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논하고 인생을 논하기엔 인생이 짧고 영화작업이 짧아 많이 쑥스럽다. ‘내 인생의 영화’라는 주제를 놓고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그 말에 대한 분석이 먼저 필요했고, 단 한편만 꼽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우선 ‘내 인생의 첫 영화’.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 단 두번 극장에 가봤고 그 영화는 <건담>과 <E.T.>였다. 물론 신나서 넋빠지게 보긴 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영화보다 깜깜한 극장을 나선 뒤의 강렬한 햇빛이었다. 그 햇빛은 순간 내 눈앞을 멀게 했고 앞이 안 보이는 순간의 공포가 영화보다 더 강렬했다.
그런 내가 물 흐르듯 바람에 구름 흘러가듯 철저히 현재에 충실히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계원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해 있었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전혀 알지 못하던 시청각문화가 날 사로잡았다. 아마도 입학식 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을 거다. ‘내 인생에서 영화를 공부하도록 결심하게 만든 영화’를 만났다. 전공 수업시간이었는데 앞뒤 전후 배경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뮤지컬영화 <페임>. 예술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열정과 사랑을 다룬 영화였는데 마치 앞으로의 내 학창 시절이 영화처럼 재미있게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지금도 가끔 지칠 때면 <페임> 속 인물들의 작업에 대한 열정이 생각난다. 그리고 힘을 얻는다.
세 번째로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해준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시나리오를 받고, 온통 걱정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액션이나 스릴러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고민 중일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영화가 있었다. 바로 토니 스콧 감독의 <스파이 게임>. 나는 이 영화가 무난한 듯 보이지만 정교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는 대사와 그래서 벌어진 현상들이 어우러진 몽타주 시퀸스!! 현재와 미래와의 조우는 정말 압권이었다…. 그리고 같은 집단 속의 다른 목적을 가진 동료간의 대립장면(앗 그러고보니 그런 감정은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휴게소신이 최고인데…. 그러나 일단은 <스파이 게임>에 집중집중!!!^^). 그들의 감정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인생의 감정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것, 그것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범죄의 재구성>을 그런 리듬으로 편집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스파이 게임>을 보고 좋아서 그저 “(<무한도전> 버전으로) 감각대로 가는 거야”라는 심정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고 나자 내 인생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들이 계속해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목표를 만들어준 영화’. 작업자로서 가끔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과연 나는 언제까지 편집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그건 하기 나름이니까. 하지만 내 33년 인생에서 17년 동안 영화필름을 만졌으니 이건 앞으로도 인생의 절반을 붙잡고 있는 일인데 만약 못하게 된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암울하다…. 이럴 땐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를 생각한다. <분노의 주먹> <택시 드라이버> <컬러 오브 머니> <케이프 피어> <좋은 친구들> <순수의 시대> <카지노> <갱스 오브 뉴욕>… (지면 관계상 나머지는 생략). 그 오랜 시간 많은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지금도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마틴 스코시즈의 이런 행보는 영화를 만드는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인생일 것이다. <디파티드>의 마지막.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총에 맞는 장면의 리듬은 한 프레임도 모자라거나 남음이 없다. 나의 이성과 감성을 통제하는 정교함이다. 이것이 바로 거장의 숨결일까. 과연 나는 마틴 스코시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저런 감각을 갖고 있을까. 분명히 발끝도 못 따라갈 것이 분명하지만… 제발 그렇게 될 수 있기만을 꿈꿀 뿐이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