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폐기된 인간들의 카오스
2001-11-07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현장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현장은 취재진한테는 고역이다. 숨쉬기조차 힘든 서울종합촬영소의 투견장 세트나 톱밥바람을 견뎌야 하는 인천항의 목재소에 비해 수색 근처의 폐공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이번에도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지 않는 한 잠시 숨을 고를 만한 곳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구경꾼의 불평과 달리 쉴새없이 몸을 놀리는 제작진의 얼굴은 안도의 분위기다. 원래 물류창고를 원했으나 눈여겨뒀던 촬영장소가 너무 낡은 곳이라 붕괴 위험이 있었던 탓에 촬영을 앞두고서 류승완 감독, 김성제 프로듀서 등이 새벽까지 수소문하며 겨우 찾은 곳. 설정 또한 그래서 자동차 불법 정비소로 바뀌었다. 다른 영화에서도 쓰인 곳이라 낯익을 법하지만, 손재주 좋은 류성희 미술감독이 나흘을 꼬박 바친 결과, 촬영장은 제작진이 원하는 ‘펄프 누아르’한 공간으로 제격이다. 이날 촬영분은 라운드 걸 출신인 수진(전도연)과 택시기사인 경선(이혜영)이 거액이 든 손가방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를 알아챈 수진의 정부 독불이(정재영)가 들이닥쳐 격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줄거리만 보면 남정네들의 세계를 향해 ‘엿 먹이는’ 두 여인의 활약상을 그린 버디 무비지만, 감독은 폐기된 인간 군상이 벌이는 카오스의 세계를 역동적인 액션을 통해 묘사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 “영화 안에는 두 여자가 벌이는 강탈극만 있는 게 아니라 50대 아저씨들의 올드 액션도 있고, 20대 얼치기들이 벌이는 소동극도 있다. 이 무리들이 뒤엉키면서 장면마다 액션의 호흡이나 쾌감은 달라질 것”이라는 게 감독의 설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든든한 팀워크에 정두홍 무술감독까지 가세한 <피도 눈물도 없이>는 11월 중순 크랭크업을 앞두고 있으며, 2002년 2월22일 개봉예정이다.

글 이영진·사진 이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