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길강] “나는 더이상 고독한 들개가 아니다”
2008-08-20
글 : 문석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진상6호, 안길강

2년 전만 해도 그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숨이 찰 정도로 긴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2000년작 <다찌마와리>에서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폭력조직의 회장님을 연기했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독립단체의 간부 이명학 역할을 맡았으며,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완에게 권투를 배우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교도관으로 나왔고, <야수와 미녀>에서 검사인 김강우를 해치기 위해 류승범을 도와주는 깡패로 출연했던 그 배우, 헉헉,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가 세편의 TV드라마에서 눈길 끄는 조연으로 출연한 뒤로 이런 설명은 구차해졌다. <무적의 낙하산 요원>에서는 문정혁에게 얹어가려는 치사한 정보부 요원으로, <왕과 나>에서는 월화와 가슴 아픈 사랑을 나누는 개도치로, <일지매>에서는 악행을 뉘우치고 일지매를 돕는 공갈 아제로 변신하면서 그는 꽤 험상궂은 얼굴과 발음하기 다소 까다로운 안길강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름이 본명인가.
=그렇다. 길할 길(吉)자에 편할 강(康)자를 쓴다. 원래 이름은 희광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길강이 됐다. 발음하기 어려워서 처음 부르는 사람 중 제대로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웃음)

-이름에 강한 느낌이 있다.
=얼굴도 그 모양으로 생겼잖나. (웃음) 사실 이름을 바꿔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때 함께 출연했던 중국의 무용가 진싱이 이름을 그냥 쓰라고 하더라. 자기가 그런 쪽에 관해서 좀 안다면서.

-한동안 정말 바빴을 것 같다. 얼마 전에 TV드라마 <일지매>가 끝났고, 그 직전까지는 <왕과 나>에 출연했다. 그 사이에는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리>)를 찍었다.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한 건 2006년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을 찍을 때부터였다. 게다가 그해 연말에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아이가 태어났다. 동시에 4편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마음이…>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무적의 낙하산 요원> <귀신 이야기>를 거의 동시에 진행했는데, 촬영장도 부산, 강원도 뭐 이런 식이라서 매니저와 내가 교대로 운전해서 이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쉬니까 좋은가.
=<일지매>가 끝난 지 10일 조금 넘었는데, 아직까지는 너무 좋다. 근데 한달 정도 더 지나면 근질근질하겠지. (웃음)

-안길강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는 <일지매>가 가장 크게 공헌한 것 같다.
=확실히 많이들 알아보더라. 나도 많이 놀랐다. 예전에는 얼굴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이름을 아는 분도 꽤 계시더라. 방송의 힘이 무섭더라. <다찌마와리> 시사회 때도 “영화에선 잘 안 풀리고 방송에서 거듭나고 있는 배우 안길강”이라고 소개했다. (웃음)

-<다찌마와리>를 찍을 때도 바빴겠다.
=<다찌마와리>는 <왕과 나>의 후반부에 찍기 시작해서 <일지매> 초반에 끝났다. 스케줄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류승완 감독과 함께한 작품 중에서는 가장 편했다. 액션도 심한 게 없었고, 두들겨 맞는 신도 없었고. (웃음) 정말 쉽게 찍었고, 재밌게 찍었다.

-2000년작 <다찌마와리>와 달리 이번에는 악역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악역을 많이 한 건 아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때 류승범을 때리는 장면의 인상이 너무 세서 그랬는지 일반인들은 내가 악역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하더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때는 독립운동 조직의 간부였고, <태극기 휘날리며> 때도 선한 역할이었다.

-듣고보니 악역을 별로 안 했는데 왜 그런 이미지가….
=뭐 생긴 게 그러니까. (웃음)

-류승완 감독은 당신이 <다찌마와리>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를 해서 균형을 잡아줬다고 하더라. 사실 이 영화 전체가 오버하는 구석이 있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뭔가.
=처음에 임원희나 류승완 감독과 얘기할 때의 컨셉은 2000년의 <다찌마와리>에 비해 조금 눌러서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장면들을 보니까 아주 세더라. 영화를 보면서 일본인으로 등장할 때 조금 더 나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리쌍이랑 찍을 때는 나름대로 재밌었는데 붙여놓은 것을 보니까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 좀더 놀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류승완 감독, 류승범뿐 아니라 임원희, 김수현 등과도 계속 호흡을 맞춰 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질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거기서 류 감독이 긴장감을 준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면 고깃집에서 내가 승범이에게 맞는 장면 있잖나. 그때 무술팀원이 대역으로 나를 찼는데, 조심스럽게 아주 살살 하더라. 그걸 본 류승완 감독이 벌떡 일어나서 이쪽으로 오더니 ‘그렇게 하지 말고 사정없이 차버려’라면서 정말 사정없이 차버리는 거다. (웃음)

