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에서 소개한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은 영화사의 사정으로 상영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이 7월25일부터 8월24일까지 필름포럼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미조구치 겐지의 창조적 역량이 절정에 달했던 1953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그의 유작인 <적선지대>(1956)까지 8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구로사와와 오즈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미조구치는 흔히 ‘미조구치 겐지 스타일’이라 표현되는 자신만의 영화적 서명을 뚜렷하게 남긴 감독이었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장 뤽 고다르와 빔 벤더스, 짐 자무시 등이 그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 바 있다.
냉혹한 현실에 버려진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원신 원컷(one scene one cut)의 플랑세캉스(plan sequence)의 진가를 보여줬던 미조구치 영화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혐오와 인물에 대한 동정이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이를 직접적으로 파고들기보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기생 누이의 헌신적인 도움 속에 처참했던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미조구치는 자신이 체험한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매몰되기보다 오히려 그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관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거리두기 방식은 롱숏의 시선뿐만 아니라 과감한 생략과 비약을 통해 분절된 내러티브를 통해 얻어진 것이기도 하다. 또한 <우게츠 이야기>(1953)에서 부인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산쇼다유>(1954)의 오빠를 위해 희생하는 여동생의 죽음을 강물의 떨림으로 표현하는 장면 등에서 드러나듯 그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죽음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기보다는 그 비극성을 냉정히 바라보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미조구치의 시선이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특히 여성)이었다. 미조구치가 천착했던 여성영화의 정점이자 시네마베리테 방식으로 동시대 일본의 암울한 풍경을 담았던 <적선지대>에서 적절히 드러나듯 그의 영화에서 인간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이 깊게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마르크시즘 등의 특정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구조의 변화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오하루의 일생>(1952, 미상영작)과 <우게츠 이야기>에 비해 명성은 덜하지만 그의 또 다른 걸작인 <산쇼다유>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동정심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마지막 삶의 교훈을 전하는 것처럼 미조구치는 인간에 대한 동정과 닌조(人情) 속에서 사회의 희망을 엿보는 낭만적 휴머니스트에 가까웠다. 더들리 앤드루는 미조구치의 영화를 고전적 사실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는 미조구치가 인물을 비참한 상황까지 내모는 가혹한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인간정신을 모방하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이샤의 입문 및 성장, 그리고 게이샤의 생활상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게이샤>(1953)는 게이샤의 사적 삶을 은밀하게 엿보려는 관객의 욕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우리가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일본 전통의 닌조라는 정신세계이다.
냉혹한 현실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버리지 않았던 미조구치의 세계관과 함께 미조구치 스타일로 불리는 카메라 움직임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우게츠 이야기>다. 신 전체를 조망하는 하이앵글이 신의 시점이 되어 인물의 비극적 운명을 강조하거나, 한 장면에서 동시에 제시된 두 상황이 충돌하여 ‘화면 내 몽타주’를 형성하기도 하고,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결합시켜 몽환적 분위기를 담아내는 팬과 수평 트래킹이 동양 전통의 두루마리 회화를 영화적으로 승화시키는 이 작품은 그의 최고 걸작임에 분명하다. 특히 이러한 카메라 움직임은 (사토 다다오의 지적처럼) 한순간의 형태가 결정적이라고 생각되면 곧 그 구도의 균형이 미묘하게 변화하여 다음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옮겨가는 형태를 취하면서, 숏 안에서의 충돌과 긴장감을 담아내는 매력이 있다.
미조구치는 “나이 40이 되어 영화로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의 진실을 정말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내게 영화는 정말 어려운 예술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영화에서 곧잘 드러나는 비애감은 멜로드라마 특유의 ‘너무 늦음’(too late)의 정서로 인한 것일 텐데, 그가 너무 늦지 않게 이 어려운 예술을 다루는 법을 터득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때로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의 희생을 합리화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영화의 회화적 능력을 극대화하여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그만큼 명석하게 말하는 이도 없으니 말이다(자세한 일정은 cafe.naver.com/filmforum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