인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그저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말로 둘러대고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절망밖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이 닥쳤다. 2년의 공백은 수습할 수 없이 헝클어진 방황으로 채워졌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계속 술만 먹고 다녔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옆사람에게 괜히 시비 걸고, 미친놈처럼 웃기도 하고. 별의별 짓 다 했어요. 그때 음주운전도 걸렸고. 다 해봤어요. 정말로.” 절망이 밑바닥을 드러낼 즈음, 독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아갈 차례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응어리들”이 조한선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줬다.

“집이 어려울 때 쌓였던 응어리, 가장으로서의 응어리, 인기가 있다가 없어졌던 응어리… 그중 하나를 <열혈남아> 때 터뜨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쉬면서 느꼈던 건, 내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가진 건 쥐뿔도 없는데…. 그냥 처음부터 배우면서 하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나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91kg까지 살을 찌우고, 머리를 바짝 깎고, 잔뜩 부풀어 오른 점퍼에 추리닝을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혼자 볼펜 하나를 들고 백지를 빼곡히 메워가며 인물 분석을 했고, 사투리는 아예 CD로 듣고 다니면서 귀에 박히도록 외웠다. 그렇게 탄생한 <열혈남아>의 치국은 조한선에 대한 평가를 반전시켰다. 소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배우로서 조한선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공백을 깨고 택한 <연리지>에 이어 다시 한번, 흥행 성적은 참담했다. 상승세를 타기란 쉽지 않았다.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특별시 사람들>은 1년이 넘도록 개봉이 지연됐고, 아직까지도 극장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데뷔 8년차. 세월의 더께는 만만치 않게 쌓였지만 조한선은 청춘스타라고 명명하기에도, 본격적인 연기자로 이름을 세우기에도 어색한 위치에 서게 됐다. 자의식이 예민하게 벼려졌을 법도 하건만, 그는 무방비 상태로 느껴질 만큼 솔직하다. “제가 뭐 흥행성있고 인기 많은 배우도 아니고, 사실 어중간하고 애매한 상태잖아요. 왜 <열혈남아> 촬영할 땐데, 여고생들이 촬영장 앞을 지나가더라고요. 멈춰 서서 저를 쭉 훑어보더니 한명이 야, 조한선이야 조한선, 그러니까 옆에 있던 애가 누구? 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왜 걔 있잖아, 강동원 영화에 나오는 애. 참고 있다가 그 말 듣고 풋, 웃어버렸어요. 아~.” 자신을 에둘러 포장하거나 굳이 방어할 생각이 없는 투다. “<마이 뉴 파트너>가 잘되면 <특별시 사람들>도 개봉할 수 있지 않을까” 슬쩍 희망도 내비치는 조한선은 이제 온전히 영화에 전력을 쏟을 생각이다. 이미 “박진희를 짝사랑하는 여자 속옷 장수”로 출연하는 <기억, 상실의 시대>는 촬영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겠다는 생각은 버렸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 저는 한방을 원하지 않아요. 제가 나온 영화가 대박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안 해요. 그냥 조금씩 조금씩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한방이 있으면, 또 그 한방이 무너지니까. 제가 실제로 무너져봤기 때문에 하는 얘기예요. (웃음)”

버거운 상처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연속적인 불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그 자신이 영리하지 못한 선택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아직까지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찾고 있는 조한선은 초조하기보다는 격의없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보세요, 저는 끄떡 안 해요. 이제 웬만큼 큰 충격이 오지 않고서야 쓰러지질 않아요. (웃음) 막 빨리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그냥, 저는 물 흐르는 듯 가고 싶어요.” 물이 흐르듯이. 조한선의 표현은 수동적으로 몸을 맡긴다기보다는 흘러가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양분으로 흡수하겠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다. “지금 저, 쉬엄쉬엄 가고 있잖아요. 슬렁슬렁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욕도 먹고, 그렇게 느낄 거 다 느끼고 경험할 거 다 해보면서 가고 싶어요. 멋있고 창창한 것만 보여주면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이 저는 훨씬 좋아요.” 확실히, 물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나무둥치에 방향을 꺾고, 뒤엉키고, 바위에 부딪히면서, 나아간다. 그리고 결국은 그 흐름이, 한곳을 향해 치닫는 직선보다 훨씬 더 깊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는 것을 조한선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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