-류승완 감독, 그렇게 안 보이는데 독한 면이 있나 보다.
=아주 악랄한 사람이다. (웃음) 유한 척하면서 자기 건 다 찾아먹는 사람이다. 지독한 사람이다. (웃음)

-이번에 찍을 때도 그렇게 독했나.
=심하지는 않았다. 제작비 때문에 배우들에게 줄 만큼 못 줬으니까 아무래도…. (웃음)

-당신이 연기한 진상6호는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다. 그 설정을 염두에 두고 연기했나.
=나는 나름대로 했다. 박시연이 프로펠러에 감겨 빙빙 도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러 ‘어머!’ 하면서 입을 가리고 놀랐다. (웃음) 알아차렸나.

-그, 글쎄 기억이…. 아무튼 그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데, 큰형 노릇을 할 것 같다.
=흠, 꼭 그렇지도 않다. 일단 류승완 감독이 형 대접을 안 해주고, 임원희도 형 대접을 안 해준다. 현장에서 내가 뭔가 설정을 하면 원희는 화를 낸다. 그러면서 자기도 마음대로 설정을 하는 거다. 그러고 있으면 류승완 감독이 모니터를 보면서 ‘배우들 다 일루 와봐!’ 한다. (웃음) 그리곤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라고 한다. 친형제끼리는 존댓말 잘 안 하잖나. 우리도 거의 그런 분위기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3년만 해보고 주위 반응이 안 좋으면 연기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대학로로 갔다. 맨 처음 만난 분이 민예극단 대표인 강영걸 선생님인데, “너 연기 왜 하냐”고 하셨다. 내가 “저만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어서요”라고 했더니 “지랄한다. 네가 1년만 여기서 버티면 그때 가서 보자”고 하시더라. 그때 8명이 함께 극단에 들어갔는데 1년 지나고 나니까 2명 남더라.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전 민예극단 대표셨던 공호석 선생님과 몇분께 물어봤다. “배우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랬더니 괜찮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연기에 대한 꿈이나 끼가 있었나.
=끼는 잘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정은표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한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연극을 봤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저런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93년에 대학로 간 거다.

-막상 연기를 하니까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초반에는 그랬다. 지금은 정말 돈 때문에 한다. (웃음) 사실 영화나 연극이나 예술을 한다면서 주위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다. 나도 그런 데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 예술을 한다면서 젊은 친구들의 열정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은 보기 싫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기 전에는 나도 많이 희생하고 그랬는데 결혼하고 나서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영화 데뷔작인 <3인조> 때도 힘들었다고 하던데.
=그때 <뜰앞의 잣나무>라는 공연에서 스님 역할을 하느라 머리를 깎았고 살도 많이 빠져서 얼굴도 날카로웠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날 보면서 너무 착하게 생겼다고 하더라. 그래서 험악하게 보이려고 데드마스크를 쓴 채 분장을 하게 했다. 분장할 때 4시간, 지우는 데만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렇게 10회 정도를 찍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시퀀스 자체가 날아간 거다. 결국 한 장면만 남았다.

-영화에 대한 첫인상이 안 좋았겠다.
=그랬다가 3년쯤 뒤에 류승완 감독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하면서 다시 돌아오게 됐다. 류승완 감독은 <3인조> 때 연출부 막내급이었는데 친하게 지냈다. 그때 계약금으로 건 게 떡라면 한 그릇이다. 근데 아직까지 안 사주고 있네. 어쨌든 나로 하여금 영화를 다시 하게 해준 친구가 류승완 감독이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좀 알게 해준 사람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이시명 감독이다. 이시명 감독은 영화의 연기 매커니즘을 잘 알게 해줬다.

-아무래도 코믹한 캐릭터로 출연한 <야수와 미녀>는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었을 것 같다.
=사실 좀 부담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진지한 연기를 주로 했으니까. 그리고 내게 에너지가 많다고 생각해 힘으로 연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하고 나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유연하게도 할 수 있는 거다. <무적의 낙하산 요원> 때도 웃기려고 연기한 게 아니라 그저 대본에 있는 대로, 캐릭터에 맞춰서 연기했을 뿐인데 반응이 좋았다. <일지매> 때도 그런 반응이 많이 나왔다.

