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카사블랑카>(1942)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없는 이가 있을까. 릭(험프리 보가트)이 자신의 카페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 일자(잉그리드 버그만)가 남편 라즐로(폴 헨레이드)와 함께 그 카페에 들어설 때, <As Times Go By>가 연주될 때,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일자가 릭에게 매달릴 때 혹은 릭이 그녀를 떠나보낼 때…. 전쟁을 배경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의 안타까움을 다룬 이 멜로드라마는 아마 전세계 영화 팬의 심금을 울렸을 것 같다.
멜로드라마의 당의정 입힌 선전영화
그런데 이 영화에는 연인의 애틋한 사랑에만 도취하기에는 너무나 일방적인 정치적 메시지가 숨어 있다. 영화 자체가 전쟁 중에 제작됐는데, 당시는 연합국이나 동맹국 가릴 것 없이 모두 선전영화들을 양산할 때다. <카사블랑카>는 멜로의 당의정을 입힌 선전영화다. 영화에서 유럽은 독일의 침공으로 지옥으로 변해 있고, 사람들은 오직 ‘자유의 땅’ 미국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지구상의 유일한 유토피아로서의 미국의 존재가 지나치게 강조돼 있다. 특히 불가리아인 신부가 자식들을 더럽혀진 조국에서 자라게 할 수 없다며, 미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릭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에서는 이 영화가 최소한의 정치적 이성마저 잃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미국으로 가는 통행증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카사블랑카다. 그 통행증을 들고 리스본으로 가면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영화에 제시된 이런 복잡한 설정 자체가 좀 어색한데, 어쨌든 그 과정을 설명 들으면 미국은 더욱 멀고 어렵게 느껴지며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원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국’은 간절한 ‘희망’으로 남는다.
이런 선전 부분에 눈 딱 감으면 영화는 감미로운 멜로드라마로 변한다. 영화는 릭(보가트)-일자(버그만)-라즐로(헨레이드)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릭과 일자는 파리가 점령되기 전 평생을 약속한 연인이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레지스탕스의 리더이자 일자의 남편인 라즐로가 살아 돌아온다. 나치들은 시내로 밀려들어오고, 일자는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남편과 도주한다. 일방적으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릭은 처절한 배반감에 카사블랑카에서 은둔하듯 산다.
세 배우의 연기는 물론이고, 조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프랑스 경찰 역의 클로드 레인, 독일군 장교 역의 콘래드 바이트, 릭에게 훔친 통행증을 맡기고 죽는 피터 로레, 흑인 피아니스트 샘의 돌리 윌슨, 뚱보 이탈리아인 페라리 역의 시드니 그린스트리트 등 불과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들이 많다. 특히 독일 장교 역의 콘래드 바이트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에서 몽유병 환자로 나온 전설적인 배우이며, 피터 로레는 프리츠 랑의 걸작 <M>(1931)의 바로 그 살인자다.
움베르토 에코의 불만
영화는 이틀 밤 사이에 모두 진행된다. 첫날 밤은 릭에게 고통을 주었던 옛 애인 일자가 레지스탕스 리더인 남편 라즐로와 함께 그의 카페에 들어오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우연치고는 너무 가혹한 만남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그녀가 릭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영웅 같은 남편을 데리고 말이다. 초라한 릭은 그날 밤 혼자 카페에 남아 술을 마신다.
카페에서의 이 시퀀스는 보가트의 매력을 십분 우려먹는 장면인데,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한 대로 보기에 따라서는 민망할 정도로 클리셰(상투적인 것)가 많다. 버림받은 기억을 가진 남자가 컴컴한 카페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그의 충실한 피아니스트는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를 연주한다. 그러자 갑자기 일자가 한밤중에 홀로 이곳에 나타난다. 그녀는 왜 릭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긴 플래시백을 펼치고, 기억 속 이별의 편지에는 빗물에 눈물이 흐르듯 글자가 흘러내린다. 통속극에서 많이 봐왔던 안일한 설정들의 연속인데, 많은 팬들은 바로 그런 상투성에 마음을 빼앗겼다. 에코의 지적에 따르면 ‘상호텍스트성’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카사블랑카: 컬트 무비와 상호텍스트적 콜라주’(한국에선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에 실려 있다)에서 “한두개의 클리셰는 웃게 하지만, 수백개의 클리셰는 감동을 준다” 고 말한다. 에코는 처음에 이 ‘통속극’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반복해 보며 컬트가 된 이유를 이해했는데, 바로 수많은 클리셰들의 내적 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객은 어렴풋이 수많은 클리셰 사이의 대화를 느끼고, 바로 이 점이 <카사블랑카>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보가트의 멜로적인 매력은 우디 앨런이 주연한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Play It Again, Sam, 1972)에서 다시 인용된다. 제목은 일자가 흑인 피아니스트에게 연주를 해달라고 말한 대사에서 따왔다. 앨런이 사랑에 실패할 때면 그의 영웅 보가트가 상상 속에 나타나 사랑의 조언을 하는 식이다.
영화는 1942년 11월 연합군의 카사블랑카 상륙에 맞춰, 한정된 극장에서 첫 개봉됐다. 그리고 1943년 1월 동맹국의 무조건 항복과 연합군의 이탈리아 상륙을 결의하던 루스벨트와 처칠 사이의 ‘카사블랑카 회담’이 진행되던 1월23일 정식으로 개봉된다. 대히트였다. 영화는 선전과 멜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엔 장르의 관습들을 비트는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를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