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세라 감독의 <새들의 노래>는 관객에게 명상을 강요하는 영화다. 동방박사 3인이 별의 안내를 받아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간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그들의 여행길을 느리고 어두운 분위기로 관조한다. 사막의 풍경을 담는 흑백톤의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는 햇빛의 움직임,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느릿한 걸음걸이뿐이다.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즐겨야 할까. 숲 속에서 단잠을 청하던 영화 속 동방박사들처럼 낮잠을 즐기다 인터뷰에 응한 알베라 세라 감독에게 물었다.
- 영화를 보면 감독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 물론 산책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산책을 하면서 함께 음료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순간들을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를 그렇게 촬영한 것은 닫힌 공간보다 열린 공간이 좋기 때문이다. 존 포드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더라. “친구들과 산책을 하고 놀다가 집에 왔을 때, 아기처럼 잘 수 있다”고. 내 스타일 역시 그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 영화를 만는 게 하나의 여행이겠다. 세 번째 영화인 <새들의 노래>는 세 번째 여행이고.
= 맞다. 어떤 틀에 박히지 않기 때문에, 그때 그때 영감을 얻어서 바꿔가는 것이 많으니까.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가 나에게 적합한 것 같다. 조명같은 것을 세팅할 필요도 없고, 내 주변의 360도 공간을 모두 담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영화에 담기는 것도 많아진다.
- 열린 공간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전작인 <기사에게 경배를>과 <새들의 노래> 모두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사막이라는 공간은 열려있지만, 닫혀있는 공간 아닌가
= 그런 면도 있다. 내가 사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영화를 찍으면 배우와 스텝 모두가 영화에 몰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경우에는 촬영을 마치고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사막에서는 그게 안된다. 촬영현장이 곧 삶의 터전인거지.(웃음)
- <새들의 노래>는 동방박사의 여행을 담고 있다. 처음 시작은 어떤 거였나.
=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난 풍경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사막과 숲같은 풍경을 먼저 떠올렸다. 동방박사라는 성서의 인물들을 넣은 것은 종교와 일상적인 삶의 조화를 이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새들의 노래>는 관객을 명상에 빠지게 하는 면도 있지만, 여행에 동참시키는 태도도 있다. 감독이 의도한 건 무엇이었나.
=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스토리가 없는 영화를 생각했다. 또 하나 의도한 것은 말이 없는 영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여정을 담은 것이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잔잔한 풍경을 보고 싶었다. 관객으로서는 그러다 잠이 들 수도 있겠지만.(웃음)
- 방금 그 이야기는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자게 될 경우, 그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 그건 아니다. (웃음) 아름다운 장면들이 오히려 관객의 잠을 깨우지 않을까? 다른 스토리나 소리가 없어도 영상이 그 자체로 말을 거는 영화로 보면 될 것 같다.
- 주연배우들이 모두 성만 다를 뿐 루이스(Lluis)라는 이름을 가졌다. 의도한 건가, 아님 우연의 일치인가.
= 우연의 일치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루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내 조감독의 이름도 루이스다. 또 나한테 영화사를 차리도록 돈을 빌려준 백만장자의 이름도 루이스다. 나에게는 행운의 이름인 거지.
- 다음 작품은 결정했나. 아마도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과 비슷할텐데.
= 아마도 그리스에서 찍을 것 같다. 역시 성서의 이야기다.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소재로 삼았다. 예수같은 성인이 술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취하게 했다는 것에서 흥미를 느꼈다. 그런 술파티의 장면이 가장 강렬한 모티브였다. 사실 이건 홍상수에게 바치는 영화다. 그의 영화에는 술을 마시고 취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나. (웃음)