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킹>의 원안을 쓰고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제임스 엘로이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추리계의 헤밍웨이, 할리우드의 도스토예프스키, 각성제에 취한 보들레르. 미국의 범죄소설가 제임스 엘로이를 부르는 이 기묘한 찬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문장력, 범죄에 대한 탐닉, 정상성을 벗어난 폭주. ‘LA 4부작’을 위시한 그의 소설들은 극한의 폭력성과 남성성을 과시하며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었고, 그중 <LA 컨피덴셜>과 <블랙 달리아>는 영화화되었다. <3:10 투 유마> <겟 쇼티> <아웃 오브 사이트> 등의 원작 소설을 쓴 스릴러 작가 엘모어 레너드가 유머 섞인 가벼운 필치와 속도감있는 대화, 긴박한 진행방식으로 할리우드의 총애를 받았다면, 제임스 엘로이는 마약과 피로 얼룩졌던 시대에 대한 천착, 막다른 골목에 선 인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인 이미지를 낳는 문장력으로 할리우드의 구애를 받았다. 그가 어둠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왜 할리우드는 그의 어둠을 탐닉하는가.
1. 변사체, 간호사, 알코올중독자, 섹스중독자… 어머니
제임스 엘로이의 이야기는 그가 첫 소설을 발표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가 그 모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1958년 6월22일, 제임스 엘로이가 10살이던 해에 그의 어머니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을 데리고 이사해 간호사로 살던 그녀의 이중생활은 죽음 뒤에 밝혀졌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알코올중독에 섹스중독이었고, 1958년 6월의 어느 아침에 드레스 차림에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강간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엘로이는 이 사건 이후 군에 입대할 때까지 부랑자로, 알코올중독자로 살았다. 그가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7년, 엘로이는 5년간 공들인 <블랙 달리아>를 발표하는데, 이 책은 1947년 LA 근교에서 발견된 배우지망생 엘리자베스 쇼트 토막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유사했던 한 미결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블랙 달리아>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나의 어두운 곳>(1994)을 통해 어머니의 사건을 사후 40년 만에 재조사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 범죄소설가 제임스 엘로이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소설이라는 세부 범주로 국한시키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총괄하는 범죄소설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의 책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불러오는 해피엔딩과 긴박한 추격전이나 두뇌싸움이 자극하는 스릴이 부수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범죄 그 자체의 어둠이다. 1940∼70년대의 LA를 무대로 한 이야기를 즐겨 쓰는 이유는 그때 그곳이야말로 부정부패와 환락, 폭력의 핵심, 어둠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피갑칠이 된 반영웅들이 죽음도 불사하는 사투를 벌이는 전장을 파고드는 엘로이는 무자비할 정도로 집요하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이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 소개되는 비중이 낮을 것이다. 지나치게 어둡고 지나치게 폭력적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픽션의 대가다.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가다. 나는 톨스토이가 러시아 문학에, 베토벤이 음악에서 차지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자신만만한 엘로이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하류인생을 사는 마초, 특히 블루칼라 경찰이나 탐정에 국한되어 있다. 엘로이는 화이트칼라 범죄, 현대적인 범죄에는 관심이 없다.
3. LA 누아르의 두 사나이- 레이먼드 챈들러 vs 제임스 엘로이
LA의 고독한 사나이들과 아름다운 여성들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과 영화)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세계로 더 친숙한 게 사실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영화 <빅 슬립> <기나긴 이별>의 원작 소설을 썼는데, 영화 속 험프리 보가트는 냉소적이고 우수에 젖은 사립탐정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40년대에 작품을 주로 발표한 챈들러와 50년대를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쓴 엘로이 사이에는 LA라는 지형적 합일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엘로이는 “챈들러는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었다”고 단언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식 영웅이다. 고귀하고, 비열한 모든 것을 싫어하고. 그는 엄청나게 예민한데, 폭력을 휘두르거나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에서도 꽤 팔자가 좋아 보인다. 잡스러운 문학적 인물일 뿐이다.” 엘로이는 챈들러의 대척점에서 LA의 뒷골목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챈들러의 후대 작가들이 밟았던 모방과 망각의 굴레를 벗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유를 불문한 폭력과 성범죄, 악마적 음모, 정치적 스캔들의 연속. 할리우드가 엘로이와 그의 사내들을 끊임없이 스크린으로 소환하려는 이유 역시 바로 거기 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거리가 먼, 피와 뼈로만 대화하는 옛날 옛적 LA의 어둠을 매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젠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내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