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총알도 알아서 피해간다는 생존의 달인, 잡초 윤태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SF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흉악한 살인마들이 득실거리고, 살벌한 관동군이 도처에 깔려 있는 만주에서 어떻게 10년 넘게 비적질을 하며 살아남으셨는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특별한 생존의 비결이라도 있는지요?
=에~ 제가 터득한 생존의 비결이 한 1만5천 가지쯤 됩니다. 트위스트 스텝으로 날아오는 총알 피하며 도망가기, 적이 내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때 선빵 날리고 도망가기,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준 듯 굴다가 배반 때리고 도망가기 등등…. 나머지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아무튼 거친 만주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쯤은 기본입니다.
-에이~ 대단하긴 한데 죄다 도망가는 방법뿐이잖아요.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이나 <매드 맥스>에나 나올 법한 흉측한 비적과 맞닥뜨리면 최소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급 사격 실력을 갖고 있거나 <북두의권>의 켄시로처럼 무술도 잘해야 한다고요. 진짜 도망칠 수 없는 상대랑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를테면 박창이 같은 비적을 만났을 때요.
=무데뽀 정신! 박창이가 총을 내 이마에 겨눴다 칩시다. 그럴 때 절대 쫄면 안 돼. 너… 너… 박창이야? 나… 윤태구야, 윤태구! 그러면서 총열을 딱 잡아! 그리고 X나게….
-아, 비속어는 삼가해 주십시오.
=아, 네, 죄송합니다. 아…, 아무튼 총열을 잡고 손에 열이 나게 내려치는 거야, X나게! 총열 뽀개질 때까지. 덩치 큰 러시아 비적도 마찬가지야. 이름이 쉬바노므스키면 너… 쉬바노므스키? 하고 뚜벅뚜벅 걸어가. 그럼 쉬바노므스키는 갑자기 걸어오니까 뭐… 뭐야 하고 뒷걸음질치게 돼 있어. 그러다 팍!(이때 손을 올린다.) 봐봐봐! 당신도 당황하니까 손이 올라오게 되잖아. 이때 팔을 딱 잡고 또 X나게 내려치는 거야. 손 빠개질 때까지! 무데뽀! 무데뽀 정신이면 다 되는 겁니다.
-오! 무데뽀 정신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극상의 기술이었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럼 지금 이 순간에도 만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후배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팁 하나만 알려주세요.
=헝그리 정신!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죠. 뭐 걔들이 지금도 일주일째 식은 주먹밥으로만 때우고 있는 거 잘 압니다. 뭐 고깃국 먹고 싶겠지. 하지만 그거 참는 것도 일종의 훈련이야, 훈련! 응? 왜 한국 복싱이 잘나가다가 요즘 빌빌대는 줄 알아? 그게 다 이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예요. 옛날엔 말이죠. 라면만, 진짜 라면만 먹고도 금메달 따버렸어. 그 누구야…. 임춘애! 임춘애 걔도 라면만 먹고 금메달 3개씩이나 따버렸어!
-저… 임춘애 선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아, 그래요? 아무튼… 아무튼… 아, XX! 당신 때문에 까먹었잖아!
-헝그리 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헝그리 정신! 이 헝그리 정신이 우리 비적들에겐 필요하다는 겁니다. 걔들 조만간 정말 잘나갈 겁니다. 여…, 영국산 더러브렛 경주마 타고! 며…, 명월관 안방 드나들듯 하고! 하지만 그때 가서도 만주에서 동상 걸려가며 비적질 하던 시절을 절대 잊어선 안 돼요, 절대! 내가 늘 강조하지만 잠자는 비적에게 결코 햇빛은 비치지 않아, 햇빛!
-(짝짝짝!)훌륭하십니다, 정말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세요. 끝으로 고생하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뭔가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선물 하나 기증하시면 어떨까요? 뒤에이치엘 특송으로 만주로 보내겠습니다.
=아, 그래요? 어디 보자… 뭐가 좋을까. 아! (갑자기 입고 있던 방한누비옷을 벗으며) 요 깔깔이를 보내죠. 이거 하나면 영하 40도의 추위에도 끄떡없으니까.
*윤태구가 후배 비적들에게 기증한 속칭 ‘깔깔이’는 그 뛰어난 방한성으로 인해 훗날 60만 대한민국 육군장병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주는 초인기 보급품이 되었다는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