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김영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남자
2008-04-17
글 : 최하나
사진 : 오계옥
<경축! 우리사랑>의 배우, 김영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남자다. 21살 연상의 유부녀, 그것도 예전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열애에 빠지는 서른살의 하숙생 청년. 이 천인공노(?)할 로맨스의 파격이 파국을 벗어나는 것은 이 남자의 해맑은 얼굴에 기댄 바가 크다. 하숙집 주인 봉순씨가 아줌마의 묵은 때를 벗고 슬며시 소녀적인 설렘을 펼쳐놓는다면, 세탁소 청년 구상은 차마 내칠 수 없이 뭉클한 순정으로 관객의 심장에 호소한다. 동네 아저씨들에게 된통 얻어맞으면서도 “봉순씨를 좋아합니다!”라고 강단있게 외치는가 하면, 그녀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세상 전부를 얻은 양 환하게 웃는다. 도무지 침을 뱉을 수 없는 그 미소. 오점균 감독이 무대를 통해 점찍었듯이, 연극 공연을 자주 찾는 이라면 <에쿠우스> <햄릿> <청춘예찬> 등으로 이미 친숙할 얼굴, 바로 김영민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금부터 시작!’이 아니라 어느 순간 마음속에 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이고. 엄마라면, 아줌마라면 이래야 한다는 통념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숨겨지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꺼내서 환기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극단 ‘물리’ 소속으로 10년 넘게 연극판에서 활동해온 김영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YWCA 연합동아리 활동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시작한 연기에 정신차릴 수 없이 푹 빠져버린 청춘은 고등학교 문턱을 넘자마자 바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치기어렸던 거다. 열여덟, 열아홉살에 알면 뭘 얼마나 알았겠나. 우리끼리야 뭐 다 잘할 수 있어! 큰소리를 쳤지. (웃음)” 극장을 구할 도리가 없어 지하실에서 공연을 하고 “그래도 작품이 좋으니까 괜찮아”라고 서로의 등을 두드리던 시절. 이내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나이대로 따지자면 90학번인 김영민은 97학번 늦깎이 신입생으로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20대 시절, 순수한 열정으로 일했던 시간들이 결과적으로 인생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 당시 연기가 예술이라면 과연 어떤 것일까 고민하고 결심했던 마음들이 지금의 재산이 됐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뒤 “라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던 시간을 보내던 중 2000년 영화사들이 연합으로 개최한 ‘지상 최대의 오디션’을 통해 김기덕 감독을 만났고 <수취인불명>으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감독과의 인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이어졌고, 그는 마룻바닥에 쓰여진 반야심경을 한자 한자 칼로 도려내며 분노를 다스리는 청년 스님을 연기했다. “김기덕 감독님이 영화를 정말 빨리 찍지 않나. 그래서 난 영화가 다 그런 줄 알았다. (웃음) 감독님과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 어느 현장에 가도 잘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된 것 같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뒤를 이었고, 2005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제작사가 바뀌는 과정에서 김영민은 느닷없이 도중하차하는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가슴 아픈 듯 그는 말을 아낀다. “사실 정말 힘들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무슨 상황인지 아예 머리에 안 들어올 정도로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로 살면서 겪을 일 일찌감치 잘 겪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오히려 그런 일들이 나 자신을 더 겸손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스크린은 다시 그를 찾았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김영민은 능글능글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시골 청년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생동감있게 표현했고, <잔혹한 출근>에서는 유괴범의 아이를 유괴하는 특별한 사연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연극에서는 주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역할을 해왔지만, 영화는 다양한 인물을 해온 덕에 잘했건 못했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는 김영민에게 <경축! 우리사랑>은 지난한 과정 끝에 수확한 결실이다. “<데보라 윙거를 찾아서>라는 다큐를 보면 한 원로 여배우가 그런 말을 한다. 평생 연기를 해왔지만 정말 자신이 소름끼칠 정도로 해냈다고 느낀 것은 서너번밖에 없다고. 이번 작품을 통해서 내가 그런 경험을 한 것 같다.” 김영민은 현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줄리에게 박수를>이라는 연극을 공연 중이다. “인터뷰를 하면 늘 향후 계획을 묻곤 하는데 특별히 그런 건 없다”고 털털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바람은 자신의 공연을 찾는 관객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달랐으면 한다는 것. “배우가 만약 존경받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표현하는 것이 전집 열권을 읽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배우로서 내 안에 우주가 있다. 그 안에서 나온 진정성이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을 거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연극과 영화를 활발하게 가로지르는 김영민의 우주는 아직도 지침없이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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