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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말랑한 로맨스는 사절, 양자경
2008-08-15
글 : 주성철

<미이라3: 황제의 무덤>을 보며 혹사당하는 중화권 스타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간도> 황 국장(황추생)의 변신도 실소를 자아냈고 내내 인상만 쓰는 이연걸도 괴로웠다. 심지어 <살파랑>(2005)에서 견자단과 멋진 골목 액션신을 벌인 이후 <흑권> <남아본색> 등으로 잘나간다고 생각했던 오경이 이름없는 자객 중 한명으로 나와 딱 한 장면, 피를 머금고 피식 쓰러질 때 한없이 우울했다. <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에서도 이연걸에게 꼼짝 못했던 러셀 웡이 양자경의 연인 ‘밍’으로 나와 죽음을 택한 것도 안타까웠고, <태극권>(1993)에서 정신 나간 이연걸을 극진히 보살폈던 양자경이 이번에는 이연걸에게 죽게 되니 더 가슴이 시렸다. 그래도 딱 하나 관심이 갔던 건, 영화에서 한번도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양자경의 이미지가 그나마 일관성있게 묘사됐다는 점이었다.

<와호장룡>의 양자경

양자경은 늘 무예가 뛰어난 강인한 여자로 등장했다. 실제로 액션만 잘한 게 아니라 연기도 잘했고, 미모 역시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멜로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우영광이 양자경을 위해 대신 죽었던 <프로젝트S>(1993)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키스신을 본 기억도 없다. 물론 영화에서 늘 사랑하는 존재가 있었지만 그 카리스마와 별개로 늘 그 주변을 맴도는 역할이었다. <와호장룡>(2000)에서 사랑하는 남자 리무바이(주윤발)의 죽음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수련(양자경)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태극권>에서도 장삼풍(이연걸)을 향한 마음에 극진히 돌봤지만 떠나는 그로부터 들었던 말이라곤 “인연이 있다면 만나겠죠”라는 무심한 말이었다. ‘바바리맨’을 처리하는 것으로 임무를 시작했던 <예스마담> 시리즈에서도 속편 <예스마담2: 황가전사>(1983)에 이르러서야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너무 ‘들이대고’ 시끄러워서 처음에는 싫었던 동료 경찰(왕민덕)이 자신이 인질로 잡히자 양자경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냥 빌딩에서 떨어져 죽으면서 이후 사랑의 복수를 시작했었다. 그나마 사랑을 이룬 경우는 <칠금강>(1994)이었지만 어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다.

그도 아니면 양자경은 그냥 혼자 사는 여자였다. <게이샤의 추억>(2005)에서 과거가 궁금한 여자 마메하(양자경)가 대표적이다. <실버 호크>(2004)에서 사회악을 처리하며 배트맨처럼 낮과 밤이 분리된 생활을 하는 룰루(양자경) 역시 독신주의자였다. 그런데 양자경은 이렇게 혼자 살아갈 때 가장 멋있었다. 마지막 자막을 통해 허안화가 그녀에게 바친 영화나 다름없는, 양자경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전환점과도 같은 <스턴트우먼>(1996)에서 중국의 군인이었던 그녀는 홍콩에서 스턴트우먼으로 일한다. 사귀던 남자에게 딴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뿐인 아들과 새 인생을 시작한다. 아마도 <성월동화>(1999)는 짧지만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장국영의 자살한 아내의 언니로 나온 그녀는 장국영의 새 애인을 보고서 가슴이 먹먹하다. 혼자 주크박스의 음악에 기대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은 <클린>(2004)의 장만옥만큼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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