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사무라이가 아닌, 낮은 신분의 관점에서 보려 했다
2008-09-04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구로사와 아키라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개막작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의 감독 히구치 신지

<일본침몰>을 연출한 히구치 신지 감독은 어느 날, 소속사인 도호로부터 부담스러운 제의를 받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리메이크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맨 끝자리였는데, 앞에 있는 10명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결국 히구치 신지는 마츠모토 준과 나가사와 마사미를 데리고 1958년도의 영화를 정확히 50년만에 재현해 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무렵, 그는 이 프로젝트의 연출을 맡을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밝혔다. “옆에 있는 야마우치 아키히로 PD의 선조가 야마우치 카제토요라는 유명한 사무라이다.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을 베어버렸다더라. 너무 무서워서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웃음)

- 왜 도망치고 싶었나.
= 일단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팬이다. 그처럼 훌륭한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의 작품을 다시 만들때,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원작을 해칠게 당연하니까. 그래서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어떤 점을 좋아했나.
= 활기있는 인물들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에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당신은 자막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일본인에게는 영화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어떤 인물이든 일단 막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든.(웃음) 그래도 그런 느낌이 살아있는 게 매력적이다.

- 당신이 만든 영화는 원작에서 활극의 느낌만을 가져왔다. 리메이크를 구상하면서 맨 처음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 나 역시 캐릭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원작을 사무라이의 관점에서 연출했다. 그 역시 사무라이 가문의 후손이다. 그러다보니 신분이 낮은 사람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됐는 데, 나는 거기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20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윗사람에게 꾸중이나 받던 나는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 지를 생각했고, 그래서 낮은 신분의 관점에서 보자고 했다.

- 원작의 첫 장면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두 남자의 투닥거리는 뒷모습을 한 테이크에 담는 데, 리메이크에도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의 영화는 지도로 시작하더라.
= 아쉽게도 현재의 일본인은 4,500년전의 일본을 모른다. 공부를 안 한건지, 했는데도 잊어버린 건지 그 시대의 감각이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대의 배경을 설명하고 가려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 영화를 만들었을 때는 일본이 패전한 후 딱 10년째가 되던 해였다. 아마 그 첫 장면에서는 당시를 풍자하고 야유하는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때의 관객들은 두 남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그런 공감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 영화를 만들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와의 공감을 느낀 적이 있었나.
= 주요 인물들이 나무 더미를 등에 지고 걷는 장면이 많다. 그런데 배우한테 나무 더미를 지게 했더니, 화면 안에 사람들이 많이 못 들어가더라. 이걸 어떻게 찍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원작을 봤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어떻게든 찍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아예 나무더미의 양을 줄여서 찍었더라. 영화를 보다가 “이런 약아빠진 아저씨!”라고 외쳤다.(웃음)

- 극중 사무라이의 모습이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와 매우 흡사더라. <스타워즈>도 원작에서 그 모습을 가져왔겠지만, 리메이크 작은 <스타워즈>에서 가져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 그 시대 사무라이의 투구는 당시 스페인이나 포루투갈에서 썼던 투구를 가져와 변형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종류가 수만가지였다. 영화에 나온 건 내가 고른 것이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일단은 인상적인 악인이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 똑같은 모습을 가져오려 했던 건 아니었다.

- 다음 작품은 어떤 건가.
= 아직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힘들고 큰 영화가 될 것같다.

- 지구라도 침몰시키는 것 아닌가.
= 아, 이런…(웃음) 비슷한 느낌이다. 과거도 아닌 현재의 이야기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도 약간 비슷할 수도 있다. 엄청난 크기의 폭팔과 파괴의 느낌이 있을 것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