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1990년 3월18일, 홍콩연예인축구팀과 한국의 무궁화축구단은 심장병어린이돕기 자선축구대회를 가졌다. 당시 <지존무상>(1989)으로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센터포드 유덕화, 레프트윙 알란탐 콤비 외에 골키퍼 임달화, 고비, 묘교위 등이 홍콩팀의 주축 멤버였고 국내팀 역시 이덕화, 임채무, 임하룡, 김형곤, 이용식, 양종철 등으로 구성된 최정예(?) 팀을 꾸렸다. 그렇게 성남공설운동장에 도착하기 전날,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해 전영록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팬으로부터 김치까지 선물받은 ‘김치 마니아’ 알란탐과 유덕화에게만 경기 당일에도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런 가운데 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풀며 컨디션을 조절하던 한 사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증지위였다. 지금은 <첨밀밀>(1996)에서 이요(장만옥)를 위해 미키마우스 문신을 그려넣었던 귀여운 보스 ‘표형’을 떠올리거나, <무간도>(2002) 시리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 ‘한침’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러니까 작고 뚱뚱하고 호감가는 연기파 배우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 증지위는 날쌘 축구 선수 출신 배우다.
당시만 해도 증지위는 코미디 전문 배우였다. 성룡과 홍금보와 늘 함께했던 <복성> 시리즈에서 ‘완두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말 많고 사고 많이 치는 역할이었다. 얼핏 보면 ‘뽀식이’ 이용식을 닮기도 했는데, 그래서였는지 그날 경기 내내 이용식은 증지위를 밀착 마크했다. 하지만 운동신경마저 자기를 닮았으리라 착각한 것은 뽀식이의 엄청난 실수였다. 라이트윙으로 출전한 증지위가 전반전에만 2골을 작렬시켰던 것. 증지위는 그냥 축구 선수가 아니라 홍콩 청소년 대표를 지낸 ‘진짜’ 축구 선수였다. 이날 경기는 결국 3 대 2로 홍콩팀의 승리로 끝났다.
‘축구 잘하니까 스턴트도 잘할 것’이라며 증지위를 영화계로 유혹한 것은 홍금보와 유가량이었다. 그렇게 그는 20대 초반부터 쇼브러더스에서 스턴트맨으로 활약했고 시나리오작가로도 영역을 넓혔다. 혁명적 소림사 영화 <소림삼십육방>(1978)의 시나리오를 쓰며 주목받더니, 또 한명의 절친한 친구 ‘대머리’ 맥가를 통해서는 신흥영화사 시네마시티에서 <최가박당>(1982)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서도 확고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만큼 그는 ‘뚱뚱하고 친근한 배우’ 그 이상으로 다재다능한 영화인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친화력과 ‘끼’ 때문인지 역시 배우로서의 욕심이 가장 컸다. ‘천생 희극인’이라는 고정관념도 담가명 감독의 <최후승리>(1987)를 지나 웨인왕 감독의 <뜨거운 차 한잔>(1989)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새로운 차원으로 점핑하게 된다. 앤서니 퀸을 좋아한다는 증지위는 이후에도 코미디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하긴 했지만 어떤 역할이든 소화하는 넉넉하고 후덕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많은 홍콩 영화인들에게 홍콩의 ‘국민배우’를 한명 꼽아달라면 다들 증지위를 얘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능력으로도 인품으로도 홍콩 사람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가 바로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