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시드니 폴락] 영화를 넘어 영면으로
2008-05-27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아웃 오브 아프리카> <투씨>의 시드니 폴락 감독, 5월26일 암 투병 중 사망

할리우드 감독 시드니 폴락이 5월26일 암 투병 중 사망했다. 향년 73살. 대변인에 따르면 폴락은 로스앤젤레스의 퍼시픽 팰리세이드에 자리한 자택에서 아내와 두딸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시드니 폴락은 1934년 인디애나주 라파예트에 정착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드라마 수업 중 무대에 처음 섰는데, 나중에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에게 “무대에 오른 그 순간 내가 원해온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7살에 뉴욕으로 건너간 폴락은 유명한 연기 코치 샌디 마이스너 아래서 2년간 연기를 사사하고 2년간 군 복무 뒤 다시 돌아와 연기를 가르쳤다. 그 당시 사제관계로 만났던 클레어 그리스울드와 1958년 결혼해 슬하에 1남2녀를 두었고(폴락의 아들은 1993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폴락이 숨을 거둘 때까지 부부의 연이 이어졌다.

TV로 무대를 옮겨 연기를 계속하던 폴락은 1960년대 초반 TV시리즈 연출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1960년 저예산 독립영화 <워 헌트>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하는데, 이때 만난 로버트 레드퍼드와 평생지기가 되어, <추억> <코드네임 콘돌>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7편의 영화를 같이 했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앤 밴크로프트를 기용한 <가는 실>(1965)로 장편 감독으로 데뷔한 폴락은 1966년 두 번째 장편 <디스 프로퍼티 이즈 컨뎀드>를 준비하며, 내털리 우드의 상대역에 레드퍼드를 초대했고 이 작품을 계기로 레드퍼드는 스타 대열에 올랐다. 선호하는 감독과 배우로 주저없이 서로를 꼽는 둘의 호흡은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이르러 만개해, 그해 오스카 11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고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을 수상했다. 폴락이 그러했듯 배우에서 감독으로 또 제작자로 활동 중인 레드퍼드는 “상업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폴락을 기억했고, “비슷한 점이 많아서 만나자마자 친해졌다”고 48년 전을 회고했다.

시드니 폴락을 거치면 오스카 후보에 오른다는 속설도 있었는데 제인 폰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폴 뉴먼, 제시카 랭, 더스틴 호프먼, 메릴 스트립, 홀리 헌터, 그리고 <마이클 클레이튼>의 조지 클루니와 틸다 스윈튼까지 이것이 헛소문이 아님을 입증했다. <마이클 클레이튼>과 <바보들>에서 제작자와 감독, 제작자와 배우, 또 배우와 배우로 호흡을 맞춘 조지 클루니는 다음과 같이 폴락을 추모했다. “시드니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꿨다. 멋진 영화를 만들었고, 훌륭한 매너로 괜찮은 저녁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미치도록 그리울 것이다.” 샐리 필드, 로버트 미첨, 톰 크루즈, 숀 펜, 니콜 키드먼 등 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목록이 말해주듯, 폴락은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동료였다. 그는 배우에게서 연기를 끌어낼 줄 알았고, 촬영장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았다. “나는 비주얼 혁명가는 아니다. 영화 형식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 적도 없다. 나의 힘은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대부분이 그를 연기자보다는 감독으로 기억하겠지만, 감독으로서 남긴 21편의 필모그래피보다 9편 더 많은 출연작 목록을 보면 카메라 뒤에서도 연기를 향한 열정이 계속됐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감독이었다. <추억>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같은 멜로도, <투씨>와 같은 영리한 코미디도, <야망의 함정> <랜덤 하트> 등의 스릴러도 그의 손을 지나면 관객을 부르는 영화로 탄생했다. 2002년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발표한 “미국의 사랑영화 100편”(AFI’s 100 Years 100 Passions)에 그의 영화 <추억>(6위)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13위) 2편이 올라 있다. 20위 안에 두편을 올린 감독은 그가 유일했다.

폴락이 탄탄한 성공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뒤 만든 <하바나> <사브리나>는 범작이었고, 1999년 <랜덤 하트>를 만들고는 메가폰을 놓고 한동안 제작에 열중했다. 그 시절 폴락은 2008년 3월 세상을 떠난 앤서니 밍겔라 감독과 짝을 이뤄 <리플리> <콜드 마운틴>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2005년 <인터프리터>를 만들며 감독 자리로 돌아왔지만, 같은 해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가 감독으로서는 유작이 됐다. 부시와 고어의 대선 전쟁을 그리는 TV영화 <리카운트>를 연출하려고 했으나 2007년 8월 암 진단을 받은 뒤 감독직을 반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로맨틱코미디 <메이드 오브 오너>에서 패트릭 뎀지의 아버지로 출연해 연기자로서 그의 유작은 <메이드 오브 오너>로 남았다. 그러니 관객이 스크린으로 폴락의 모습을 확인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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