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가 매력적입니다. 주근깨도 매혹적이시고요. 이름이 그래서 ‘페퍼’인가봐요. 맵싸한 페퍼.
=제 이름은 버지니아 포츠고요. 페퍼는 별명인데요.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빨간 머리에 도취해서 이름을 페퍼라고 지은 줄 알았죠. 그럼 버지니아 포츠씨. 어떻게 토니 스타크와 함께 일하게 됐나요.
=함께 일했다기보다 개인비서로 고용된 거죠. 처음엔 호사스러운 사무실에 앉아서 국방성 회의나 잡고 개인 스케줄이나 관리하는 일인 줄 알았어요. 속은 거죠. 요새는 스타크 회장님 뒤치다꺼리하는 게 제 운명이고 업보려니 생각하고 삽니다.
-대신 연봉이 엄청나지 않나요.
=그건 토니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특급 비밀입니다.
-얼마나 받으시기에요.
=뭐 스타크 인더스트리 주식이 조금 있고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억만장자 말썽꾸러기 슈퍼히어로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응당 받을 만한 연봉을 받고 있달까요.
-세계 최대 회사 중 하나니까 법인카드 한도도 대단하겠네요. 가끔 신상 나오면 법인카드로 몰래 긁기도 하시죠?
=저는 프로페셔널한 개인 비서입니다. 회삿돈을 주머닛돈처럼 쓰는 경우는 없어요.
-제가 코믹스를 미리 좀 읽었거든요. 버니지아씨는 나중에 영화 <아이언맨>에는 등장하지 않은 해피 호건이라는 남자와 결혼한 뒤 토니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고는 로키산맥 지방에 좀 살다가 클리블랜드로 와서 애를 하나 입양하지요. 그런 다음에 해피 호건과 결혼생활이 미적미적해지는 바람에….
=저야 모르죠. 해피 호건이 누군지도 몰라요.
-그러게요. <아이언맨> 작가들이 해피 호건은 없애버리고 대신 토니 스타크와 버지니아씨의 ‘러브♥러브 모드’를 키워놨더라고요. 그편이 버지니아씨 개인적으로나 박스오피스에 끼치는 효용 면으로나 더 좋은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관심없어요. 저는 개인비서로서 제 할 일을 할 뿐이죠.
-정말 프로페셔널하시군요. 하긴 영화에서도 하이힐을 벗고 뛰는 일이 절대 없으시더라고요.
=진정한 비서의 몸가짐이죠.
-그래도 오바디아 스테인이 아머 슈트를 타고 쫓아오는데다가 여기저기서 불꽃이 펑펑 튀는데도 뒤뚱뒤뚱 스틸레토힐을 신고 경보를 하는 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걱정되지 않으세요? 스타크씨 밑에서 일하다보면 나중에 더 큰 후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슈퍼히어로에게는 그만한 강적이 따라붙게 마련입니다.
=스타크씨에게는 제가 필요해요. 15살에 MIT에 들어간 수재에다 인물도 훤칠하지만 억만장자 집안에서 곱게 큰 탓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니까요.
-토니 스타크씨가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돈도 많은데다 이제는 무적의 철갑 사나이가 됐는데.
=저 없으면 그분 못살아요. 자기 양말도 하나 못 고르는 남자예요. 스타크씨가 슈트를 입고 참석해야 하는 자리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검은 슈트에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이라도 신는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게다가 식단도 그분 건강 상태에 맞춰서 제가 꼼꼼히 준비해야 해요. 미국산 쇠고기라도 먹으면 어쩔 거예요. 요즘 남는 쇠고기는 다 사우스 코리아로 수출한다지만 그래도 만전을 기해야죠. 토니 스타크씨 식탁엔 호주산 쇠고기랑 횡성 한우만 올려요. 프리온 염려 절대 없죠.
-토니 스타크씨 재산 관리도 한다고 들었는데. 그분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글쎄요. <포브스>는 30억달러라는데 그건 순익만 따진 거고요. 실재로는 1천억달러 정도 되려나. 그거 불리느라 요즘 좀 바빠요. 특히 동아시아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꽤 괜찮다기에 베이징이랑 서울 근교 신도시 좀 돌아보려고요. 네? 슈퍼히어로 개인비서가 무슨 복부인이냐고요? 이것 보세요. 슈퍼히어로가 차명계좌 직접 관리하면서 손 더럽히는 거 보셨어요? 알프레도 영감님이 땅 파서 배트카 만드는 거 아니고 자비에르 교수가 물 팔아 엑스맨 관리하는 거 아니거든요. 훌륭한 비서없이 훌륭한 슈퍼히어로 없다는 거. 다들 아셔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