-여장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그때 감독님에게 정말 못하겠다, 자신없다고 사정했다. 그래도 계속 설득하더라. 그래서 나는 분장을 조금 약하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좀더 심하게 할걸 하는 생각이…. (웃음)

-전수일 감독의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첫 주연작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저는 전수일이라고 하고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의 주연을 맡아주셨으면…” 하더라. 나는 장난인 줄 알고 “너 누구야, 뭐하는 새끼야” 했는데, 정말 감독이라는 거다. (웃음) 하여튼 나는 주연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영화에 주로 나오는 배우가 나와 김선재밖에 없던 것이다.

-<무적의 낙하산 요원>은 처음 출연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출연하기로 한 결정에 결혼이 영향을 끼쳤나.
=영향이 컸다. 사실,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자신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왜 드라마에 대한 공포감이 있잖나. 그러다가 작가인 이선미 선배와 김기호 선배를 만나서 마음을 굳혔다. 연우무대에서 배우 하던 분들이잖나. 그리고 당시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배우라곤 하지만 너무 안 알려져 있었다. 어떤 배우의 어머님이 <전원일기>를 보다가 ‘아니, 잠자리도 테레비에 나오는데 우리 아들은 언제 나오는겨’ 하셨다는데 어르신들에게 TV에 안 나오는 배우는 배우가 아니잖나. 방송을 하면 아무래도 인지도 면에서 조금 낫겠다 싶었다. 그 드라마 촬영이 끝난 게 2006년 11월인데, 결혼은 12월에 했다.

-결혼은 늦게 한 편이다.
=돈도 없었고 별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고독한 들개라고 불렀다.

-팬카페의 대화명도 ‘고독한 들개’였다.
=들개, 거칠잖나. 거친데 고독하니 멋있잖나. (웃음) 한마디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거지.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참 많은 게 바뀌더라. 딸아이를 낳은 뒤에는 더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팬카페에도 ‘나는 더이상 고독한 들개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대화명도 그냥 안길강으로 바꿨고.

-<왕과 나>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왕과 나>를 통해 가장 덕을 본 게 내가 연기한 개도치와 윤유선씨가 맡은 월화였다는 말도 들었다. 애초에는 40부 조금 넘어서 죽는 설정이었는데 인기가 있었는지 63회까지 나왔다. 상투 쓰고 수염 붙이는 게 힘들어서 20부 넘어가면서부터 제발 좀 죽여달라고 했는데(웃음), 끝나고 나니까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운동을 잘한다고 들었다. 요즘은 어떤 운동을 하나.
=주로 야구다. 4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아주 빠져 있다.

-포지션과 타순은.
=플레이보이즈에서 수비는 2루수, 3루수, 유격수 다 한다. 원래 1루를 봤는데, 황정민이 어디 갈 데가 없어서 자리를 내줬다. 타순은 요즘에는 4번을 주더라.

-이번 시즌 성적은.
=플레이보이즈에서는 일일이 기록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영화 스탭들과 함께 참여하는 하남리그라는 데서는 타격 1위다. 7할1푼. 지난주까지 8할1푼8리였는데 홈런 좀 쳐보려고 폼을 크게 했더니 잘 안 맞더라. (웃음)

-차기작은 정해졌나.
=아직은 없다. 재충전할 필요도 있고 머리도 좀 기르고 살도 좀 빼야 한다. 한동안 코믹한 연기를 해서 이번에는 정적인 역할을 맡고 싶다. 코미디만 하다보면 생명력이 짧아질 것 같더라.

-그동안 배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
=잘 못 나갈 때 일인데, 왜 배우들은 보통 간접경험이라도 하려고 영화를 많이 보잖나. 그 무렵, 새벽에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슥 문을 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면서 참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시곤 했다. 이제는 밥을 함께 먹은 뒤 내가 계산하려고 하면 아버지는 옆에 서 있다가 돈받는 사람에게 “누군지 몰라요? 알죠?” 이러신다.

-이제 연기 인생 15년의 결실이 열리는 것 같은데, 이 단계에서 세워놓은 새로운 목표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유롭게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 지금처럼 이 정도로 알려지고, 이 정도로 인기를 얻으면서 오래, 80살 넘어까지 가는 게 내 궁극적인 목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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