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 -이동직 변호사
2008-03-28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으리

멋 훗날 양로원에서 돌아볼 인생의 편린에 굳이 스크린에 걸렸던 한 장면을 끼워넣자면 내 목에 칼끝을 겨누었던 <나쁜 피>를 꼽아 레오스 카락스와 줄리엣 비노쉬 언니에게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또는 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피를 끓게 했던 <그녀에게> 정도? 하나 추상보다 강한 것이 일상일까? 철들고 처음으로 나를 엉엉 울게 했던 영화는 사건으로 만났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다.

조광희 선배는 M&A와 기업금융 일에 재미를 느끼던 3년차 변호사를 뜬금없이 영화인들 모임으로 이끌었고 약간은 무책임하게 미국 유학을 떠났다.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던 감독님들과 제작자들과의 술자리와 업무 속에 들떠 있던 나에게 <그때 그사람들>은 시작부터 내 인생의 영화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동질감을 느끼면 안 된다.” 그건 당연하다. 객관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실수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외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시는 예외를 만들고 싶지 않은 사건이 바로 그 영화였다. 어쩌면 그 한순간이었다. 신보다 강한 권력을 경험했을 몇 안 되는 생의 마감한 장면을 신이 되어 부감하던 <그때 그사람들>의 단 한 장면. 난 무책임하게 “제가 이 영화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결국 역사의 그 순간 그들이 신이 아니었듯 난 이 소송에서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법부는 용감하지 못했고 언론은 애매하기만 했다.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부 삭제의 명령이 법원에서 나왔을 때, 난 그냥 엉엉 울기만 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누구나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걸레자루 부러지며 맞았던 기억이나 기억 속 그 여인이 떠나갈 때 같은 서툰 낭만이 가끔은 늦은 술자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닌 것 같은 조정으로 영화의 완전 판을 살려내고, 법원을 나서던 몇주 전, 내게 중요한 건 서툴렀던 직업인으로서의 경험이나 처참한 가처분의 기억이 아니었다. 어쩌면 한동안 낭만보다 가난한 이 기억이 날 버티게 할지도 모른다는 용기였다. 물론 용기의 원천은 부끄러움이다. 대한민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원컨대 마지막으로 불구의 모습으로 관객을 만났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담당변호사로서 지면을 빌려 석고대죄하며, 이 영화가 준 용기에 기대어 다시는 담당한 사건으로 눈물 흘리는 변호사가 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10월26일에 총탄을 맞은 그 사람들처럼 또는 잘린 영화를 개봉했던 그 사람들처럼 나도 그때 그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되돌아볼 <그때 그사람들>은 바로 지금의 나이고 지금의 우리다. 내 인생의 영화는 이 직업을 그만둘 그 순간까지 내 안의 관객을 지탱하고 있을 듯하다. 혹여 나의 신이 나의 생을 부감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에게 버티기 힘든 고난이었던 이 영화 속의 그들처럼 그때를 내 모든 것을 다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다. 어느덧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준비해야 할 개인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돌아보면 그때일 이 순간에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아직도 내 안의 상영관을 준비하고 있다.

이동직/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